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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의 겨울과 소발구

□ 최국철

  • 2008-10-13 17:30:58
도구를 사용하고 지배하던 인간들의 력사와 그 근간을 캐보면 인간들의 지혜 도구들의 사연과 그 래력이 푸르게 살아있다. 그 래력을 더듬어 쫓다보면 인류문명과 지혜, 문화의 보편성에 접하게 되고 민족문화의 특수성과 위대성을 접하게 된다. 특히 조선민족과 민속사를 연구해보면 그중에는 도구들의 사용력사가 중요한 자리를 장식하고있는데 필자는 이 도구와 민속문화는 우리 민족 공통의 재부이고 나아가 인종, 민족 차별이 없는 우리들의 공통재부라고 인지하기에 민속사에 대한 글을 자주 쓰게 된다. 이번기부터 잠간 중단했던 민속문화기행을 다시 련재한다.

우리 조상들이 농경사회에서 쓰던 재래농구들은 대략 100가지에 달한다. 용도에 따라서 경서, 파종, 파쇄, 중경, 관개, 시비, 운반 등 10개에서 20여개로 다시 분류할수 있는데 여기에는 운반용구도 있다.

재래식운반용구에는 알뜰한 인력을 요하던 지게, 들것채… 축력으로 사용했던 돔발채, 걸채, 달구지 등 몇가지로 나눌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 유독 발구에 대한 사연이나 래력이 결핍한것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수 있다.《조선의 재래농구》에서도 유독 소발구가 등재에서 루락된다. 눈이 내리는 북방겨울에서만 사용되였다는 점에서 외면되였나 위구심으로 발구라는 농구를 첫 품목으로 올린다.

소발구라 하면 필자는 자연히 북방의 눈내린 밀림속과 인부들의 귀틀집, 끄무레한 냄새를 풍기면서 김을 실실 피여올리던 림시소외양간, 밥짓는 아낙네를 련상하게 되고 산골의 한자락 풍경을 떠올린다.

우리들의 부모들이나 할아버지들은 지금도 술상에서 겨울산판에서 소발구로 통나무를 끌어내리던 이야기를 주절거린다. 시골의 모든 일중에서 산판에서의 통나무베기와 소발구질이 제일 위험한 일이다. 하기에 해마다 산판에서 인부가 다치는 불상사가 발생했고 엄중하면 목숨까지 위협했다. 나무를 잔뜩 무져놓은 토장에서 통나무가 굴러내리거나 자신이 베던 나무가 몸을 비탈면서 쓰러지는 방향을 바꾸어 깔리거나 소발구질을 하면서 발구에 깔리거나 둔중한 소발에 발등을 밟히는 등…산판에서의 일은 고되면서도 무척이나 위험하기도 했다. 하기에 남편을 산판에 올려보낸 시골의 아낙네들은 겨우내 한숨을 풀풀 날리면서 남편들의 안위를 걱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위험한 일이라도 시간이 지나가느라면 지난 그 시절이 그리운 법이다. 군인들이 군복무시절의 이야기를 잘한다면 농부들은 한여름이면 섬돌밑이거나 버드나무그늘밑에 충그리고 앉아 산판에서 메돼지를 잡던 이야기, 노루를 쫓던 이야기를 자주 지절거린다.

그런데 여기에서 스쳐지나기 어려운 채색풍경 한쪼각이 있는데 그것인즉 꼭 산판귀틀집에서 밥짓던 아낙네이야기가 양념처럼 따라붙는다. 흔히 남정네들만이 우글거리는 그속에는 왕청집아낙네란 이름을 가지거나, 화룡댁, 혹 훈춘댁, 서과부가 사내들의 입에 오르고 그때면 사내들은 술상의 주흥을 돋구기에는 족할 거시기한 사연을 색채를 입히고 구수하게 늘어놓는다.

흔히 산판 인부들의 집은 중간에 복도를 설계하고 량옆으로 온돌을 놓는데 이런 귀틀집부엌간에는 꼭 헌 까래를 가로막아 밥짓는 아낙네의 침실로 사용하기도 했다. 꼭 이런데서 거시기한 문제가 터진다. 겨우내 산판에서 소발구로 통나무를 끌어내리던 남정네들은 녀자의 품이 그립고 그러노라면 평시에는 이쁘지도 않고 여겨보지도 않던 부엌아낙네가 춘향이만큼 이뻐보이고 저저마다 아낙네의 뒤모습을 슬금슬금 엿보면서 음흉한 생각을 가진다. 그중에서 꼭 용기 있고 대담한 남정네가 있고 어느날 밤인가는 헌 삿자리우에서 그녀와 대담하게 불륜을 저지른다. 그때까지는 "아름다운 성"이다. 하지만 그 뒤끝은 대단히 비참하다.

