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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노래

—김 점 순

  • 2009-09-02 14:21:52
나는 자주 고독병을 앓는다. 얼마간 평온을 찾았다가도 어느 한 순간 예고도없이 꾸역꾸역 고독이 밀려온다. 생화를 사다가 꽃병에 꽂아도 보고 인터넷에서 흘러나오는 발라드를 들으면서 커피한잔의 여유도 음미해보았지만 즐거움은 잠간일뿐 고독은 쫓지 못한다. 누군가 나를 보고 행복한 비명을 지르는것이라고 핀잔한다. 아무튼 고독은 나로하여금 불면증을 앓게 하였다.

그러던중 지난 5월 출장의 기회가 생겼다. 밤기차를 타고 매하구시에 도착하였을 때는 이미 이튿날 새벽 3시경이였다. 개찰구에서 나오는데 “어우”, “어우”하는 요란한 웨침소리가 귀청을 때렸다. 워낙 택시운전수와 려관, 식당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간판을 든 사람들이 손님을 부르는 소리가 한데 겹쳐 “어우”, “어우” 하는 소리로 들려왔던것이였다. 새벽의 차거운 날씨때문인지 그들은 계절에 맞지 않게 두툼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어우”, “어우”하는 그 소리가 두려워 나는 사람들틈에 끼워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그 집요한 눈빛들을 피해…

우리는 기차역부근의 호텔에 주숙하게 되였다. 새벽 3시가 좀 넘었는지라 잠간이라도 눈을 붙히기로 하였다. 한방에 든 친구는 벌써 꿈나라로 갔지만 나는 불면증때문에 잠들수가 없었다. 나는 또 습관처럼 잡생각을 굴리기 시작하였다.…오늘 론문발표회의에서 내 론문이 특등상을 받을수 있을가?…쳇, 다들 인터넷에서 론문을 퍼다가 짜깁기를 한다던데 …

한참이나 이리뒤척 저리뒤척하다가 어슴푸레 잠들가말가하는데 갑자기 “어우”, “어우”하는 요란한 소리가 호텔방까지 흘러들어왔다. 아까 개찰구를 빠져나올 때 듣던 그 소리가 분명했다. 나는 끌신바람으로 창가에 다가가 카텐을 열고 보았다. 아까 기차역에서 우리가 개찰구를 빠져나올때처럼 택시운전수, 려관, 식당주인들이 손님을 부르고 있는 소리였다. 아마 새벽기차가 방금 들어섰는지 한패의 손님들이 우르르 개찰구를 빠져나오고 있었다. 택시운전수, 려관, 식당주인들은 천으로 바자처럼 길다랗게 테를 두른 밖에서 개미한마리 빠져나갈틈도 없이 빽빽이 둘러선채 손님을 부르고 있었다. 꼭마치 권투장밖에서 응원하는 응원군들같았다. 아마 기차가 들어설때마다 반복되는 풍경인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어우”, “어우” 그 소리는 새벽 4시경에도 6시경에도 계속하여 들려왔다.

호텔에 주숙한 다음날 밤, 나는 또 불면증에 시달렸다…아까 몇번째로 론문발표하던 선생이던가? 그 선생이 론문발표할때 끄덕끄덕 조는 사람이 여럿 있었어…점심식사때 볼라니 그 녀선생 술량이 대단했어. 무슨 녀자가 안주도 없이 술만 퍼마셔?…



내가 허튼 생각에 빠져있는데 어디선가 고요를 깨뜨리며 이상한 소리가 간간히 들려오는것이였다. 분명히 “어우”, “어우”하는 그 소리는 아닌것같은데. 마침 그때 화장실에 가려고 방금 잠에서 깨여난 한방의 친구가 이상한 소리에 숨을 죽이고 귀를 귀울이더니 옆방에서 들려오는 섹스소리라며 웃는것이였다. 벽음장치가 잘 되지 않았는지 옆방에서는 흐느낌 비슷한 녀자의 신음소리가 끊어졌다 이어졌다 하며 들려오는것이였다.

옆방에는 분명히 중년남자손님 한분이 들지 않았던가? 그 남자손님은 첫날 우리가 호텔방에 등록할때 같은 시각에 등록했었고 더군다나 우리의 호텔방문의 키가 잘 열리지 않아 그 손님의 도움을 받지 않았던가? 우리는 13층 맨 동쪽방에 들었고 그 손님은 바로 우리 옆방에 들었었다. 그때 간단한 인사를 나누었는데 그는 혼자 출장왔다고 분명히 말했었다. 무슨 큰 장사를 한다던지…그러하다면 옆방에서 들려오는 이상한 목소리의 녀자는 누구일가? 그런데 그 이튿날 밤 옆방에서는 또다시 녀자의 신음소리가 들려오지 않는가? 어제밤 녀자의 목소리와 완연 다른 녀자의 목소리가…

한 호텔방에서 며칠동안 머무르고 있는 동안 나는 커다란 감수를 받았다. 폭신폭신한 침대우에서 불면증때문에 헛꿈에 모대기는 나의 행복한 비명과 창밖에서 들려오는 “어우”, “어우”하는 그 소리가 대조되면서, 옆방에서 흘러나오는 고독이 고독을 부르는 섹스소리와 새벽까지 끊기지 않고 들려오는 “어우”, “어우” 그소리가 대조되면서…“어우”, “어우” 그 소리는 열심히 살아가는 서민들의 삶의 목소리라는 생각에 괜히 부끄러워났다.

처음 내가 업수이보던 그 사람들, 그들의 집요한 눈빛들, 그들의 초라한 모습들 그리고 그들의 웨침소리 …밤이나 새벽이나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눈보라치나 아랑곳하지 않고 기차가 들어설때마다 그 자리에 뿌리내려 꼭같은 자세로 “어우”, “어우”를 웨치고 있을것이다. 생활을 사랑하는 마음마음이 합쳐져 울려퍼지는 소리였기에 비록 지휘가가 없어도 “삶의 노래”라는 아름다운 대합창이 연출될수 있지 않았을가?

그동안 행복한 고독에 신음하여온 나의 고약한 고독병이 부끄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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