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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쪽빛

□ 강호원

  • 2007-11-30 06:57:52
1


바다에 둘러싸여 그런지 섬의 날씨는 유난히도 변덕이 많았다. 금방까지 햇솜 같은 눈발이 나붓거리는 것 같더니 불시에 폭우로 변해버렸다. 위치가 반도의 남단이라 아무리 추운 겨울철이라고 해도 눈이 내린 기억은 없다고 본지인들은 말하고 있다. 실로 지구온난화로 새로운 빙하기를 맞는다는 할리우드 "투모로우“가 현실로 다가오는 것이 아닌지…

밖에 억수로 쏟아지는 비와는 상관없이 공장안에 쇠가 부딪치는 소리, 육중한 크레인이 덜커덩 거리는 소리, 작업일군들이 손에 고속으로 회전하는 “그랜더이” (연마기)가 쇠를 갈아내는 아츠러운 소음이 합세하여 금방이라도 고막을 찢어 놓을 것 같았다.

정호는 그다지 습관이 되지 않은 귀막이를 작업복 주머니에서 끄집어내 귀에 틀어박았다. 서울 직업소개소에 소개로 여기에 온지도 거의 열흘을 잡았건만 아직 일에 적응하려면 꽤나 시일이 걸려야 할 것 같았다. 아니 적응이라기보다 그는 지금 거의 억지로 뻗치고 있었다. 롱구장만한 거대한 철판이 100톤급 대형 크레인 전자석에 붙어서 둥둥 떠올 때마다 그는 이름 모를 공포에 몸을 떨 군 했다.

지금 정호로선 한시라도 빨리 여기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다. 정호에게는 퇴로도 없다. 이를 악물고 적응해야한다. 죽고 싶어도 아직 죽을 자격이 없는 그런 상황이다. 고된 로동과 변덕스러운 바다 섬 기후 때문에 온 육체적 고통- 몸 근육 어느 부위를 슬쩍 다쳐도 통증이 오고 무릎, 팔 굽, 손뼈마디, 관절 어디나 퉁퉁 부어 한번 움직일 때마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괴로운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대공률 콤프레샤의 거대한 압축공기 힘으로 거세게 돌아가는 “그랜더이”를 잡을 때마다 팔이 아니라 온 몸이 고압전기에나 감전된 듯 쩡쩡 저려났다. 연변에 있을 때도 힘든 일을 못해 본건 아니지만 여기선 뭐나 틀린다. 로동강도, 시간, 환경, 기후 한마디로 이곳 “수토”(水土)가 그에게 맞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도 고향 있을 땐 힘들면 아름다운 공간- 집이 있었고 그 집에는 마누라와 아들이 있었다. 그리고 친구도, 형제도 있었다. 여기에는 아무도 없다. 점점 쇠약해지는 육체뿐이 달랑 남았다. 정호는 자기가 언제부터 이른바 이런 독종으로 변해버렸는지 모를 일이다. 절망자체가 그에겐 공포고 무서운 적이었다. 거의 무너져 갈 순간마다 이상하게 떠나올 때 공항에서 가기를 바래고 섰던 대학생 아들놈의 그 일그러졌던 모습이 얼른 거렸던 것이다.

다시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나는 것도 아닌데 그때 아들놈의 표정은 너무도 슬펐다. 8년 전 애 엄마가 돈 번다고 집을 나선 뒤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하기야 그때 아들놈이 나이가 썩 어렸으니 아마 제 엄마가 밖에 며칠 나들이하다가 돌아오는 줄 알고 그다지 반응을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마치 당신들이 뿔뿔이 흩어져 가버리면 이 어린것 혼자 어쩌라고, 하는 그런 하소연 같았다.

아들놈은 내가 그나이 때 전혀 모랐던 다른 세계를 알아가고 있었다. 알지말아야 할 그 비참한 세계를...


2


―씨발, 어이- 김씨... 뭐카고 있어?

갑자기 위쪽 A라인에서 반장 우씨가 마치 가벼운 나무작대기 놀리듯 쇳덩이 굴리는 굵직한 쇠막대기를 정호 쪽에 대고 삿대질을 한다.

