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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시대

□ 오수란

  • 2012-02-24 09:45:56

라마와 연을 끊은지 오래된 요즘 우연히 80후들사이에서 뜨고있다는 《북경사랑이야기(北京爱情故事)》를 보게 되였다. 그중 이런 한토막의 이야기가 있다. 드라마속 친한 친구들이 항상 다니는 단골집이 있다. 대학시절부터 둥지를 틀었던 곳인데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며 세월이 흐른 뒤에도 여전히 그들만의 아지트이다. 철없던 시절 끄적였던 메모지도 벽 한면을 차지하고있다. 그들은 그 가게에서 모이면서 대학시절의 우정을 현재까지 끈끈히 유지하고있었다. 그런데 오랜 세월을 함께 한 단골집이 재개발을 리유로 철거되게 되였다. 결국 허물어져 쪼개진 벽돌장으로 어수선한 추억의 아지트……

장면은 유난히 내 가슴을 아프게 했다. 소중한 그 무엇을 잃기라도 한듯이. 그 이야기가 결국 내 이야기로 보여서 그런건지도 모르겠다.

범학교시절 우리에게도 항상 다니던 가게가 하나 있었다. 이름은 “일복(日福) ”, 후더분한 인상의 아주머니랑 남편 둘이서 꾸리던 식당이였다. 네상 정도 앉을수 있는, 작고 헐망한 가게였지만 그 아주머니의 음식솜씨만은 일품이였다. 집을 떠나 기숙사생활을 하던 우리에게 어머니의 손맛이 느껴지는 “일복”의 음식들은 천하별미였다. 그중에서도 빨간 고추가루를 듬뿍 뿌려서 한 얼벌한 감자채는 둘이 먹다가 하나 죽어도 모를만큼 맛있었다. 하여 우리는 생일과 같은 침실활동이 있을 때면 항상 사람당 20원씩 거둔후 “일복”으로 향하군 하였다. 우리의 단골메뉴인 감자채도 빠질수 없었다. “감자채에 고추가루를 많이 넣어주세요.” 잊지 않고 항상 하는 당부였다.

러면 실팍한 몸매의 그 아주머니는 “그래, 말 안해도 알고있어”라며 편한 엄마 웃음을 짓군 하셨다.

번은 한 침실 친구의 생일때문에 우리는 또 “일복”에 모였다. 선생님들 안 계신 곳에서는 어설픈 어른흉내를 내던 시절이라 맥주도 주문했다. 맥주를 다 부어놓고 권하려던 찰나, 잔등이 서늘해나는 느낌에 뒤를 돌아보니 어머, 우리의 대수선생님이 계실줄이야. 우리 여덟은 와뜰 놀랐다. 갑자기 부어놓은 맥주를 쏟아버릴수도 없고 목을 빼들고 눈치만 힐끔힐끔 살피던 그때, 대수선생님께서 쓴웃음을 날리시며 “누구 생일이니?” 그러시는것이였다. 두꺼비처럼 눈만 꺼벅꺼벅하며 생일인 친구를 가리키는 우릴 보던 선생님, “오라, 맥주 한잔 부어줄게” 하시는것이다. 야호~ 환호하는 우릴 보며 호탕하게 웃으시던 선생님은 료리 하나 시켜주겠다며 뭘 요구하나 물어보셨다. 우린 약속이나 한듯이 “감자채 한그릇 더요~”라고 합창을 했다.

…………

샐러리우먼의 행렬에 들어선지도 어언 8년째, 언젠가 우연히 “일복”가게부근에 갔던적이 있다. 그때 그 시절이 그리워 난 맛있는 감자채로 남편을 유혹하며 “일복”으로 끌고갔었다. 그런데 정겨운 “일복”가게는 온데간데 없고, 그 자리에는 대신 새 아빠트단지가 일떠서있었다. 재개발을 했던것이다.

간 느껴지는 쓸쓸함, 아직도 귀가에 대수선생님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쟁쟁히 들리는데, 손만 닿으면 그립던 친구들이 튀여나올것만 같은데 그곳은 이미 낯선 아빠트로 채워져있었다. 삶의 한순간이 뭉청 찢겨져 사라진것 같은 느낌이였다.

런 아픔을 또 겪은적이 있다. 바로 청년호가 사라지던 그날. 연길 하면 청년호가 떠오를만큼 꽤 유서깊은 곳이 아닐가싶다. 나 역시 청년호를 거닐었던 수많은 인파중의 한 사람이였고 내 생활배경으로 청년호는 꽤 오래동안 함께였던것 같다.

랬던 청년호가 추억의 저편으로 영원히 사라져버렸다. 괜히 슬퍼지는 날엔 청년호를 거닐면서 그제날의 추억에 젖어들고 그때 그 시절의 사람들을 떠올려보며 내 삶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볼 시간을 갖고싶기도 하다. 하지만 흔적도 없이 사라진 청년호는 내 젊은 날의 기억마저 모두 갖고 떠나가버렸다.

그런것 같다. 발전도상의 변혁의 시대를 살고있는 우리, 우리에게 추억의 장소는 갈수록 사라지고있다. 발전과 개발, 그에 따라 새 고층건물들로 가득차가는 도시……

내가 살아온 흔적들이 지워지는 슬픔, 과거를 지우고 미래를 바지런히 따라가야 하는 무가내, 숨가쁜 변화에 발묘조장식으로 성장을 다그쳐야 했던 우리들……

낡고 초라했어도 한때 우리의 청춘을 고이 품고있던 낡은 건물들이 새삼 그리워지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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