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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워도 꺾어버릴수 없는 저 릉소화

□ 박련희

  • 2009-04-16 15:24:37
릉소화는 꿀풀목 릉소화과의 식물로서 갈잎덩굴나무이다. 담쟁이덩굴처럼 줄기의 마디에 생기는 흡반이라 부르는 뿌리를 건물의 벽이나 다른 나무에 붙여 가며 타고 오른다. 7~8월에 가지끝에서 나팔처럼 벌어진 주황색의 꽃이 피는데 추위에는 약한 존재이다.

릉소화는 줄기의 길이가 사람의 키 다섯배 이상이나 되는걸 보아 그 생명력에 찬사가 터져나온다. 메꽃, 나팔꽃, 분꽃들은 해빛에는 초절임이 되여 맥을 못 추지만 릉소화는 뜨거운 여름에도 도도하게 잎을 접지 않는다. 그런 고운 빛갈의 꽃이 혼자의 힘으로는 서있지를 못하는것이 아쉬움이다. 릉소화는 긴 줄기를 어디에라도 기대여 감고 올라가야 하는 “기생꽃”이다. 이런 릉소화를 보노라면 느닷없이 부모에게 기대여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떠오른다.

얼마전 동료가 친척집 결혼식에 참가했다가 전해준 사실이다. 신랑과 신부는 각각 잘 나가는 대학생출신들이였다. 약혼식때 남자의 부모는 녀자측에 천문수자에 가까운 거액을 주었으며 결혼식때는 리무진을 동원했고 술도 몇백원짜리 명주를 상마다 놓았으며 신랑신부의 결혼례복도 모두 유럽의 명표옷으로 선정했다.

하지만 그 부모는 어떠했는가. 남편 없이 홀로 아들을 키워온 어머니는 외국에서 남자들도 힘들어한다는 건설공사장에서 일하면서 악을 쓰고 십년간 돈을 모았지만 불행하게도 석달전에 유선암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 어머니는 항암치료를 받다보니 약물반응으로 모발이 다 빠져 결혼식에도 참가할수 없었다. 우리 주위에서 흔이 듣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런 어머니에게 아직도 돈이 있다고 돈을 내라고 한단다. 여기서부터는 흔히 듣는 이야기가 아니다. 불효라도 막심한 불효다.

저 뜨락에 피여있는 릉소화를 다시한번 쳐다보았다. 릉소화가 어린 소나무의 허리를 칭칭 감고 돌아 나무의 순까지 점령해 목을 누르고 그것도 모자라서 더 감길만한 곳을 찾느라 하늘을 향해 헛손질을 해대고있었다. 릉소화가 소나무를 휘감아 올라가 자태를 뽐낼 때 솔잎은 제 몰골이 아니다. 죽을것처럼 노랗게 깔려있다.

작달막한 목화는 버거운 다래를 매달고도 홀로 서있는 강단을 보여주지만 릉소화는 홀로 서기가 버거워 옆의 나무를 의지하지 않고는 길게 뻗어 고운 꽃을 피우지 못한다. 불쌍한 저 릉소화는 우리 주변의 신세대 모습과 너무나 흡사하다.

얼마전 부모가 살림집을 사주지 않는다고 자살시도를 한 처녀도 있으며 사돈보기를 하던 날 남자집 부모들이 녀자집에 요구한 액수만큼 돈을 가져오지 않았다고 울며불며 야단을 치는 진풍경까지 벌어졌다고 했고 자녀들의 핍박에 못이겨 사돈들이 합심하여 대부금을 내여 자식들에게 살림집을 마련해준 일도 있다 하니 해프닝이라고 하기엔 너무 무겁다. 우리들의 부모와 자식들의 혈연관계가 무너지고있다. 부모도, 자식들도 오지 말아야 할 곳으로 너무 멀리 왔다.

우리의 젊은이들이 릉소화처럼 기대여 살아가려는 습성을 갖게 된데는 먼저 부모의 책임부터 묻고싶다. 부모의 립지를 재정립해야 한다. 우리의 민족사회는 이런 불행한 일로 루적이 되고 바야흐로 무너져가고있다.

렴치없는 릉소화들이 제 힘으로 몸을 추스리며 고운 모습을 자아낸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가. 아름다운 미인 같이 화려한 릉소화를 그래도 미워할수가 없다. 하는 짓이 밉다고 미워할수 없는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처럼 미워도 떠나보내기 싫은것이 자식이고 잘못을 저질러도 감싸주고싶은것이 자식이고 자기의 모든것을 다 주고싶은것이 부모이다. 꺾어버릴수 없는 저 화사한 릉소화처럼 …

하지만 이제부터라도 릉소화가 더는 기생적으로 출현할수 없도록 꺾어버려야 하지 않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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