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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숲에서

□ 오기수

  • 2011-08-19 09:09:18

더운 삼복이라 아침부터 해살이 따갑다. 달아오른 마음의 갈구를 달래기엔 숲보다 더 나은것이 없는것 같다. 웅장한 산세와 울창한 푸른 숲은 멀리서 바라보아도 마음이 시원하다. 오늘은 조용하고 시원한 숲속에서 나만의 진지한 감상에 젖으리라 마음을 단단히 먹고 남한산성 입구에서 시작하여 등산로가 아닌 작은 오솔길을 타고 사기막골 방향으로 걸어갔다.

속에 들어서니 불안한 마음이 다 없어지고 가슴이 한없이 후련해진다. 어느 바위틈에서 범이 나올가 도깨비 나올가 산적이 나올가 동행이 절실한 세월도 있었겠지만 요즘 세상은 인기척이 그렇게 반갑지만은 않은것 같다. 오히려 온갖 새들의 지저귐소리와 이름 모를 벌레들의 바스락소리에 귀가 솔깃해진다. 다시 말하면 때 묻지 아니한 자연의 참소리가 어린 시절의 아늑한 추억을 몰고 오며 마치 자연의 아들로 돌아온듯한 기분에 가슴이 설렌다. 새소리 정답고 보이는 작은 풀잎마다 싱그럽다. 숲은 혼란스러운 마음을 진정시키고 지치고 찌든 령혼을 정화시키는 최상의 쉼터임이 틀림없다.

론 남한산성에 처음 오른것은 아니다. 전에 몇번 등산로를 따라 산행을 한적 있다. 허나 건강관리 차원에서 부지런히 걷다보니 이처럼 청정한 공기속에 아가미질 하며 혼탁해진 령혼을 세탁할 겨를이 없었다. 오늘은 그래서 일부러 나만의 아늑한 숲을 찾은것이다. 숲속에서 나는 내 마음의 초라한 보따리를 풀어헤치고 자연과 교감을 나누고저 한다. 모처럼 스스로를 옭아맨 동아줄을 풀어제낀다. 완전히 무장해제를 해도 괜찮은 숲이다. 여기는 누구의 시선을 의식하거나 누구의 입에 안주할 필요도 없다. 이처럼 고요한 나만의 시공을 마련하기도 여간 쉽지 않다는것을 알고있다.

살아온 세월을 돌아보면 나는 시간의 주인이면서도 시간의 소유자가 아니였다. 시간은 나를 지배하고 나를 모질게 휘둘렀다. 나는 내 시간들을 허무하게 빼앗기고 있었음을 숲속에서 다분히 느끼게 되였다. 물론 더 이상 자제할수 없을만큼 가슴 벅찬 희열의 순간도 있었고 나름대로 사람답게 열심히 사노라 했지만 따지고보면 그것마저도 완전한 내 자신의 소유가 아니였음을 오늘 자연의 품에 안겨서야 비로소 새삼스럽게 느낄수 있었다.

는 늘 뭔가에 쫓기여 달달 볶으며 살아왔다. 느긋하게 인생을 사색할 여유도 없이 주먹을 불끈 쥐고 주야장천 줄기차게 뛰여왔다. 순수한 마음으로 나무를 심던 순박한 시골아이가 어느덧 하얀 도시바람에 닳고닳아서 반질반질해진 중년을 살아가고있는것이다. 남이야 어찌됐든 나만 배부르면 그만이라는 리기적인 팽창주의가 심하게 요동치던 부끄러운 과거가 있었고 살아남으려면 어쩔수 없다는 당위성을 내세워 이같은 천박한 기교나 쑥스러운 몸부림도 정당화시켰다.

각박한 도시생활에서 자연과 령적인 교감을 나눌수 있는 운문의 여지가 거의 없다는것은 나뿐만이 아닌 우리 사회 보편적인 문제인것 같다. 숨막히는 갑속에서 붐비며 살아가는 인간들의 심경은 지나치게 예민해져 있다. 기름을 짜낸다는 생각이 드는 각박한 도시생활, 다람쥐 채바퀴 굴리듯 맴돌아치는 사람들이 어찌 숲속의 푸른 정기를 가까이하고 그 벅찬 생명의 숨결을 느낄수 있겠는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인간은 지금 잘살고 더 잘살기 위한 무한경쟁에 넋을 잃고 무분별한 개발에 열광하고있다. 나의 어린 시절에는 환경오염이란 단어 자체가 이 세상에 없었고 계곡을 흐르는 물에 입만 대면 부담 없이 시원한 물을 마실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산속에서마저 번거롭게 물병을 차고 다녀야 하는 시대가 온것이다. 인간은 지금 도시를 벗어나 야금야금 산을 뜯어먹고있다. 생존의 싸움터에서 거칠어진 심성들이 산마저 무단횡단하면서 겁도 없이 자연의 순리를 건드리는 어리석음이 안타깝다. 짙푸른 산자락의 쑥대밭은 사라지고 해마다 큰비만 왔다 하면 산사태가 일어나 아래쪽 농토와 가옥이 매몰되고 인명피해가 발생하곤 하지 않았던가?

산에서 내려다보면 턱밑에까지 쳐들어온 하얀 마을은 마치 오열하는 열기속에 지글거리는 연화지옥 같다. 인정이 증발하고 이웃사촌이 그리운 동네 진실 하나가 아쉬운 세상이다. 숲이 없는 산은 무덤과 같고 인정 없는 삶은 사막과 같다. 아무리 어깨 높은 권력자라도, 아무리 창고가 넘치는 재력가라도, 아무리 지식으로 중무장한 도사라도 가슴속에 사랑과 진실이 없다면 그것은 실은 허술하기 짝이 없는것이요, 언젠가는 허물어지기마련이다.

름의 숲은 푸르다. 그리고 무성하다. 숲은 모든것을 꺼리지 않고 쓸어안는다. 떠들지 않고 말없이 주어진 조건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숲은 위대하다. 가슴에 자식을 품고 정성으로 키워가면서 땡볕에도 푸른 정기를 잃지 않고 살아가는 숲은 무던한 아버지 같고 자애로운 어머니 같고 믿음직한 동네 어른 같아 보인다. 아무리 에어컨이요 선풍기요 하지만 천혜의 자연의 숲이 가져다주는 시원함을 당할수는 없다. 답답한 마음을 떨쳐버리고 신선한 자연의 공기를 마시기엔 산에 올라 가슴을 폄이 제격이다.

그래서 나는 산을 사랑한다. 또한 여름의 무성한 숲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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