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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웃 당씨

  • 2011-06-08 15:02:18

단위아빠트에서 이사나와 새 아빠트에 들면서 나는 부쩍 신경을 도사리게 되였다. 왜냐하면 단위아빠트에서는 나가고 들어오고 매일 면목있는 사람들과 상대하니 마치 시골마을의 한동네와 같은 기분이였지만 새로 이사나온 아빠트는 모두 낯선 사람들인데다 그것도 한족들이 대부분이다보니 복도나 층계에서 만나면 고작 고개나 끄덕이는 정도에 그쳤으며 서로 마실을 다니는 일은 근본 없었을뿐만아니라 방범문만 굳게 닫으면 서로의 공간에서 누구도 관계치 않는다. 말그대로 콩크리트속에서 정이 메말라가는 생활을 한다고 하면 가장 적절할것 같았다. 그러고보니 시골에서 살던 옛시절이 항상 그리웠으며 시골은 아닐지라도 단위아빠트에서 저녁이나 휴일이면 서로 모여앉아 이야기를 벌리거나 혹은 술판을 벌리던 일이 그리워났다.
그러던 어느날 퇴근하여 집으로 돌아가니 어머니가 웃집 당씨를 두고 불쑥 이런 말을 해오는것이였다.
“저 웃집 당씨는 한족이라도 참으로 착한 사람이더라.”
어머니의 말에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니 사연의 자초지종을 말하는것이였다.
“내가 글쎄 문을 열고 열쇠를 빼지 않고 집으로 들어왔는데 당씨가 지나가다가 열쇠를 빼서 집에 들여다주면서 앞으로 조심하라고 귀띔까지 하더구나. 전날에도 내가 옥수수를 들고 올라오는데 만나서 기어이 집까지 들어다주면서 무거운걸 들면 넘어지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고 하지 않겠나?”
어머니의 말을 들으면서 나도 머리에 웃집 당씨를 떠올려보게 되였다. 새집을 사서 인테리어를 할 때 지나가면서 여러번 들려 이웃이 되여 참으로 반갑다고 말하던 당씨였으며 그후 욕실에 세면대를 설치할 때 다이야고무를 가져다주면서 그걸 밑에 받치면 좋다고 하던 당씨였다. 하긴 그때 나도 당씨가 비록 한족이지만 다른 사람과는 다르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었다. 당씨는 원래 시내변두리의 채소농이였는데 아들이 아빠트를 사주어 들게 되였다는것도 그때 인테리어를 하면서 알게 되였다.
그후 내가 우연히 복도에서 당씨를 만나게 되여 그날 열쇠를 빼주어 참으로 고마왔다고 인사를 하자 당씨는 소탈하게 웃으면서 이렇게 말하는것이였다.
“별걸 다 가지고 그러네. 우리는 이웃이 아닌가? 앞으로 서로 도우면서 사이좋은 이웃으로 살아가세.”
비록 민족이 다른 한족이 한어로 하는 말이였지만 소탈하고 꾸밈없는 그 한마디가 나의 마음에 와 닿아 다시한번 당씨를 쳐다보지 않을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퇴근하여 집으로 돌아오니 안해가 웃집 당씨의 안해와 마주앉아 얼굴에 웃음을 담고 한창 이야기꽃을 피우고있었다. 알고보니 당씨의 안해가 채소를 한바구니 들고 왔던것이다. 안해는 고마움에 한족들에게는 희소한 고추장을 떠주고 서로 무랍없는 이야기를 나누고있었다. 그후 당씨의 안해는 우리 집 고추장이 맛있다면서 자기를 도와 고추장을 담궈줄수 없겠는가 하는 청을 들어왔다. 보험회사에 출근하는 아들이 고추장을 류달리 좋아하여서라는것이였다. 안해 역시 흔쾌히 대답하자 그 자리에서 돈을 내놓으면서 고추장을 만드는데 드는 재료를 사서 좀 수고해달라고 하는것이였다. 안해는 그날 오후로 장마당에 가 고추장에 드는 재료를 사다가 고추장을 담그어주었는데 당씨와 당씨 안해는 너무도 기뻐서 얼굴에 웃음꽃을 활짝 피우면서 연신 고맙다고 인사를 해왔었다.
그로부터 당씨네는 색다른 음식이 있을 때마다 우리 집으로 내려왔으며 나의 안해 역시 한족들의 습관에 따라 빈그릇을 줄수 없다는 마음에서 김치와 같은 우리 민족의 음식을 담아주군 하였는데 완전히 시골집에서 바자너머로 음식을 주고 정을 나누던 그런 풍경을 그려가고있었다.
누구나 알다싶이 겨울은 해가 짧아 우리 같은 출근족들은 시간 맞추어 출근하자면 어두울 때 일어나야 했다. 그날도 아직 날이 채 밝지 않았지만 일어나서 움직이는데 초인종이 울리여 내다보니 당씨의 안해가 밥통을 들고 서있었다. 문을 열자 김이 무럭무럭 나는 밥통을 건네주면서 말하는것이였다.
“아직 식사를 하지 않았지요? 식사전에 가져오느라고 일찍 했는데……”
당씨의 안해가 가져온것은 옥수수떡이였는데 알고보니 내가 출근전에 가져오느라고 새벽에 일어나서 옥수수떡을 쪘던것이다. 나는 그날 아침 따끈따끈한 옥수수떡을 목구멍으로 넘기면서 후더운 당씨네 인정을 가슴으로 느꼈었다. 그날 안해는 김밥을 말아서 당씨네 집으로 올려갔는데 당씨와 그의 안해는 만날 때마다 그 김밥을 너무도 맛나게 먹었다고 인사를 해오는것이였다.
당씨의 딸은 의사로 향진에서 개인병원을 차리고있었는데 아버지와 어머니한테서 두 집사이의 일을 전해듣고는 부모네 집으로 올 때마다 토종닭알이나 산나물을 가져다가 우리 집에 전해주기도 하였다. 그런걸 받을 때마다 우리 부부는 물건보다는 그들의 마음씨에 후더움을 느꼈으며 이름할수 없는 감정에 휩싸이는건 또 어쩔수가 없었다.
당씨는 시내와 떨어진데서 창고 야근을 서는데 그 주위에 밭을 일구고 채소를 심어 초봄부터 부추부터 시작하여 매일 비료를 주지 않은 무공해채소를 날라다주군 하는데 그 채소가 밥상에 오를 때마다 당씨의 그 진정어린 마음과 후더운 인품을 함께 먹노라면 서로가 더 가까이 다가서고있음을 느낄수 있었다.
어느날인가 당씨가 가져온 싱싱하고 굵은 부추로 반찬을 만들어 먹으면서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을 가져보았다. 부추는 초봄부터 시작하여 베여먹는데 한번 베여서 끝나는것이 아니라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또 무성하게 되며 그러면 또 베여먹기를 가을까지 이어갈수 있으며 이듬해 봄이면 역시 베여먹기를 반복할수 있다. 한마디로 베여도 베여도 끝나지 않는것이다. 어쩌면 우리 집과 당씨네 집 사이도 부추와 같다고 하면 적절할것 같다. 베여도 베여도 끝나지 않는 부추처럼 우리 사이도 항상 끈끈하게 이어지면서 두터운 정을 쌓아가고있으니 말이다. 비록 민족이 다르고 콩크리트속에서 살아가지만 당씨네와 우리 집은 소박한 시골의 정을 그대로 이어가면서 오늘도 우리 두 집만의 즐거움과 행복을 만들어가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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