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라이프

편죽련

□ 리경자

  • 2012-03-02 09:36:17

짝 핀 꽃은 미소를 짓게 하고 잎사귀의 싱그러움은 정신을 맑게 해주므로 나는 매일 아침 저녁 면양 같은 애완견을 앞세우고 동네를 한바퀴 돌면서 다양한 종류의 화초들이 남실대는 화단을 기웃거린다.

진홍빛 해발이 퍼지는 어느 초여름 아침이였다. 그냥 스쳐지나던 길목에 시원한 부채살 같은 화초 잎사귀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원줄기에서 나란히 포개여져 책갈피에 끼운듯 흐트럼 없이 일직선으로 펼쳐진 파란 잎사귀가 신기해 때로는 칼끝같은 잎사귀에 손을 찔러도 보고 어루쓸기도 했다.

인간으로 비유하면 결이 바르고 지조를 굽히지 않는 결곡하고 청백한 성품이라고나 할가. 어쩐지 그 화초에 마냥 관심이 갔다. 무슨 꽃인지 궁금했는데 어느날 매일 애완견과 함께 만나는 이웃에게 물었더니 한여름에 피여나는 여러해살이 화초로서 그 이름이 편죽련이라는것이다. 그뒤부터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편죽련의 자람새를 지켜보는것이 즐거운 일과이기도 했다.

런데 초가을을 맞으면서부터 잎사귀보다 시들어가는 꽃에 눈길이 갔다. 여느 꽃들은 사명을 다하고 질 때면 시들고 찌들다가 땅에 떨어지는데 편죽련은 그게 아니였다. 만개했던 꽃들이 색이 바래고 빛이 바래가면서 새끼줄처럼 꼬이는것이였다.

나는 잎새들이 꼬이는 모습을 보려고 며칠간 시간을 바꿔가며 무척 신경을 썼건만 도무지 보아낼수가 없었다. 전날 저녁 활짝 펴있던 꽃들이 이른새벽에 나가보면 언녕 꼬여있었다. 아마도 고요한 야밤삼경에만 꼬이는것이 편죽련의 생리인가보다. 날이 감에 따라 뱅뱅 타래진것들은 해빛과 바람에 굳어지고 다져져 손톱도 들어가지 않았다. 탈리고 탈린 늦가을 편죽련을 마주할 때마다 야릇한 기분에 젖어 한참이나 발길을 멈추군 했다.

어쩌면 줄기에 달린 파란 잎사귀들이 다른 화초들처럼 여러모로 뻗어나지도 못하고 책갈피속에 끼운듯 납작하게 곧게만 자라야 했던 압축적인 운명에 한이 맺혀 그다지도 탈고 탈며 생을 마감하는것은 아닌지? 여태껏 살아오면서 수많은 꽃들을 보아왔지만 편죽련처럼 야릇한 느낌을 받은적이 종래로 없었다. 내가 왜 그토록 편죽련에 호기심을 갖고있지? 꽃의 안스러움이 내안의 안스러움은 아닐지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래 나한테는 지꿎게도 나를 따라다니며 괴롭히는 콤플렉스가 있었다. 어언간 30여년이란 긴 세월을 나와 함께 한 콤플렉스, 그것은 다름아닌 학벌콤플렉스이다. 내가 학벌이란 콤플렉스를 갖고있으므로 해서 무의식간에 편죽련과의 공감이 있었구나 하는것을 뒤늦게야 깨달은것이다.

대학생이 되고싶어 맨발청춘에 무지 뛰고 뛰였지만 동경해왔던 꿈이 발밑으로 빠져나가고말았다. 그때로부터 학벌콤플렉스란것이 생겨났고 날이 감에 따라 그것은 가슴 한켠에 두터워진 각질처럼 딱지로 굳어버렸다.

