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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구엄마

□ 남영선

  • 2012-03-16 09:19:18

한 여름의 아침해가 창문으로 비추어 들어올 때에야 철구엄마는 천근같이 무겁게 지지누르는 눈을 겨우 떴다. 얼핏 벽에 걸려있는 시계를 쳐다보니 벌써 다섯시 반도 넘어서고있었다. 옆의 침대를 보니 함께 있는 최씨는 언녕 나가고 없고 댕그란 빈침대만 철구엄마의 눈에 그대로 비쳐들어왔다. 여태껏 이렇게 늦어서 일어난적이 없는 철구엄마는 일어나려고 몸을 일으키다 도로 자리에 그대로 눕고말았다. 오늘 아침처럼 일어나기가 이렇게 힘들어본적은 거의 기억에 없다. 왜선인지 몸 전체가 땅속으로 잦아드는 느낌이 들면서 손가락을 까딱할 맥조차 나지 않았다. 그리고 머리가 무겁고 목이 뻣뻣해나기도 하면서 식전아침이건만 공연히 메스꺼움도 동반되는것이였다.

기 양로원으로 오기전도 그렇고 양로원에 와서도 오늘 아침을 빼고는 아침 늦잠을 자본적이 거의 없는 철구엄마다. 그제날 농촌에서 일할 때는 늦잠을 자고싶어도 일에 바삐 돌아치다보니 잘 사이가 없었으며 지금은 농촌이 아닌 시내 양로원으로 와서 일은 하지 않지만 옛날 굳어진 습관으로 아침 일찍 일어나서는 다른 로인들과 함께 아침 운동으로 로년디스코를 추거나 아니면 가벼운 운동을 하기도 하고 또 한참씩 걷기도 하는것으로 아침 시간을 보냈던것이다.

에서 아침마다 일어나서 채마전을 가꾸거나 돼지풀을 뜯어오거나 아니면 아침때시걱 불을 때주거나 혹은 가축들의 먹이를 주는것으로 아침나절을 오금에 불이 나게 바삐 돌아쳐도 식구들과 함께 보내는것이여서 힘든줄 몰랐었다. 지금은 비록 그런 일이 없어 편할것 같았지만 정작 전에 촌에서는 해보지도 못한 디스코나 운동 같은것을 하자니 습관이 되지 않아 생소한 느낌이였지만 그것도 시간이 지나니 그럭저럭 남들과 함께 어울려 보낼수 있게 되였다. 하여 종전과 다름없이 일찍 일어나서 가벼운 운동도 하군 하였는데 오늘 아침은 이렇게 늦잠을 잔것이다. 어쩌면 한방에 있는 최씨도 깨우지 않고 저만 혼자 나갔는지 모를 일이다. 엊저녁부터 머리가 아파나서 좀 일찍 잠자리에 들었는데 아마도 곤하게 자니 미안스러워서 그랬나보다 하고 혼자 생각으로 위안하고는 다시 일어나려고 몸을 움직였으나 몸은 점점 더 아래로 잦아드는 느낌이였다. 그럴수록 마음은 조급해났지만 좀만 더 누워있으면 되겠지 하는 생각에 그런대로 눈을 지그시 감고 그대로 누워있는수 밖에 없었다.

눈을 감고 손으로 가만히 꼽아보니 이곳 양로원으로 온지가 반년이 넘었다. 오늘 아침따라 눈앞에 철옥이, 철순이, 철구 이렇게 자식들이 차례차례로 줄줄이 나타나고 또 이어서 손군들도 나타나더니 좀 있다는 30여년전에 저 세상으로 간 령감이 나타나 철구엄마를 보면서 히죽이 웃고있었다. 화들짝 놀라면서 무거워나는 눈꺼풀을 가까스로 치뜨니 역시 자기가 누워있는 곳은 최씨와 함께 있는 양로원의 작은 방이였다.

