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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들의 사과

□ 김경희

  • 2009-10-08 10:54:26
국경절이 돌아오자 황금련후가 닥쳐오고 그래서 일상을 어찌 안배할가 행복한 고민을 했다. 그러다가 내가 몸을 담군 등산협회에서 2박3일 사방대산으로 등산을 떠난다고 통지했다. 무엇을 준비할가 두루 궁리하다가 과일을 준비했으면 좋을듯싶어서 시장으로 향했다.

시장은 립추의 여지도 없이 사람들로 붐볐다. 시장매대에는 이름도 모를 온갖 과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그중에서 어른들의 주먹보다 더 큰 탐스러운 사과가 제일 눈길을 끌었다. 사과 한구럭 사들고 집에 들어서니 남편이 맛없는 사과 누가 먹는다고 그리 많이 샀냐며 가볍게 눈을 흘겼다. 그잘난 사과?…어느때부터 사과가 백성들에게 조차 추방을 받는 과일로 되였을가…행복한 고민이라는 표현이 가장 알맞는것 같았다.

어머니가 나를 임신했을 때 가장 드시고싶은것이 사과였다고 했다.여자들은 임신을 하면 문뜩 문뜩 먹고픈것이 생각나는것이 있는데 그걸 먹지 못하면 그것만 눈앞에 새물거려 잠도 못잔다.

근데 엄마가 나를 임신한것은 60년대초라보면 식량난이 가장 심할 때였다. 그러니 어머니는 사과는 물론 칼칼한 조밥도 배물리 드시진 못했으리라.

어머니가 사과를 먹고프다고 나의 아버지에게 졸랐더니 아버진 어떻게 구해왔는지 사과 두근 사오셨단다.그렇게 가난한 시기에도 돈만 있으면 사과도 구할수 있었나보다.그 두근의 사과는 보기만해도 입안에 군침이 돌았고 그 두근을 다 엄마에게 드려도 어머니는 단번에 다 먹을것 같았는데 아버지는 할머니, 두 고모, 그리고 자기까지 한 사람에게 하나씩 나누었는데 그렇게 딱 한 사람에게 하나씩밖에 차례지지 않았단다.아버진 아마 그렇게 한 사람에게 하나씩 차례질수 있게 살 때 그렇게 샀는지도 모른다.

엄마는 자기앞에 차례진 사과를 게눈감추듯이 먹어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나서 다른 식구들이 맛있게 먹는걸 부러운 눈길로 바라보는데 다른 사람은 말고라도, 나의 아버지라도 자기걸, 아니 드시다 절반쯤이라도 자길 넘겨주길 바랐단다.진짜, 두근을 혼자 다 먹어도 성차지 않을만큼 사과가 먹고팠는데, 신랑인 나의 아버지가 그걸 알아주길 그렇게 바랐단다. 하지만 아버진 아버지대로 자기앞의 몫을 드시더란다.그것이 그렇게 서운했다는 엄마.다른 사람은 몰라도 남편은 자길 위해 자기 몫을 양보할줄 알았는데 아니더라는것이 서러웠고 또 하나는 나의 아버진 남자여서 모른다치고 시어머니는 아시니깐 혹 양보할지도 했는데 시어머니도 양보하지 않고 자기 몫을 드시는것도 서러웠단다. 손아래 시누이들은 말할나위없이 자기처럼 사과 하나가 무척 모자랄것이니깐 더 뭐 바랄것도 없는것이니깐.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거야 엄마 혼자의 욕심이지, 참으로 오래간만에 보는 먹음직한 사과를 보면 누구든지 게눈감추듯이 먹을 생각부터 날것이 뻔하다.배가 고프면 리성적인 사고가 약해지게 됨은 당연하다.

그 사과 한알이 엄마가 나를 임신했을 때 드신 유일한 과일이다.그래서 세월이 많이 흐른후에도 엄마는 그냥 그 사과 사연을 추억했다. 가난한 세월 백성에게는 사과 한알이면 고작이였다.

하지만 내가 시집가서 내 딸애를 임신했을 때는 1985년 가을이여서 난 사과배 를 량껏 먹을수가 있었다.내가 사과배를 무척 좋아했기에 남편은 갖 결혼해서 힘든 상황이였는데도 어디가서 사과배를 상자채로 구해온것이였다.그 사과배를 먹으면서 나는 그냥 어머니의 그 사과 사연을 생각했고 어머니의 과거의 아픔을 추억하군 했다.어머니나 나는 불과 20년 차인데 그 세월이 흐른 뒤 살기가 많이 좋아진것이였다. 어머니는 우리 집으로 오실 때마다 창고에 쌓여놓은 사과배를 보면서 혀를 차군 했다. 아마 당신의 그 아팠던 사과 사연을 추억했으리라.

근데 또 스무해도 넘어 흘러 나의 딸애도 당장 시집갈 나이가 되고있다.인제 딸애도 시집을 가 임신을 하게 되면 나는 딸애는 나의 엄마나 나와는 달리 먹고싶은것은 다 먹을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세월이 너무 살기 좋아져서… 이름도 모를 갖가지 과일들이 눈앞에 넘쳐난다.하지만 딸애는 사과에는 눈길도 주지 않는다. 어머니의 그 사과는 이제 딸애에게는 과일도 아닌것처럼 푸대접을 받는다.

이튿날 산행준비를 하는데 상해에 있는 딸애한테서 전화가 왔다. 혼자 빨래하기 싫어서 2000원 주고 세탁기를 샀다고 한다. 잘했다고 하면서 사과를 많이 사먹으라 했더니 딸애는 무슨 말인가 한동안 잠잠하더니 까르르 웃었다. 생뚱같은 나의 말을 듣고 외할머니의 사과 사연을 생각난 모양이다. 그러면서 한마디를 했다. 어머니도 못말려…

나의 엄마가 사과 한알 겨우 넘긴 임신기 입덧을, 딸은 사과배 한상자로 넘겼다. 그런데 그 딸은 이제 그 사과를 보는체도 안한다. 우리의 백성의 사과는 이런 연혁을 거치면서 그래도 해마다 빨갛게, 탐스럽게 열리면서 시대를 구가하나 본다.

그래서 시장에는 사과가 산더미처럼 쌓이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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