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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러기는 백년의 수를 갖는다”

최국철

  • 2009-03-18 14:5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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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순신장군이 쓴 “한산도 야음”이란 시에는 “한 바다에(수국이라고도 함) 가을빛 저물었는데 찬바람에 놀란 기러기 높이 떴구나…”라는 시구가 있다.충무공의 우국충정이 담긴 시에 등장한 기러기는 나라일을 걱정하는 리순신장군의 수심을 담아내는 대상물로 등장했지만 계절로 “가을빛 저문데”는 추색을 이르는 말이고 “찬바람에 놀란 기러기 높이 떴구나”는 남쪽으로 날아가는 기러기라고 봐도 무방하다.그러니깐 충무공이 이 시를 쓴 시기는 소슬한 가을바람이 떨어지는 가을쯤이 된다.

이렇듯 그 기러기는 봄에는 북으로, 가을에는 남으로 날아가는 철새다. 이제 경칩도 지나고 바야흐로 춘분, 청명절기로 들어서는데 이 시기엔 여기에서는 어김없이 인(人)자형 대렬을 이루고 끼륵-끼륵 울음을 떨구면서 북으로 흘러가는 기러기떼를 본다. 어딘가는 구슬프기도 하고 심란함을 더해주는 기러기의 특유한 울음소리를 들으면 먼 기다림으로 도시소녀를 기다리던 소년으로 돌아가게 되고 약간은 우울하게 된다.

하지만 나만의 여린 감수와는 상관없이 기러기만큼 우리 민족에게 대접받은 철새도 없다. 흔히 철새는 인간사에서 지조가 없이 흔들리는 사람들에게 따라 붙는 대명사이기도 하지만 동물에서의 철새는 원초적인 생존본능으로밖에는 볼수 없고 인간들에게 의해 왈가왈부할 아무런 하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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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러기에게는 몇가지 덕목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기러기는 사랑의 약속을 철저히 지킨다. 보통 수명이 150~200 년인데 짝을 잃으면 결코 다른 짝을 찾지 않고 홀로 지낸다.그리고 수직과 횡적 질서를 드팀없이 지키고 날아갈 때도 행렬을 맞추며 앞서가는 코기러기가 끼륵- 울면 질서를 잡고 뒤따라가는 놈도 끼륵-화답을 하여 례를 지킨다. 기러기는 자기가 왔다는 흔적을 분명히 남기는 속성이 있다. 이러한 기러기를 본받아 인간세상발전에 큰 힘이 되는 업적을 남길수 있는 사람이 되라는 상징으로도 쓰인다.

그래서 기러기는 인간들에게 가장 웅후한 대접을 받는다. 예로부터 기러기의 정절과 고절은 필요이상으로 찬양일변도를 달려왔다.현대에 이르러 고절은 이미 퇴색했다고 정평되고있지만… 흔히 사랑의 상징은 원앙새라 하지만 과학가들의 연구에 의하면 원앙새는 정절을 지키지 못하고 자기의 짝을 피해 가만히 다른 짝과 바람을 피운다고 한다. 하지만 기러기는 아니다. 기러기에게는 다른 짝을 곁눈질하는 일, 배반하는 일은 결코 없다.

우리 민족의 속담에는“기러기는 백년의 수를 갖는다”라는 말이 있다.

새도 그만큼 오래 사는것이니 남을 함부로 욕보이거나 얕보지 말라는 뜻으로 쓰인다. 하지만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기러기의 수명이 길다는 말도 된다. 이만큼 우리 민족에게는 기러기가 자고로부터 익조로 알려지고있고 더구나 변치 않은 사랑을 상징하는 새로 알려지고있다. 이런 원인에서 기러기는 혼례청으로까지 날아왔다. 우리 민족의 전통혼례에는 전안례라는 절차가 있다. 혼례상에 기러기목각이 오르는것이다. 아주 오래전에는 산 기러기로 치렀다고 했지만 근대에 와서 나무로 만든 목각기러기로 치렀다는 말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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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러기는 가을에 조선반도를 비롯한 동남아서 겨울을 지내고 봄에 시베리아, 사할린, 알래스카 등지로 가서 여름을 보내는 철새로 강, 바다, 늪지에서 사는 오리과에 딸린 늘씬한 새다

지난 세기 80년대 중국의 영화중에는 《돌아가고싶은 마음이 화살같다》라는 영화가 있다. 일제시기 항일련군의 한 전사가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홀로 대오에서 떨어지게 되고 산골의 한 녀인(스친꼬와 역)에 의해 구원된다. 이 가운데서 두 사람은 어느덧 사랑하게 된다. 여기에서 가장 고조부분이 바로 추색이 깃든 심산에서 끼륵-끼륵 남으로 날아가는 기러기떼를 바라보면서 갈등하는 주인공이다. 더구나 이 고조를 이끄는데 한몫 하는것은 영화 삽곡인데 “기러기가 남으로 날아가네 기러기가 남으로 날아가네…”를 반복하는 정서적인 가사다. 찬바람이 후루루 떨어지는 심산유곡에서 공중에서 음울한 울음소리를 떨구며 날아가는 기러기떼를 보면서 사랑하는 녀인의 곁을 떠나기 싫은건 인지상정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주인공의 심란한 마음을 대변하는 상징물로 기러기를 대용한것이 참 멋지다는 생각을 했다.

어느 글에서 한 사냥군의 수기를 읽은 기억이 나는데 남으로 날아 가다가 잠시 쉬려고 내린 무리중에서 한놈을 쏘았는데 다른 기러 기들은 다 날아갔지만 유독 남편이 되는 수컷만은 날아가지 않고 죽어가는 암컷의 곁을 지켰다는 사연을 보면서 인간의 잔인함을 질타하다가 죽어가는 짝을 지키면서 함께 죽어가야 하는 기러기의 그 사랑이 뭉클함을 이중적으로 감수해보았다. 그 이중성은 오늘도 변함없이 감수하게 된다. 우리 민족사회에서 행하는 장난식 부부 리별과 리혼, 산만한 가정생활, 그로 인기된 사회적인 불안들은 이제 작금년간에 회자된 현안들이 아니다. 우리 민족사회의 쇠퇴는 이런 가정불안들이 중첩되고 루적되면서 벼랑끝으로 올라가기 직전이다. 감정동물이기에 가능하다고 잠시 너그럽게 넘기다가도 다른 한편 고급동물이기에 리지도 없는 저급동물의 정절을 성찰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가 기웃거리게 됨은 나만의 이중적인 조급함이 아닐것이다.

하기에 오늘 우리 민족사회에 기러기란 철새를 다시 한번 정중히 추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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