(아니 저 쫀만한 새끼가... 바릇없이 )

그제야 제정신에 되돌아온 정호는 지레대로 사용할 쇠파이프를 들고 허둥지둥 작업대 위에 올라섰다. 작업을 개시하려면 앞에까지 굴러온 철판을 작업대위로 옮겨놓아야 했다. 문뜩 정호는 자기가 여기 와서 받는 또 하나의 스트레스, 바로 저쪽 작업대위에 쇠 지팡이 짚고 서서 호령하는 덩치 큰 사내였다. 언제부터 여기서 이 노릇해 왔는지 보기만 해도 겁나게 무거운 쇳덩어리를 마치 젓가락으로 떡 뒤집듯 가볍게 다루는 괴력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일꾼들에 대한 태도도 그의 괴력만큼이나 거칠었다. 아직 장가도 들지 않은 삼십대라고 하는데 자기 나이에 비하면 형님이라고 불러도 민망할 만큼 나이 든 일군들에게도 거침없이 반말을 내 쏴군 했다. 당연히 정호에게도 례외가 아니다. 나 차이로만 해도 그사이 강산이 한번 변하고도 남음이 있을만한 차인데 녀석이 자기를 부르는 것도 “김씨”아니면 “어이”고 일에서 좀만 뜸을 보여도 x팔x팔 무지한 욕설이 마구 쏟아져 나왔다. 여기저기 받는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은데 녀석한테 한 번씩 개 몰리듯 어린애취급 당할 때마다 머리 뚜껑이 날라 갈 것 같았다. 하지만 일에서는 역시 그가 고참이고 선배니 실로 울며 계자 먹기가 따로 없었다. 더구나 공장계열 따져도 일군들에 대한 별 특별한 기술요구가 없는 부문이니 아마 사장도 시름 놓고 아예 공장을 우씨와 같은 “로봇”에게 “전탁”시켰을 것이다. 그러니 일단 여기서 배겨내려면 우선 저 인정머리란 털끝만치도 볼 수없는 “로봇” 관을 넘어야한다는 것을 정호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아, 사람 잡는구나...

철판이 작업대를 겨우 올라타는 순간 정호의 입에서 거의 비명에 가까운 절규가 흘러나왔다.

-아니, 이 양반 지금 뭐카고 있능교...

어느 사이에 곁에 와 섰는지 우반장이 한 손으로 쇠막대기를 철판 밑에 쑥 밀어 넣더니 끙- 하는 소리와 함께 육중한 쇠덩어리가 가볍게 작업대위로 미끌어갔다. 그의 반쯤 열린 작업복 지퍼사이로 골동 색 가슴근육이 실룩거렸다. 일부러 뭔가 보여주려고 그러는지 아니면 게을러 그런지 이 한겨울에도 그는 윗몸에 런닝셔츠 한 벌 없이 그냥 맨몸에 여름작업복 하나만 달랑 걸치고 추운 공장안을 뛰어다녔다.

-일 그따위로 하라코하면 지금이라도 보따리 사이소... 괜히 병신같이 곁 사람 민망하게 굴지 말꼬.

김반장이 쇠막대기를 곤봉처럼 휘두르며 짜증난 듯 저쪽으로 휭 가버린다.

퉁탕... 우당땅 꽝... 어디선가 공장 속에 소음보다 더 큰 소음이 들려오는 같았다. 이 계절에도 천둥이 울고 소나기가 쏟아지다니 고향에선 전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불시에 지붕만 있고 사면이 열린 공장안에 폭설이 날려 들어왔다.

진작 귀속에서 끄집어낸 귀막이를 땅바닥에 동댕이치고 정호는 이를 사려 물었다.

-야! 이 개새끼, 너 지금 뭐랬나?

느닷없이 정호의 입에서 무서운 괴성이 터져 나왔다. 이 순간 제동을 걸 수없는 분열같은 감성이 바야흐로 폭발하려고 했다.

- 너가 몇살인디 시방 야자냐? 그래 나 병신이다. 어쩔래?