장로동자로 결혼을 했고 짚고 일어설 지팽이가 없는 신혼생활에 생계라는 멍에에서 벗어날수 없었다. 그러다 살림에 기름기 돌기 시작한 몇년후 고달픈 로동자 신세를 면할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었다. 내가 간절히 바라는것은 “환경”과 “배경”이 좋은 시도서관이였다. 허지만 내 의사와 달리 남편은 기어이 나를 백화점으로 전근시켰다. 도서관에서 책과 인연이 되다보면 지적으로 진보할수 있을뿐더러 직장에서 요구하는 학력이라는 “압력”으로도 학벌에 관심을 쏟기마련일텐데 친절한 미소로 돈을 주무르는 백화점 영업원이다보니 하는노릇이 수판알 튕기며 돈을 주고 받고 장부를 맞추는것이라 학벌과 하도 관계되지 않았다.

그런데 학벌이란 콤플렉스는 세월과 더불어 나를 많이 괴롭히기도 했다. 공직을 버리고 무역회사 사장이 된 남편은 끈끈한 인맥이 필요했다. 사업파트너와 친구들과의 모임이 자주 있었다. 특히 부부동반 모임때에는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다 국가 간부요, 공무원이요, 교원 아니면 기업가라 심히 기가 꺾이였다. 누가 뭐라고 말하는 사람도 없는데 학벌콤플렉스라는 렬등감에 빠지게 되였다. 술자리나 어떤 모임이 있을 때 모임내용에 따라 내 앞발명 연설준비를 위해 미리미리 책장을 들먹거리기며 필기도 하고 좋은 구절을 암송하는 실없는 “공부”를 하기에도 극성이였다.

학벌콤플렉스란 얼마나 끈질긴지 꿈자리까지 따라왔다. 결혼한지 20년이 되는데도 꿈속에서는 대학교에 입학하여 흑판을 마주한다. 그런데 그 기쁨도 잠간 소학교졸업생이나 다름없는 나는 선생님의 강의를 알아들을수 없어 모진 진통을 겪는다. 이런 꿈은 한두번만 꾼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지천명을 눈앞에 둔 내가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지는 일도 없는데 통신대학 공부라도 해서 대학졸업장이라도 따야 하겠다는 용기까지는 없었다.

학교졸업장이 아니더라도 어느 전문학교라든가 아니면 하다못해 직업이 유치원교원이라도 얼마만큼 위안이 될듯싶었는데. 학벌도 직장도 내세울것 하나 없는 나는 그 어떤 방패막이라도 만들고싶어 안달을 떨었다. 그때 마침 일어학습 고조가 일었는데 렬등감이라는 마음의 병을 치료하기에는 좋은 처방일듯싶었다. 일년동안 열심히 야학교에 다닌 덕에 쌀에 뉘가 끼우듯 가끔씩 일어를 써먹을 때면 나도 지적으로 보이는것 같아 자기위안이 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학벌에 대한 콤플렉스는 여전히 삭일수 없었다.

자식들이 학교에서 요구하는 등록표를 내 놓을 때면 모름지기 기분이 잡치군 했다. 호구부에 남편의 학력은 대학이지만 나는 고중도 아닌 초중이라고 적혀있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그런것도 민망스러웠다. 어느때인가 구식 호구부를 신식으로 바꾸게 되였는데 그때 아들녀석이 나의 학력을 고중으로 고치겠다고 했다. 엄마의 마음을 알기라도 한듯 아들애가 엉뚱한짓을 저지를 때에도 내가 초중이면 어떻고 고중이면 뭐 떡이 더 생기냐고 하면서도 별로 말리지 않았다. 결국 아들녀석의 주장대로 나는 잠간 사이에 식은 떡 떼여 먹듯 고중생으로 학력이 바뀌였던것이다. 호구부를 볼 때마다 학력란에 찍혀있는 고중이라는 글자를 보면 쓴웃음이 나온다.

