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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은 아픔이다

□ 신계옥

  • 2007-08-24 07:34:12
지난 90년대초부터 우리 가정은 남편은 외지에서, 나와 아들은 이곳에서 서로를 그리면서 이웃가정들에서 겪는 리별과 상봉, 그리움의 몸부림, 방황과 아픔을 몸소 겪어야 했다. 세대주가 없는 집안 빈 구석의 차거운 음달이 그리도 뼈저리게 시릴줄이야.

평생을 같이할 각오로 만나 자식 낳고 잘살아가다가 어느날엔가 리별을 통보하고 훌쩍 떠난 남편, 그 남편의 빈 자리가 그리도 적요할줄 몰랐다. 그 빈 구석을 느끼면서 나는 무거움과 허전함을 차츰 알게 되였고 이웃들의 리별과 상봉을 무심하게 바라볼수 없었다.그러면서 사색했다. 어째 우리들에게 생에서 제일 고통스러운 리별을 강요할가.

아들애는 아버지가 없는 집을 싫어했다. 엄습해오는 고독이 무서운 모양이였다. 고독은 인간에게 있어서 하나의 적이다. 나도 고독을 느끼는데 커가는 아들애도 피할수 없는 고독을 막을길 없었다. 아들은 너무도 때이르게 고독을 배워갔다.

집은 우리가 들어서 살고있는 하나의 건축물일뿐이다.

나와 아들애는 밤이면 하나로 뭉쳐서 자는 귀한 생명체였다. 아들애의 두다리는 나의 배우에서 떠나지 않았다. 두다리를 나의 배우에 올려놓아야 엄마가 자기와 같이 있음을 확인하고 대뇌는 시름놓고 휴식한다. 아들의 마음을 아는 나는 나의 배우에 놓인 그 불편한 다리를 용서해주었다. 잠을 자다가 꿈속에서 무거운 나무가 나의 배를 지지누르는 꿈을 꾸지 않으면 묵중한 바위돌이 내 몸을 누르고있어 숨이 차서 벌떡 눈을 뜬적도 한두번이 아니였다. 깨여나보면 아들애의 두다리였다. 나는 배우에 놓인 다리를 정겹게 두드리고는 그 다리를 묵인해주었다.

아들애의 두다리는 나의 배우에서 나날이 무게를 더해갔다. 그렇게도 두다리로 엄마의 존재를 실감하는 다리였다. 직장에 일이 있거나 출장할 때면 사전에 아들애와 이야기하고 용돈은 밥상우에 놓고 글쪽지를 써놓았다. 먹고 쓸 돈은 어김없이 제때에 그 자리에 어김없이 놓아두었다. 하지만 있어야 할 사람이 없는 자리는 인간들에게서는 하나의 차디찬 빈 구석이였다.

아들애는 엄마가 없는 집에서 음식을 먹지 않았다. 어른인 나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들애가 없으면 밥을 먹을수가 없었다. 그리고 아들애가 없는 날에는 도무지 잘수가 없었다. 우리 둘은 언녕부터 서로 떨어져서는 살수 없는 혈육덩어리였었다. 둘가운데 하나가 없으면 다른 하나는 정서가 저락된다. 매일 만나야 하는 덩어리가 제때에 만나지 못하는것은 그대로 근심이 되고 걱정이 된다. 그런 일들이 쌓여서 병이 되여간다.

우리 둘은 상호 적극적으로 찾기운동을 했다. 빨리 오라고 집안에 비여있는 다른 한쪽 생명체를 불러들여야 시름을 놓는다. 집이라는 이 공간에 채워넣어져야 할것은 반쪽짜리 두 생명체였고 상호 의지할수 있는 모자였다.

평형이 기울어진 집에서 나는 남편이 없는 빈 자리를 보면서 우리가 왜 리별을 해야 하고 고통을 강요당해야만 하는지 수없는 의문을 던졌고 그 답을 찾기에 열중했다. 그러면서 나는 아들의 어머니가 아닌 한 녀인으로 완성했고 남편이 없는 녀인의 고독을 아픔으로 절감하면서 성장했다.

엄마는 다 큰 어른인데 이제 다시 커요? 내가 다시 컸다는 말에 아들애는 리해할수 없다는듯 물어왔다.

어른도 그냥 크는거란다. 이제 너도 어른이 되고 그러면 다시 커야 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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