정호는 쇠파이프를 휘어잡은 채 우반장한테로 다가섰다. 그의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금방이라도 쇠파이프를 휘둘러댈 그런 태세였다.

-이 양반, 갑자기 머리가 돌았나?

하도 돌발적으로 벌어진 사태라 우반장이 멍청한 눈길로 자기 앞에 바짝 다가선 정호를 내려다보았다. 키꼴을 봐도 우반장이 정호보다 머리하나가 더 커 보였다. 하지만 순하던 강아지가 삽시에 송곳 이를 사려 문 늑대로 변해버리니 우반장도 무척 당황한 표정이다.

-그래 이 x할 놈아, 나 병신이다. 그런 너는 아래위도 없이 막자란 후레자식이냐?

일이 이쯤 벌어진 다음에야 정호는 자기가 무슨 실수를 저질렀는지 알 것 같았다. 후회막급이었지만 적어도 이젠 이 공장에서 별 볼일 없게 되었음을 육감으로 느꼈다. 하지만 이미 쏟아 부은 물이라 물러설 수도 없었다. 어느 사인가 소란스럽던 공장안에 소음도 뚝 멎었다. 수 십 명의 일군들이 손에 들고 있던 그랜더이를 멈추고 일제히 그들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호랑이 꼬리를 잡을 꼴이 되었으니 호미난방이란 말이 따로 있을까? 문뜩 이름 모를 설음이 한데 몰려오면서 금방 눈물을 쏟을 것 같았다.

-x같네. 쪽 팔리게 이게 무슨 개망신이지...

정호는 가까스로 쏟아지려는 눈물을 집어삼키며 쇠파이프를 더 으스러지게 틀어잡았다. 마치 여기와 받은 모든 아픔과 설음이 모두 이 앞에 선 사내의 탓인 듯...

-와 이러십니꺼? 가 일 보소예.

우반장이 정호손에서 우들우들 떨고 있는 쇠파이프를 힐끔 일별하더니 몸을 돌려 자기가 일하던 A라인 쪽으로 휭 가버린다. 어딘가 많이 공손해 진 것 같으나 역시 정호 같은 건 안중에 없다는 그런 태도다.

-환장하겠네...

그렇다고 쫓아가서 쇠파이프로 우반장의 뒤통수를 내리 조질 용기도 없는 정호다.

-뭐꼬?

정호가 진퇴양난에 빠져 손에 땀을 쥐고 있을 때 문득 원만해선 공장에 얼굴을 보이지 않는 사장이 나타났다.

-뭣들하고 있능교. 모두 자기 일들 보고, 김씨 일로 따라와 봐...

잠시 난감한 목에서 빠질 수는 있었지만 이제 이곳에서 볼 장을 다 봤다는 생각이 몰리면서 전신에 힘이 쫙 빠져나간다...


3


갈매기 몇 놈이 끼욱- 끼욱- 울면서 폭설에 휘말린 검푸른 파도 위를 낮게 날고 있었다. 이 날씨에도 뭔 고기가 잡히는지 저 멀리 지평선 위에 작은 조업선들이 휘뚱거리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정호는 주머니 속에 금방 결재 받은 몇 장 안 되는 지폐장을 만지작거리며 숙소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역시 그가 예상했던 대로 사장 사무실에 들어가선 절차가 간단했다. 그 동안 일한 날짜를 결재 받고 “다른 곳에 가서 일자리 찾아보소.”가 어쩌다 사장의 입에서 나온 한마디 말이다. 이제 그에게 남은 일이란 숙소에 돌아가 보따리를 싸가지고 여기를 떠나는 일뿐이다.

이제 온지 열흘밖에 안 되는 이 섬을 그는 곧 떠나야한다. 그런데 정작 떠난다고 하니 도대체 어디로 가야할지 막연하기만 하다. 어디로 가나 사면이 검푸른 바다가 아닌가? 그제야 그는 자기라는 존재가 얼마나 보잘것없는 작은 존재라는 것을 실감했다. 마치 저 파도위에 실려 휘똥 거리고 있는 일엽편주라고나 할까? 어느 순간에 저 집채 같은 파도에 먹혀버릴지 모른다...