고보니 학벌콤플렉스는 대부분 사람들에게 다 있다고 한다. 어찌보면 마음의 구멍이 아닌가싶다. 그것은 일종 상처이기도 하고 이루지 못한 소망이기도 하다. 그 구멍사이로 찬바람이 새여들어오기 때문에 그토록 시린것일가. 내 자신에게서 멀어진 이야기로 알았는데 내 인생설계도에 없었던 글을 늦깍이로 쓰게 되며서부터 또다시 학벌콤플렉스라는 마음병이 도지게 되였다.

지사들에서 원고뒤에 프로필을 요구할 때가 종종 있다. 남들은 학벌과 직업과 능력으로 자신을 멋지게 포장하는데 나는 학력도 직장도 내서울것 없다. 어느 잡지사에서는 보잘것없는 나의 학력과 직장때문인지 프로필을 보내라 하고는 정작 내 작품에 올리지도 않는다. 같은 값이면 분홍치마라고 프로필에 작가의 학벌이 높다거나 혹은 권세가 있는 직장이라면 그 잡지의 이미지도 그만큼 높아질것이다. 그래서 나는 차라리 내 글에는 프로필을 달지 않는것이 더욱 마음 편한것이다.

프로필에 백화점이라고 밝히는것이 마치 짚신에 국화를 그리듯 해서 쓰지 못한다. 생각하다 못해 때로는 나의 우편물이 오는, 동생이 꾸리고있는 학교를 나의 직장으로 올릴 때도 더러 있었고 프로필 자리를 채우기 위해 나는 할수없이 밝히기 싫은 출생 년, 월, 일을 적을 때도 있다. 후에는 그나마 연변작가협회 문학강습반 수료라는 방패와 다행히 작가협회 회원이라는 덕에 얼마간 그 자리를 메울수 있었다.

이루지 못한 소망은 다음해로 넘어 또 그 다음해 그렇게 인생은 흘러가고 나의 잠재의식속에 남아있는 이루지 못한 소망은 무의식의 메시지로서 하냥 애틋한 미련이 되여 오늘까지 나를 괴롭히고있다. 모두가 바라는 f4한국비자도 역시 그렇다. 공무원, 대학생, 교원, 의사, 기자 그리고 변호사나 사단법인 대표 그 가족까지 아니, 산업상 기술연구개발연구원 중급이상 농업기술자 등등은 속하지만 애석하게도 백의민족의 뿌리를 이어가느라 가진게 별로 없는 빈곤한 작가는 그속에도 끼이지 못하는것이다.

상은 원래 요지경이다. 별수 없다. 내놓을것 없으면 배경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나는 그것마저 미지수이니 욕심도 아집도 부리지 말아야 할것이다. 여태껏 그렇게 생각해왔듯이 글을 쓰는것을 다만 속풀이로 간주하고 그리고 속풀이로 묶어질, 입맛이 없는 잡곡밥 같은 글일지라도 모아서 수필집을 낼것이다. 수필집을 낼 계획으로 글농사를 부지런히 알차게 해야겠다. 그래서 살아가는 내내 가슴 어딘가에 락타의 등짐처럼 짊어지고 왔던 그 학벌콤플렉스를 기꺼이 내려놓으련다. 그리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겸손하면서도 당당하게 내 삶의 맛내기인 문학이란 오솔길에서 이름 없는 한송이 풀꽃으로 피여날것이다.

다음해에 피여날 편죽련을 그려본다. 가을철에 들어선 편죽련을 더는 안스럽게 쳐다보지 않고 진한 향기 머금은 꽃으로, 시고 떫은 삶의 굴곡을 견뎌내는 결백한 꽃으로, 꼬이는것도 또 다른 삶을 준비하려는 멋진 모습으로 보리라. 떠나감은 숙명이기에 아름다운 자리를 후세에 남겨주면서 흐트러지지 않고 알매지게 생을 마감하는 가을 편죽련을 미리 내 마음에 심어본다.

가을에 억지로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 분수에 맞게 사는 편죽련, 그 어느 꽃도 닮으려 하지 않고 자기다운 생명의 신비를 꽃피워가는 편죽련을 나는 진심으로 사랑하리라.

이 기사를 공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