철구엄마네는 원래 이곳 현소재지에서 백여리 떨어져있는 벽촌에서 살았다. 자식은 모두 셋으로서 큰딸 철옥이, 둘째딸 철순이, 막내로 아들 철구가 있었다. 비록 현소재지와는 좀 멀리 떨어져있었지만 살기는 좋은 고장이였다. 하마강이란 강을 마을옆에 끼고있어 종래로 가물을 모르고 살았으며 흉풍이 크게 없이 농사가 잘되는 고장이였고 또 산이 가까와 부엌아궁이가 굶은적이 없이 항상 도막나무를 땔수 있었다. 당시로는 농민들이 제일 바라는것이 도막나무를 때면서 이밥을 배불리 먹는것이였는데 그때 세월에 모두가 그랬던것처럼 이밥으로 배를 마음껏 채울수는 없어도 굶어죽는 사람은 없었기에 다른 고장에서 그 마을로 이사를 오려는 사람이 갈수록 많았다. 그러자 마을에서는 이사호를 받아도 로력을 따지면서 받았다. 150여가구가 살아가는 오붓한 동네였는데 인심도 좋아 서로 어려운 일이 있으면 발벗고 나서서 도와주었으며 크고작은 잔치는 모두가 모여서 제집일처럼 즐겁게 보내였다.

당시 철구네는 다섯 식솔이였는데 큰딸 철옥이가 16살, 둘째딸 철순이가 13살, 막내아들 철구가 10살이였지만 철구아버지가 생산대에서 감농군으로서 봄부터 겨울까지 일에 빠지지 않았고 철구엄마 또한 그때말로 드살이 세서 아이들을 셋이나 거느렸지만 여느 녀성들보다 더 억척스럽게 일했기에 두 사람이 공수를 많이 벌어 량식대는 문제가 없어 그럭저럭 먹고 살아갈수는 있었다. 비록 일년사시절 손이 마를새없이 일손을 놓을새가 없었지만 두 사람 다 새끼한테는 대단한 사람들이라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는것이 힘으로 되여 힘든줄 모르고 일하면서 살았다.

런 그의 집에 청천벽력이 떨어질줄이야. 참으로 사람의 일은 한치앞도 내다보기 어렵고 재앙은 눈섭밑에서 떨어진다더니 바로 철구네를 두고 한 말 같았다. 이른 아침 생산대의 벼를 나라에 공량으로 바치기 위하여 수레에 벼를 싣고 떠나간 남편이 점심때쯤 시체로 변하여 돌아올줄이야 누가 알았으랴. 아직 날도 밝지 않은 그날 아침도 철구아버지는 세상모르고 꿈나라에서 헤매고있는 철구의 볼에다 꺼칠꺼칠한 수염이 있는 볼을 부비고는 집을 나섰다. 솜이 비죽비죽 나온 허름한 솜옷을 입은데다 새끼로 허리를 질끈 동여매고 벼를 실은 다이야차를 끄는 소들에게 채찍을 쨩쨩 울리면서 현소재지를 바라고 길을 떠났다. 그런데 현소재지에 거의 도착할무렵 차바퀴가 고장이 나서 다이야차를 세우고 나무로 된 제동장치를 고정한 다음 차바퀴밑으로 들어가 보는데 그만 마주 달려오던 자동차의 급작스런 경적소리에 고동매로 선 성질급한 스칼이소가 화들짝 놀라서 뛰여오르는바람에 벼마대를 만재한 다이야차가 철구아버지를 깔아뭉개며 지나가고말았다. 함께 가던 사람들이 달려왔을 때는 철구아버지가 입으로 시커먼 피를 꾸역꾸역 토해내고있었는데 그 세월에는 길에서 급히 련계할 방법도 없는지라 장정 몇이서 엇갈아 둘쳐업으면서 현소재지병원으로 달려갔을 때는 철구아버지가 말 한마디 못하고 영영 숨을 거두고 식어갈 때였다.

