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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항아리(외4수)

—김학송

  • 2009-05-14 16:43:21

긴 항아리가 도시를 질주한다
-쌍바! 쌍바!
1원짜리 한 장이 손을 들면
무 뽑듯 제꺽 당겨올린다
항아리가 꽉 미어지게
콩나물이 자랐지만
두부 앗듯 눌러짜며 연해연송
-쌍바! 쌍바!
먼저 난 콩나물 발에
허연 뿌리가 돋았는데도
끝없는 항아리의 배는 채워지지 않고
콩나물은 콩나물끼리 얼굴을 돌린다
-쌰! 싸! 콰이! 콰이!
쫒기듯 떠밀려
항아리속을 빠지면
그새 늙어버린 콩나물은
후-안도의 숨을 쉬고
항아리는 또다시
새 콩나물을 포식하며
하이에나처럼 질주한다

빈집.1

모두가 부재중
안해도 남편도
고모도 이모도
누이도 동생도
갑돌이도 갑순이도
모두가 부재중인데

썰렁한 온돌에는
늙은 바람이 홀로 앉아
주인을 기다리다
지쳐 조은다


빈집.2

개여울엔 빨래돌이
심심하다고 한다
뒤산엔 부엉이가
고독하다고 한다
동구밖의 당나무는
개 짖는 소리가
그립다고 한다
뜨락의 체온은 식어가고
외로움의 숲이 마을을 덮는다




돌은 내 친구

하늘보다 더 높은 곳에서
신은
자신의 목소리를
돌 위에 얹어
땅으로
내려 보낸다

그 어떤 친구도 돌보다 더 확실하게
나를 지켜줄 수는 없는 일이다
그 어떤 가족도 돌보다 영원하게
나를 바라볼 수는 없는 일이다
그 어떤 예술도 돌보다 강렬하게
인간의 마음을 흔들 수는 없는 일이다

파아란 돌바람이 솔솔 불어온다
따스한 돌온기가 살살 전해온다
정다운 돌의 웃음소리가 슬슬 들려온다

언제나 그립고 반가운 내 친구
오, 자네 이름은 수석




빈 잔

우리가 머물던 자리에는
바람이 노닌 발자욱과
구름이 서성거린 흔적 뿐

비어야 할 우수는 가득 차고
넘쳐야 할 햇살은 비어있다

텅 빈 마음에
구겨진 추억만 울고 있는데

하늘이 슬며시 키를 낮춰
잔속에 내려앉으니
그속에서 삐죽이
얼굴 내민 잔별들이

나의 눈물에 부닥치어
하나가 되고
둘이 되고
무수한 네가 되어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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