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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영애

  • 2008-03-07 06:35:39
가을도 이젠 다 지나가는데 때아니게 밖에는 차거운 가을비가 내리고있다. 때아닌 비라서 그런지 기분이 별로 좋지는 않다. 오늘 저녁 나 혼자뿐인 침실은 날 허전하게 만들어 버린다. 오직 창밖의 비소리만 동무해줄뿐이다. 그래서 일찍 누웠지만 혼자면 항상 잡생각을 잘하는지라 가슴이 무지하게 복잡답답해났다. 하도 적적한 마음을 해소할길이 없어 라지오를 켜니 마침 내 친구가 진행을 맡아하는 음악요청프로가 나오고있었다. 심심하던지라 래일모레인 어머니생일을 두고 노래를 요청한답시고 열선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모레면 어머님생신이여서 노래 한곡 신청하려고 하는데요.

—아~그러세요? 정말 효녀 심청이네요.

내 목소리를 알아챈 친구의 익살조로 한 말이다.

효녀 심청이라… 노래요청을 마치고 전화를 끊은지 한참이나 됐는데도 웬지 친구가 한 롱담이 석연치가 않았다.

심청이는 자기의 몸과 쌀 삼백석을 바꿔서 아버지의 눈을 띄워드려 키워준 은혜를 갚지 않았던가? 자고로 자식은 부모에게 낳아주었다는 은혜라는 “빚”을 지면서 살아갈진데 심청이는 “빚”을 갚아 대대손손 내려오면서 효녀로 불리우지 않았던가?

그런데 내가 심청이라고? 한심한 마음에 나도 몰래 쓴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지금까지 심청이 구실을 하기는커녕 부모님에게 고생만 시키고 해준게 아무것도 없었다. 숙사에 앉아서 부모들이 힘겹게 번 돈을 야금야금 없애면서 부모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기생충같은 비렬한 존재가 된것만 같아 소름이 끼쳤다. 생각해보니 다른 애들은 부모들의 부담을 던다고 공부를 열심히 해서 장학금도 타고 아르바이트도 몇개씩 하는데 그것조차도 못하고있는 나다. 비록 부모들은 이런 나를 종래로 원망하진 않았어도 오늘은 웬지 “심청”이란 그 한마디에 옹졸해보이기만 하는 나다.

늦은 지금에야 부모에게 크고도 갚기 힘든 “빚”을 지고 사는것이 느껴지지만 지금도 그렇고 예전도 그랬듯이 난 항상 빚을 질 땐 그것이 빚인줄도 모르고 한동안 시간이 흐른후에야 비로소 알아차린다.

어릴 땐 한반에 나보다 예쁜 여자애들을 보고 왜 이렇게 남보다 작고 밉게 낳아줬나며 어처구니없고 철부지없는 물음을 내뱉을 땐 이세상에서 살아갈수 있도록 해준 “빚”이 있는줄을 몰랐다. 그리고 큰 병에 앓아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공포감에 떨었을 때에야 비로소 생명을 가짐은 또 부모에게 진 제일 큰 빚임을 알게 되였다.

그리고 부모들이 돈을 버는 힘겨움도 모르고 없는 형편에 이걸 사내라 저걸 사내라고 하면서 부모 가슴속에 보이지 않는 피눈물을 흘리게 하고 이제 와서 이러한 부질없는 요구를 만족시켜주느라 거칠어진 부모의 손을 보면서 내가 아무리 가슴이 아파한들, 그 “빚”을 갚으려한들, 부모의 이미 사라진 그 젊음을 되찾아온다는건 흘러간 물처럼, 지나간 어제처럼 영원히 다시 찾아오지 못함을 가슴저리게 느낀다.

어느덧 라지오에서는 나의 사랑의 메세지를 담은 노래선률이 흘러나왔다. 나는 찹찹한 기분에 잠겨서 그 노래를 신청하고있었다. 노래가 끝나자 별안간 나의 핸드폰벨소리가 울렸다. 어머니가 걸어온것이였다. 나는 조금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받았다.

—영애야, 네가 나를 위해서 노래를 신청했더구나. 네가 나를 위해 신청한 노래를 들으니 나는 세상에서 제일로 행복한 엄마가 된듯싶구나. 고맙다.

—어머니, 이제부터 제가 심청만큼한 효녀는 못되더라도 심청이 조카는 될게요… 어머니, 사랑해요.

—그래, 엄마도 우리 딸 너무 사랑해. 허허… 나도 너의 외할머니, 외할아버지한테 빚지고 사는 사람이란다. 이 다음 너도 자식을 낳아서 키우는것이 부모의 사랑에 보답하는길이다.

아마도 부모가 자식에 대한 사랑은 영원히 갚지 못할 “빚”인가 보다. 그리고 인간은 대대손손 부모한테 빚을 지며 살아간다.

웃세대의 이러한 부모된 도리를 다하는 우수한 미덕과 자식된 도리를 애써 다하는 품성이 지속되고있음은 이런 “빚”이 있었기에 계속되여 끊기지 않는것이 아닐가?

(작자는 연변대학 학생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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