아침까지 허름한 옷일망정 입고서 그렇듯 밝고 씩씩한 표정으로 집문을 나서던 남편이 두눈을 꼭 감은 꿋꿋한 시체로 변하여 집으로 들어왔을 때 철구엄마는 그 자리에 그대로 돌처럼 굳어지고말았었다. 입으로 아무런 소리도 나가주지 않았으며 그저 손만 허우적이다가 그대로 그 자리에 폴싹 물앉으며 정신을 잃고말았다. 여러 사람들이 부산을 피우면서 한참을 주물러주어서야 간신히 정신을 차리였는데 그후의 정경은 차마 눈뜨고 볼수가 없어 모두들 함께 가슴을 끓이고 눈물을 흘리면서 울었었다.

녀자 혼자몸으로 자식 셋을 거느린다는것 자체가 너무도 힘에 부친 일이 아닐수 없었다. 남편이 있을 때만 하여도 두 사람이 억세게 벌어서 그런대로 생활을 이어갈수 있었지만 남편이 돌아간후로는 철구엄마도 몸이 쇠약해져 전처럼 일할수가 없었으며 또 자식 셋까지 보살펴야 했으니 말그대로 갈수록 심산이고 그믐날밤처럼 앞이 캄캄하기만 하였다. 남편이 생산대의 일로 돌아가서 공상이라고 보조를 주기는 하였지만 그 보조는 말그대로 멸치똥만큼이여서 문제를 해결할수 없는데다가 남들의 눈과 말밥이 더욱 싫어서 원체 강의한 철구엄마는 그것을 받지 않고 떳떳이 살아가기로 하였다. 그러다보니 혼자 벌어들이는 공수로는 식량대도 다 값지 못하여 농민이지만 쌀고생을 해야 했으며 어린 자식들에게 저녁이면 별수없이 옥수수죽을 먹이지 않을수 없었다. 그래도 세 자식들은 투정 한번 부리지 않고 잘들 먹어주었으며 앓지 않고 튼실하게 잘 자라주어 그런대로 시름을 놓을수 있었다. 그러나 아이들이 남들보다 못입고 못먹는것을 바라볼 때면 철구엄마의 가슴에서는 피눈물이 줄줄 흘러나왔으며 말도 없이 훌쩍 떠나간 남편까지 공연히 원망스러워났다. 옆의 아낙네들도 철구엄마의 성미를 잘 아는지라 좋은 마음에서 막내아들인 철구를 입양시키는것이 좋지 않느냐고 선의적인 권고로 말을 걸어왔다가 공연히 철구엄마의 노여움을 사서 무참을 당하군 하였다.

(어떻게 낳고 키워온 아이들이라고 남을 준다더냐. 내가 죽기전에는 절대 그런 일이 없을거야!)

그때마다 철구엄마는 이를 악물고 마음속으로 굳게 다지군 하였으며 또 마음을 다진후로는 더 억세게 일을 하였다. 녀자 혼자몸이니 가장 걱정거리가 땔거리를 해결하는 문제였는데 철구엄마는 그 땔거리때문에 탈곡철 남들이 다 휴식하는 쉼참에도 쉬지 않고 북데기를 산더미처럼 지고 집으로 두세축씩 오르내리면서 땔거리를 장만하였으며 가을철에도 집으로 돌아올 때면 도랑뚝에서 쑥이나 잡초를 한짐씩 지고 돌아오군 하였다. 그러는 철구엄마를 두고 동네사람들은 꼬리없는 암소라고 끌끌 혀를 찼으니 얼마나 헌걸차게 일하였겠는가는 가히 상상할수 있는것이다. 철구엄마가 그렇게 일하였기에 비록 남들보다 잘살지는 못해도 자식들 모두 현소재지 중학교를 졸업하게 하였으며 다른 집애들 못지 않게 입히기에 나름대로 발버둥질치면서 살았었다. 가난한 집 자식들이 먼저 헴이 든다고 엄마가 고생하니 아이들도 일찍 헴이 들어 엄마의 일손을 도와나섰으며 돈도 무척 아껴썼다. 큰딸인 철옥이도 고중을 나와서는 엄마의 일손을 도와 일을 했으며 동생들의 뒤바라지를 착실히 해나갔다.

