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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악계의 새별로 떠오르기까지

  • 2011-08-01 09:25:13

“가무단에 온지 오래되지 않지만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또한 잠재력이 있는 가수로서 앞으로 큰 무대에도 올라설 기질을 갖춘 유망주이다”고 연변가무단 박춘선부단장이 오늘 인터뷰의 주인공인 바리톤 김학준을 소개했다. 인터뷰는 연변가무단의 피아노연주실에서 진행되였다. 이곳은 김학준이 매일 찾는 곳이다.

2011년 1월 30일. 이날에 김학준은 처음으로 독창무대에 올라섰다. 지금까지도 그때 상황이 생생하다고 김학준은 반년전의 기억들을 끄집어냈다.

2011 신묘년을 맞으면서2011년 새봄맞이음악회가 성대히 펼쳐졌다. 음악회가 있는것은 알았으나 자기도 참가하게 될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는 김학준. 음악회의 개최를 반달가량 앞두고 박춘선부단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고향”을 독창으로 부르라는 통지가 전화 저켠에서 들려왔다. 김학준은 기쁜 마음을 감출수 없었다. 한편 소중한 기회임을 잘 알고 꾸준한 준비에 들어갔다.

김학준은 우선 “고향”의 작곡을 맡은 류영근선생을 찾았다. 첫 독창무대에서 선보이게 될 “고향”을 보다 잘 부르고싶은 마음에서다. 목소리나 좋고 기교가 우수하다고 해도 노래의 의미를 잘 파악하고 그 감정을 목소리에 담아야만이 가장 적절하게 보여줄수 있다는것이 그의 견해이다.

류영근선생은 “고향”은 어린 나의에 어머니를 여읜 어린애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는 노래이다. 따라서 절절한 감정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짚어주었다. 김학준은 부모님은 모두 건재하지만 고향인 길림성집안시유림진에 생활하고있는 그들을 그리워하면서 어린애의 그리움을 느끼게 되였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자신의 계몽선생이자 대학시절 지도교수인 연변대학 예술학원 전명호교수를 찾아 전문지도를 받았다. 또한 평소에도 짬만 나면 거울앞에서 서는 자세로부터 마이크를 잡는 자세, 손의 움직임까지 무대에서 자연스럽게 표현할수 있도록 꾸준히 련습해왔다..

음악회는 하루하루 다가서고 리허설을 하면서도 김학준은 긴장감을 풀지 못했다. 리허설을 하면서도 “실수하면 어쩌나”는 생각에 긴장감은 커가기만 했다. 세번째 순서로 무대에 오른 김학준, 첫 독창무대를 무사히 완성했다. 무대에서 내려오기 직전까지 혹여 실수라도 할가봐 두려웠던 김학준은 “해냈구나”는 생각에 안도의 숨을 쉬였다고한다.

음악회를 관람한 주급령도들은 김학준에게 긍정을 보내면서 앞으로 우수한 가수로 성장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또한 작곡가 류영근선생은 이 노래에 가장 가까이에 다가서 부른 가수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김학준은 “무대우의 1분은 무대아래에서 10년간 공을 들인 결과이다”는 말이 있듯이 모든 칭찬을 앞으로 더욱 노력하라는 관심으로 삼고 우수한 바리톤으로 성장하는데 노력을 아끼지 않을것이라고 말했다.

김학준은 2008년 연변대학 예술학원에서 졸업한후 연변가무단 합창단의 가수로 있은지 올해까지 3년째 된다. 그동안 2009년 4월 국제조선평양 “4월의 봄”예술절에서 4인창 금상, 2009년 11월 길림성제1회소수민족새가요콩쿠르 2등상, 2010년 3월 길림성청년가수텔레비죤콩쿠르 및 제14회 CCTV청년가수텔레비죤콩쿠르 길림구역선발콩쿠르에서 동상을 받았고 올해 7월에 있은 “2011베르디국제성악콩쿠르 중국선발콩쿠르”결승정에서 최우수남자가수상을 받아안았다.

현재 연변가무단의 가장 나어린 바리톤으로 활약중인 김학준, 첫 독창무대를 알차게 준비해오던 초심을 갖고 하나하나의 발자국을 새겨가면서 성공에로 향하는 길을 개척하여 더욱 큰 무대에 올라 더욱 많은 관중들에게 감동을 보내기를 기원한다.

허국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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