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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시] 그대 바람이여

□ 전광훈

  • 2007-07-26 20:19:34
맞닿은 산봉우리, 미끈한 릉선을 훠어이훠이 소리지르며 타고올라 골골이 훑고 들에 내려서는 그대, 귀밑을 간지럽히며 소곤소곤 애고사리 돋는 소식을 전해주고 어디론가 자취없이 사라진 그대.

봄길로 사춘기를 앓고 깨여난 치마자락 살랑살랑 흔들어깨워 산으로, 들로, 골로 이끌어가던 그대, 나물바구니 머리에 인 아낙네들의 땀방울 거두고 바구니속에 가만히 숨어 새물새물 웃다가 나물내음 배인 몸으로 뒤꿈치 달싹이며 제먼저 집집의 가마목에 내려앉던 그대.

오, 바람이여!

방랑벽 두터운 어리광은 그대 천성인가, 버드나무 가지끝에 매달려 그네 뛰다가 여울치는 강 비릿한 내음 실어다 코안으로 쑤셔넣기도 하고 밤바다 울울한 파도의 울림을 어둠안에 가둬넣기도 하는 어린애같은 장난기 짙은 그대 천진한 유희는 우리들의 즐거움이였지.

세상 어디에나 스미지 않은곳 없이 거대한 몸집을 가진 그대, 바람이여 왜 갑자기 화를 내는가.

사막의 사구도 손쉽게 옮겨놓고 천년고목 뿌리채 뽑아 거뜬히 눕혀놓는 그대, 바다우를 뛰놀던 형제들을 불러모아 휘몰이로 들이닥쳐 하늘찌르는 빌딩 허물어버릴 때에는 세상은 한장의 휴지.

그러나, 그대 바람이여 우리는 알지 못하지.

그대 왜 성을 내는지, 한밤도 자지 않고 깨여있는 그대 푸른 눈동자, 뙤창가에 떼로 매달리면 파랗게 일어서던 기둥 온 방안 가득 백야의 어둠을 몰아오고 그 어둠을 물고 동경의 나라로 떠나는 나비의 가벼운 날개짓, 거기에 부서지던 그대를 우리는 잊지 못하지.

동굴도 깊은 동굴.

미지의 세계에로 떠나는 인긴려행은 결코 유혹에 끌린 욕망의 충동만은 아니였지. 깨달음을 위한 좌초의 항해였지, 얻은것과 잃은것의 적자수지를 기록하는 다큐멘터리였지.

그러나 꼭 절망할수만은 없네. 꺾이고 꺾이더라도 살갗 찢기고 찢기더라도 쉽게 치유할수 없는 아픔을 딛고 다시 일어서야 하네. 어디까지나 그대앞에 지은 죄 깨끗이 씻고 나서야 하네. 송사리떼 자유롭던 어린 날의 강으로 가서, 태초의 강으로 가서 온 몸의 때를 말끔히 씻어야 하네. 부끄러움 다 부리우고 그대 눈길 마주 바라보아도 죄스러움 없을 때까지.

믿는가, 그대 바람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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