과부문전에 시비가 많다고 철구엄마가 혼자 나서 한두해가 지나니 홀아비들도 기웃거리기 시작하였고 또 혼처도 들어오기 시작하였지만 철구엄마는 자기 자식들을 눈치밥 먹이지 않고 오직 자기 두손으로 키울 욕심으로 기웃거리는 홀아비들에게 불벼락을 안기였으며 또 들어오는 혼처를 거두절미하고 모두 밀막아버렸었다. 그렇게 되니 다시는 철구엄마와 아이나 혼사에 대하여 말을 걸어오는 사람이 없게 되였으며 지어 어떤 사람들은 철구엄마를 두고 성격이 괴퍅하다고 뒤공론까지 하였다.

그러다 호도거리농사를 시작해서 선후로 딸들은 시집을 가고 철구와 철구엄마만 남아 단촐한 가정생활을 시작하게 되였는데 철구가 나이가 들어갈수록 혼처가 나지지 않아 속을 무던히 태우기도 하였었다. 젊어서부터 부지런한 철구엄마이고 철구 또한 부지런한 아버지를 닮아서인지 성품이 어질고 부지런하여 생활은 펴이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철구엄마는 나이가 들면서 젊어서부터 일손을 놓지 않아서인지 차츰 몸의 여기저기가 불편하면서 아파났는데 그럴수록 며느리비위만 더해갔다. 철구는 마음도 어질건만 엄마의 생각과 기대와는 달리 혼처가 쉽게 나지지 않아 한해두해 로총각나이를 먹게 되였으며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마을에는 처녀가 날따라 적어져만갔다. 그무렵 철구의 두 누나는 한국으로 위장결혼을 가게 되였고 철구 또한 다른 사람의 소개로 월강녀를 만나 가정을 이루게 되여 오랜만에 가정에 기쁨을 더해주어 모두가 즐거움에 묻히게 되였다. 그런데 그 즐거움도 얼마 가지 못하고 근심으로 바뀌게 될줄이야.

월강녀다보니 향파출소에서 시도 때도 없이 조사를 내려와 벌금을 시키기에 결국 먼곳으로 전전하면서 떠돌이생활을 해야 했으니 철구엄마는 빈집에서 엄마없는 외손군들을 돌보면서 하루하루를 보내야 하였다. 자식들이 농사일을 하지 못하게 하여 비록 농사일은 하지 않아 육체적으로는 편했지만 마음은 항상 철구일로 졸이면서 살았고 언제면 돌아와서 손군을 안겨줄가 하는 기대감만 부풀리면서 살았다. 그렇게 떠돌이로 몇년 보내던 철구가 안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철구엄마의 기대와 바람대로 떡판같은 아들을 업고 왔으며 그것으로 철구엄마는 십년 체증이 하루아침에 내려가기라도 한듯이 하늘에 둥둥 뜬 기분이였다. 비록 아이까지 낳고 돌아왔지만 필경은 월강녀다보니 하루도 발편잠을 잘수가 없었으며 마치 불방석에 앉은 느낌이였다.

그런데 생각밖에도 행운이 떨어질줄이야. 철구의 안해 되는 월강녀가 어떤 경로를 통하여 한국으로 가게 되였던것이다. 처음에 철구와 철구엄마는 머리카락이 있는 음식을 먹은것처럼 마음이 개운하지 않고 께름해났으며 떠나보낼 때는 모두가 눈물을 줄줄 흘리고야말았다. 비록 월강녀가 이제 자리를 잡게 되면 철구와 아이를 데려가겠다고 맹세처럼 말했지만 이십여년 함께 살던 부부도 하루아침에 남남이 되는 세월이라 쉽게 변하는 사람의 마음을 쉽게 믿을수 없었던것이다. 며느리가 떠나간 집은 휑뎅그렁하였지만 그래도 손주가 있어 철구엄마는 마음이 즐거웠고 또 무언가 믿을것이 있어서 좋았다.