-저기... 잠간만요...

언제 왔는지 손에 뭔가 묵직한 비닐주머니를 든 반장 우씨가 뒤에 와 서있었다. 이놈은 왜 왔어?

-일단 숙소로 갑시더.

도대체 웬 영문인지 정 호는 미처 반응을 보이기 전에 우반장이 그의 팔을 덥석 잡고 숙소 쪽으로 끌었다.

-아깐 쪼까 미안했어라이 버릇없이...

우씨가 사들고 왔던 소주병 뚜껑을 열었다.

-형님이라 불러도 되는교?

숙소가 공장 종업원들 위해 지은 정규적인 숙소가 아니고 림시로 얻은 민박이라 지저분하기로 형편없었으나 일단 일군들이 퇴근할 시간이 아직 이르니 한편 호젓하기도 했다. 우반장이 왜 자기를 뒤쫓아 왔는지 정신을 차리기 전에 정호를 더 놀라게 한 것은 우씨의 급변한 곰살궂은 억양이다.

-가긴 어디로 간다는교? 가지말란께. 어디가나 거기에서 거기니...

우씨가 두개종이컵에 술을 따르고는 그 사이에 어디서 구했는지 비닐주머니에서 울퉁불퉁 못생긴 굴을 구들바닥에 쏟아놓았다. 하기야 사면 바다에 흔한 것이 굴이니 작은 섬 어디가나 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호는 아직도 제정신이 아니다. 여기에 온 시간 얼마 안 되지만 그냥 멀리에서 봐도 섬뜩해나던 사내, 더구나 방금 전 까지만 해도 서로 이를 사려 문 적수가 아니였던가? 근데 어느 순간에 자기가 이 앞에 앉은 두억시니같은 녀석의 형님이 됐는지 모를 일이다. 도대체 시치미를 따는지 아니면 딴 수작을 걸고 있는지 도무지 짐작이 안 간다.

(아니, 이 자식이 병 주고 약주고 도대체 뭘 하려는 수작이고)

이상한 건 언제 봐도 험상궂은 두억시니 모습이 웬 일인지 이 순간만 길 잘들인 순한 황소처럼 보인다.

아마, 그래서 네 성이 소 “우”씨가 아니냐?

-저기 우반장, 나 이제 터미널로 나가는 마을버스 타야거든. 무슨 용건인지 빨리 말하게...

사실 그랬다. 인적 드문 섬마을이라 다니는 버스도 드물었다. 어차피 여기선 별 볼일 없으니 어디로 가든 빨리 여기를 뜨는 것이 그로서는 바른 선택일 것이다.

-형님요 아직도 내말 무슨 말인지 모르는교?

우씨가 어던가 취기가 오른 것 같았다.

-나 이 섬에서만 몇 해 퍼질러 쌋는지 아는교? 작으만치 십년인교.

(이녀석 괜히 사기를 치는게 아닌가? 십년이라니... 네가 뭐 로빈손이냐.)

하지만 어딘가 주눅이 들기도 했다. 하기야 자기가 여기에 온지 겨우 열흘밖에 안되는데 앞에 앉은 이 괴물은 여기에 말뚝 박은지가 벌써 십년이란다.

-나 금방 형님이 무슨 일로 한국에 왔냐고 묻지 않았는교? 미친놈 같지유? 백에 백사람이면 돈벌러 여기 나왔다는걸 누가 모르는교? 나도 밑바닥에서 살던 놈인데 이 바닥을 잘 안다카이

그건 나도 알아 노가다 뛰는 놈이 상류사회에서 살기 만무하지

-근데 나 처음 여기나온 목적이 다른 사람들과 좀 틀린다카이. 딱 하나의 목적...

우씨가 굴 까는 연장이 없이는 도저히 까기 힘든 굴을 마치 땅콩 까듯 맨손으로 툭툭 까서는 속에 진득 물 같은 살을 그대로 입에 집어넣었다. 웬일인지 금방 짐 싸가지고 자리를 뜨려던 정호는 뭔가 엉덩이가 점점 무거워 남을 느꼈다.

