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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과 향수

  • 2008-09-11 17:2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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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추석은 갓 시집간 새각시가 친정을 찾아오듯 예고도 없이 부랴부랴 찾아온것만 같았다. 맹위치던 한여름 무더위에 시달려서 부얼부얼해진 몸을 추스르기도전에 추석이 왔다. 벌써 추석이 왔나.

황금전설이 파도치는 들녘은 온통 누른색으로 옷을 바꾸고 기우는 저녁 해빛속에 무수한 억새풀이 하얗게 춤춘다. 곡식을 농익게 하는 풍성한 해빛이 들녘에 다냥하게 내려앉아 재글재글 끓어번지며 이른 추정을 자아낸다. 전야 어디 가나 소슬한 바람 한자락속에는 곡식이 익는 매틀한 냄새가 후각을 진동했고 풍요를 기약하는 풋풋한 초가을의 성채가 곳곳에서 피여나고있었다.

그래서 이때쯤은 공연히 시골추억과 전원일기 한자락쯤을 주절주절 펼쳐보여 도시의 가볍도록 바싹 마른 하늘아래 인파에 부대끼고 세멘트갑속에서 시달려 후줄근해진 빈가슴을 한번쯤이라도 풍성해싶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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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밥이 그리웠던 어린 시기 추석풍경은 추석바심(시골에서는 추석바숨이라 했다)과 소고기장졸임이 첫페지로 나타난다. 우리 세대들은 배가허천 들려 쓰라렸던 보리고개가 뭔지를 가슴으로 알지 못했지만 그 시기 엄마의 주름잡힌 얼굴에는 그늘이 졌고 빡빡 쌀독밑굽을 긁던 바가지의 빈한한 소음만은 잊을수 없다. 무릎아래에 터울이 잦은 숱한 자식을 거느린 부모님들의 마음이야 오죽 아팠을가. 통옥수수를 가루내서 가마밑굽에 척척 붙여서 만들었던 옥수수떡(시골에서는 궈테라고 했음)은 지금도 생각하면 입안에는 껍쩍한 기운만이 감돌면서 식겁하게 만든다. 그래서 막연하게 식탁을 풍성하게 하는 계절을 그렸고 추석을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생산대시절 우리 마을에서는 그냥 추석바심을 했다. 바심이란 타작을 이르는 말이고 풋바심이라고도 한다. 이 추석바심은 보통 물기가 질척거리는 논판에서 가을하는데 이 시기에는 남방의 가을걷이처럼 가을하는 즉석에서 마르지도 않은 벼단을 커다랗게 묶고 등짐으로 나른다. 그리고는 대충 만든 탈곡장에서 탈곡하는데 대개는 겉곡을 나누어주거나 조건이 되면 집체로 밯아서 나누어주는데 매달 인당 몇십근이다.눈을 올롱이 뜨고 그 쌀밥을 기다리던 그 나날이 그리도 흥분이 되던지. 하기에 "싸래기"라 불리던 등외품 쌀끄트머리로 만든 송편에는 거친 추억 한편도 없다. 우리 민족의 가장 큰 명절인 추석음식품록 1호에 버젓이 오르는 송편에 대한 추억이 없다는게 가장 큰 유감으로 남았다. 입안에 껄끄럽게 달라붙어서 껍쩍하기만 하던 그 송편의 맛은 통쌀로 만들었을 때에야 맛있는줄 그 시절을 지난 썩 후에야 알았다. 당시 "예베"라 불리던 한족들의 월병은 엄두도 못 냈다.

추석풍경에서 클라이막스는 단연히 강변소잡이다. 해질머리와 려명전야의 한기가 찬 이슬이거나 서리가 되여 내리는 추석전야지만 한낮의 해빛은 여름처럼 당양하다. 이때면 남대천의 강변옆에서는 생산대마다(옛날 집체화시기의 말단 생산단위) 소잡이를 하는데 축력이 생산력으로 통하던 원시적인 농경시기라 대개 호랑이가 사흘 씹어도 못다 씹을 늙다리 얼룩배기 황소거나 너무 늙어 다리를 후둘거리며 새끼낳이를 할수 없는 약체 암소가 추석제물로 되였다. 어느 시골에나 백정일에 능한 남정네들이 득실거렸으니 우리 생산대에는 살구나무집 봉숙이네 아버지와 왕청집 천규가 백정일에는 투구 쓰고 장도 비껴들고 늘 앞장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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