마을에 내려오면 처음에는 쉬쉬하다가 입이 가벼운 남정네의 발설에 의해 두 남녀간의 거시기한 사연이 이집저집에서 흘러나오고 그러면 마을은 한바탕 들컹거린다. 그 떠들석함은 오쟁이를 진 나그네거나 바람을 쓴 남정네의 아낙네가 대방의 머리끄덩이를 틀어잡으면서 시골길바닥의 먼지를 말아올리면서 고조로 이끈다. 그야말로 "사는멋"이 나던 시골의 한쪼각의 채색풍경이다.

이런 구질거리는 사연이 자주 발생해서 산판으로 올라갈 때면 부엌녀 대신으로 어수룩한 남정네가 올라가 행주를 쥐거나 마을에서 누가 보아도 욕심내지 않을만큼 늙었거나 추하게 생긴 아낙네를 천거해서 올려보낸다. 그러면 남정네들이 그 아낙네가 집안구석도 잘 거두지 않고 깨끗하지 못한데 그런 아낙네들의 손등을 씻은 물을 찝찝해서 어찌 먹냐 슬그머니 항의도 한다. 의미인즉 이쁜 아낙네를 올려보내라는 말이다.

소발구는 운반도구중에서 축력으로 사용하는 가장 간단한 운반도구이다. 재간이 없고 손이 거친 나그네도 반나절이면 도끼로 뚝딱 만들수 있다. 발구채와 그 채를 고정해주고 련결해주는 나무틀이 있는데 시골에서는 그 틀을 "걸대", "걸채"라고도 아무렇게나 불렀다. 통나무나 나무를 운반할 때 이 틀에 기대고 바로 비끌어맨 다음 거기에다 다시 나무들을 차곡차곡 쌓고 다시 참바로 든든하게 동여매면 된다. 이런 발구는 길이 아무리 험해도 상관이 없다. 하기에 경사도가 심한 비탈에서도 부담없이 통나무를 끌어내릴수 있다. 담이 있는 남정네들은 경사도가 너무 심해 사람조차 붙을수 없는곳으로 발구를 끌어내리는데 이때면 소가 음메ㅡ신음에 찬 무섭고도 긴 울음소리를 터친다. 이때면 소 혼자서 발구를 끌고 내려가게 하거나 너무 심할 경우면 발구에 참바를 비끌어매고 그 바를 든든한 나무에 감고 소와 발구를 조종하기도 한다. 묘기를 요하는 발구질이 아니라 아주 소의 목숨을 볼모로 발구질을 하는것이다.

지금도 산골에서는 한겨울이면 남정네들은 저마다 뚝떡거리면서 발구를 만들고 눈이 오길 기다린다. 눈이 내리길 기다려서 저마다 도끼와 톱을 차고 도목나무하러 간다. 쌀밥에 도목나무라는 말에서 도목나무는 대부분 이런 소발구로 운반되여 들어오고 다시 번뜩이는 도끼날에 쪼개져 부엌으로 들어간다. 시골에서는 발구로 나무를 끌어내리거나 운반하는 역사를 "발기다리, 쇠발기질"이라고도 일컫는다.

현재 시골에 가면 집울안이나 터밭에서 아무렇게나 뒹구는 발구를 흔히 볼수 있다. 국가에서 란벌에 대한 법적용자대가 각박하리만치 엄하여 백주에 도목나무하기란 이제 하늘의 별따기가 되였지만 북방의 겨울은 코를 베여가게 춥고 그 추위를 달래기 위해서는 코물을 질척거리면서 산에 올라가 발구로 나무를 운반해야 한다.

순 우리 말에는 우리가 잘 모르는 이와살이라는 말이 있다. 산판에 베여놓은 통나무들을 소발구 같은것으로 소달구지길이거나 차가 올라가는 길까지 실어나르는 삯일, 소발구로 나무를 실어오는 모든 력사를 두루뭉실하게 정리한 말이다. 우리 세대는 이와살이라는 말도 모르고 그런 일도 잘 모른다. 그러니까 광복전이거나 더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산판에 올라가 더러 이런 일을 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이 이와살이라는 낡투단어가 새천년에 들어서면서 다시 등장한것이다.

현재 국영림장 같은 경우 통나무 채벌로부터 끌어내려오는 작업까지 모두 기계가 동원되지만 작은 림장을 도급맡은 개인들의 경우 통나무를 끌어내리는 일이 모두 개인들의 소발구거나 마파리(말발구)에 의거하게 된다. 인간의 력사가 환원에서 환원을 거듭한다면 도구사용의 력사도 더러 중복되는 모양이다. 이 중복이 잠간이라도 대견해보여 오늘도 "조선의 재래농구"에 소발구라는 농구를 슬그머니 끼워넣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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