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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의 락원

—리경자

  • 2009-03-19 18:12:03
저녁 노을이 곱게 물들때면 언제 어디에서 날아들었는지 참새들이 지저귀는 귀맛에 발목을 잡히군한다. 재작년 딸애의 성화에 못이겨 “뽀글”이라는 노란털강아지를 키우다가 너무 힘들어 8개월만에 억지다짐으로 농촌에 보냈는데 몇달후 또 본이아니게 “똘”이라는 하얀털 강아지를 맡게되였다. 강아지 건강을 위해 나는 매일 산책을 나가야한다. 내가 새로 이사한 동네는 강아지 키우기에 알맞춤한 지역이다. 넓은 공터와 조용하고 깨끗한 환경이라 좋고 7층아파트와 키돋음할듯 높이 자란 십여그루의 백양나무들이 가로수로 뻗어있어 더욱 좋다.나는 강아지때문이 아니라 “똘”이 덕분에 매일 식전 아침과 저녁무렵이면 산책을 나간다. 줄지어선 백양나무중에서도 제일 숲이 무성한 나무가지들에 모여있는 참새들이 아마 삼십여마리는 될것 같다. 그것들은 저마다 제모습을 뽐내듯 이 가지에서 저 가지에로 포르르 날아가 앉는가하면 어떤 놈은 고개 쳐들고 짹짹거리다가는 쑝하고 날아오르기도 한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저쪽 가지끝에서“째째그르르-”하면 이쪽에서 “삐쪼르르-”하고 “쪽쪼르르”,”똑또그르”마치 상우에서 굴러가는 콩알들이 노래소리 같기도하다. 락하산이 락하하듯 내리꼰지는 놈이 있는가하면 술래잡기 놀음에 비행에 급급한 짝지기들의 재미있는 몸짓에서 멀어져간 나의 아련한 동년의 향기가 솔솔 불어온다.

내가 태여나서 동년을 보냈던 고향마을이다. 마을 사람들의 안녕을 지키기라도한듯 마을 한복판에 아름드리 수양버들 한 그루가 름름하게 서있고 그나무 동쪽켠에는 그리 크지 않은 자연 늪이 있었다. 내가 소학교에 다니던 시절 여름방학이 돌아오면 나는 고향마을에 있는 할머니댁으로 줄달음치기에 바빴다. 물론 배고프던 시기라 먹을거리 많은것도 좋았지만 그보다 꽃분이랑 분녀랑 그리고 에지쁜 개구쟁이들과 함께 잠자리 잡는 재미가 나를 더 흡인했는지도 모른다. 타원형으로 들어 앉은 늪의 둘레에는 아이들 키를 훨씬 넘어가는 쑥부쟁이며 갈대숲이며 육지꽃버들 그외 이름 모를 무성한 수풀드리 수줍게 고개 흔들며 풀향기를 뿜어낸다.늪가에서 흔하게 자라는 가시연꽃, 개구리 밥풀꽃과 자라풀속으로는 갈색빛을 반사하는 장구애비며 헤염잘치는 물방개와 개구리들이 숨박꼭질하는것이 가끔씩 보이기도한다. 해가 서산으로 기울어 갈때면 싸리비자루나 자작나무로 만든 어설픈 마당비자루를 쳐들고 늪을 덮어 버릴듯한 헤아릴수 없는 잠자리들을 쫓아다니는 아이들은 땀냄새에 흙냄새를 반죽해갔다.요리조리 고개흔들며 자리에 않을듯 말듯 날개짓을 하는 잠자리들을 뒤쫓는 일이 그렇게 신날수가 없었다. 아이들 성화에 맑은 령혼을 담고있는 여름 늪가는 고요할새가 없었다.