-쪼까 부끄럽지만두 실은 마누라 찾아 여기까지 왔써라우. 씨팔, 우습지? 누군 엄마 찾아 삼천리라더니 사내놈이 쪽 팔리게 도망간 녀편네 찾아 삼천리 땅을 헤매다가 결국 “삼천리” 막 끝에 와 말뚝 박았으니 실루 한심하지 않는교? 하기야 지금은 포기한 상황이지만두 언젠가는 한번쯤 만나겠지.

우씨가 마치 여기에 온 목적을 누가 추궁이라도 하듯 평소에 그답지 않게 주절댔다.

-이제 만나서 어쩔라고? 볼 장을 다 봤겠는데.

저도 모르는 사이에 정호가 우씨의 말속에 끼어들었다. 하지만 속이 편치 않다. 정호의 눈 앞에는 또다시 공항에서 자기를 바래려 나왔던 아들녀석이 뿌연 눈길이 떠 오른다 아들은 부모들이 헤여져야하는 현실을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들어 했고 그래서 괴로워했다. 아들에게 왜 헤여져야 하는 답을 정호가 해주어야 하지만 정호는 아직까지 그런 답을 찾지 못했다.

-고년이 지금 어떻게 잘사는가를 구경할락꼬... 흐흐흐...

-근데 왜 아까는 짐 싸라고 하더니 이제 와서 또 말리지...

-현장에서 그런 말을 내 뱉는 것이 어디 한두번이우? 하루에도 몇 십번도 내 쏴는 말인데. 그런 걸 속에 다 넣더니 쯧쯧...

우씨가 오히려 저쪽에서 기막히다는 듯 혀를 끌끌 찬다.

-근데 일도 잘 못하는 나를 굳이 남으란 리유가 뭔지 모르겠군.

정호가 벽에 걸려있는 시계를 힐끔 쳐다보며 슬그머니 한술 더 떴다. 사실 우반장이 자기를 남으란 말이 진심이라면 정호로선 그보다 더 고맙고 반가운 일이 없었다.

-내는 집에 로모두 없구 툭 털면 먼지라카지만두 형님은 연변에 마누라 자식덜까지 두고 온 묌이 아닌겨?

-내가?

말문이 막혔다. 마누라와 자식...쪼개진 바가지 처럼 산산히 흩어져서 이제 형체도 없는 내가정...우반장은 이런 가정을 지키라고 일자리를 떼우고 가는 사람을 잡는다.

-그카구 어딘가 날 닮은데가 있는 것 같아서... 허허허....

역시 우씨의 버르장머리는 알아줘야했다.

-나 금방 사장하고 결재까지 끝냈는데 사장이 다시 받아줄까?

-받아주고 말고. 사장이 그냥 내 폼을 잡아 준거라카이. 공장에 지금 일꾼이 얼마나 귀한다코

우씨가 좀 허풍 치는 같았지만 정호는 자기가 사장이라도 우씨같은 일꾼한테는 어지간한 직권과 혜택은 줄 것 같았다.

-형님 여그서 미적거리지말구 읍내루 나가자우 내가 쏠 테니 여기서 마을버스타고 좀만 가면 꽤 큰 동네가 있거든. 이쁜 아줌마도 있고. 기왕 이렇게 된바하고 날씨도 지랄같은데 오늘 한번 농탕을 치기우. 대신 돈 떨어지면 형님 가블하오. 우린 한 핏줄이아닌겨?

숙소부근 몇 채 안 되는 인가를 빠져나오니 지척에 파도가 부셔지는 방파제가 보인다. 이제 버스 정류장에 다 온 것이다. 뿌연 바다 지평선우에 아들의 얼굴이 다시 떠오른다. 울먹거리면서 언제 돌아오냐 묻던 그 소리도...

아들아 나도 몰라...

하지만 정호는 이제 아들에게 할 말이 하나 생겼다. 쪽빛하늘에 대한 사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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