세월은 무정하게 흘러갔다. 내고향에도 저 산너머에도 동화같은 풍경은 옛말로가 이어질뿐이다. 얼마전 한족친구의 부모님 80세 진갑잔치에 초청을 받은 일이 있었다. 한족들의 환갑잔치에는 여태 참석해본적 없는 나는 우리민족 잔치에 비해 썰렁할것이리라는 나름대로의 생각으로 호텔에 들어섰는데 주석대에서는 이십여명의 아이들이 손에 손을 잡고 열창하고 있었다. 그들의 표연은 잔치의 분위기를 끌어올리는데도 보탬이 될뿐아니라 먼저 입장한 손님들이 시간을 보내는데도 지루하지 않아 누이 좋고 매부 좋은것이였다. 재미있는 장면은 마지막 결속짓는 순간이였다. 잔치순례가 끝나고 아나운서의 힘 있고도 짤막한 한마디”시작”이라는 웨침소리와 함께 주인공의 손자소녀 증손자 증손녀 이십여명이 일제이 소리지르며 무대에 차려 놓은 상차림을 향해 달려가는것이였다. 마치 나무가지에 않은 무리새들이 폭죽소리에 놀라 포르르 날아나듯이. 상차림을 에워싸고 서로 밀치며 예쁜 아우성을 지르던 아이들은 저마다 제 마음에 드는것을 골라잡느라 한참 야단법석이더니 례식장에 진렬되였던 풍성하던 상차림이 거덜이 났다. 장수로인들의 환갑상에 오른 음식을 먹으면 아이들도 건강하게 오래산다는 점도 우리 조선민족풍속과 다를바 없었다. 잔치 분위기는 참새무리같은 아이들로하여 무척 흥성해졌다.내 집 희사는 아니지만 얼마나 마음이 즐겁고 뿌듯하던지 그보다 부럽다는 생각이 내 가슴을 더욱 부풀게했다. 경제시대라는 울타리안에서 함께 살아가지만 왜서 소 팔고 집 팔아 자식 공부시킨다는 우리 민족은 꽃봉이들을 천송이 만송이 피울수 없는지? 신랑신부 앞에서 꽃바구니들고 꽃보리를 뿌릴만한 꽃봉이들이 제 집안에서 찾아보기 힘들어 유치원에 가 돈을 내고 물색하는 상황도 이미 오래전 일이고 요즘은 또 례식장에서 가족을 대신해 춤을 춰주는 상업화그룹까지 생겨났다니 현대 문명이라해야 할지 가슴 아픈 일이라고해야 할지 나로서는 알바가 없는일이다.

우리 오십대들까지만해도 아이 둘씩 낳는것이 례사로운 일이라 생각했는데 그 밑에 사십대들인 내 동생들부터는 아이 둘씩 낳는것은 바보짓이라는것이 그들의 관념이었으니 별수 있나. 자기 편리만 생각하는 우리네 동생들 정말로 아니꼽다는 생각이든다. 장가갈 나이가 다 된 내 아들한테 이제 결혼하게되면 자식 둘은 무조건 낳아라 내가 돌봐 줄터니하고 말할것이다. 우리 아이들 세대부터라도 누구나 아이 둘씩 낳는다면 잠자리 잡기에 모여들었던 옛날 풍경이나 우리 동네 참새들의 락원만큼은 될수 없더라도 꽃보리 뿌릴 꼬마나 례식장에서 춤을 춰야하는 “무용수”들의 자리만은 채울수 있지 않을가.

서서히 피여오르는 저녁 노을이 오늘따라 터치도록 붉게 타고있다. 바람 한점 없는 청명한 날씨여서 저토록 빨갛게 타오르는것일가? 내 몸과 마음까지 짙게 물들인다. 소유욕이 없어 둥지마저 마련하지 않는 저 참새들에게는 앙상한 나무가지만으로도 천하를 얻은듯한 모양인가보다. -귀염둥이 똘이야, 저 키다리 백양나무를 좀 올려다보렴. 여기가 새들이 락원이란다-내 말을 알아듣는양 고개 살짝 옆으로 까딱이던 강아지도 내 마음이자 제 마음인듯 오늘따라 집으로 들어가지 않으려고 요리조리 빼돌이를 한다. 비록 팔락이는 빨간넥타이들이 보이지 않는 한적한 동네지만 귀맛 당기는 참새들의 조잘댐이 있어 기분이 넉넉한지라 내 시야로 동네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과 깔깔대는 청량한 웃음소리가 환영으로 들려온다.아마도 새들의 락원을 노래하는 내 마음이 여기에서 엿보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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