눈물을 휘뿌리면서 맹세하고 떠나간 월강녀는 말대로 철구와 아이를 데려갈수 있는 수속을 보내와서 마침내 수속을 마치게 되였다. 철구까지 떠나가면 이제 철구엄마 혼자서 살아야 했지만 그래도 아들과 손자가 며느리옆에 가게 되고 또 돈도 벌게 된다니 아쉬움보다도 기쁨이 더 앞섰다. 그무렵 한국에 있는 두 딸이 이 정황을 알고는 철구와 토론결정한것이 엄마를 한국으로 모셔오라는것이였다. 그 말을 들은 철구엄마는 내심 즐겁기는 하였지만 또 근심과 걱정도 뒤따르는건 어쩔수 없었다. 한국에 한번쯤 다녀오는것도 나쁠것은 없지만 이제 늙고 병든 몸으로 아이들에게 짐만 지운다는것도 마음에 내키지 않았던것이다. 옆사람들한테서 한국에는 무어나 그렇게 비싸다고 하는 말을 들었던 철구엄마였다. 결국 철구엄마는 집에 남겠다고 버티였는데 철구가 엄마몰래 수속을 끝마치고 억지로 팔을 끌고 또 딸들이 하루에도 몇번씩 전화를 걸어와 못살게 굴자 별수없이 철구를 따라나서는수밖에 없었다.

한국에 간 철구엄마는 딸집과 아들집을 오르내리면서 시간을 보내게 되였는데 처음 한두달은 그럭저럭 신기하게 느껴져서 이곳저곳을 구경하다보니 어느사이에 훌쩍 시간이 지나가는지 몰랐지만 그후로는 자식들이 매일 팽이처럼 바삐 돌아치고 자신은 멀쩡히 빈집에 있자니 갑갑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그것보다는 우선 가만히 앉아있자니 딸사위, 아들며느리의 눈치가 보여서 송곳방석에 앉은 기분이였는데 그것이 더 편치 못하여 몸이 말째여났다. 허나 그렇게 여기저기 말째여도 돈이 들어가는것이 미안하여 꾹 참고 견디였는데 참고 견디는 그 고통이 더 병으로 되는것 같았다.

결국 일년도 못되여 철구엄마는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아이들에게 떼를 쓰게 되였다. 물론 딸들과 아들이 찬성할리가 없었지만 철구엄마가 하도 극성을 부리면서 우겨대여 자식들도 결국 엄마 편하게 하자는대로 일치를 보게 되였다. 철구가 엄마를 모시고 다시 중국으로 들어오게 되였는데 딸들은 공항에서 엄마의 손을 부여잡고 돈은 걱정말고 잡숫고싶거나 입고싶은것이 있다면 마음껏 사면서 건강을 챙기라고 부탁에 부탁을 거듭해왔다. 하긴 이제 쓰러져가는 초불의 나이에 이르렀으니 자식들의 부탁이 지당하지 않을수 없겠지만 한평생 농사일로 살아온 철구엄마는 그때까지 몸은 불편해도 큰병으로 앓아본적이 없기에 이제 다시 오고싶을 때 오마 하고 시원스레 대답하고는 비행기에 올랐던것이다.

철구를 따라 마을로 돌아와보니 원래 사람이 적어지던 마을이 그사이에도 많이 비였으며 독보조에도 늙은이가 몇이 없었다. 그런 산간벽지에다 엄마를 혼자두고 갈수가 없었던 철구는 결국 엄마를 여기 양로원에다 모셔오게 되였던것이다. 처음 철구가 양로원으로 가면 어떠냐고 물어올 때 철구엄마는 단마디로 거절하였다.

(양로원이라니, 말도 안되는 소리! 내 사지가 멀쩡해서 양로원에 어떻게 간단 말인가?)

러나 철구가 한번 가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가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철구를 따라 여기 양로원에 들어서게 되였는데 직접 눈으로 보니 생각과는 달랐다. 식사도 보기에는 괜찮아보였고 옷도 빨아준다니 편할것 같았으며 거기다 활동실까지 있어 시골의 독보조나 별반 다른 점이 없어보였다. 철구엄마보다 더 젊고 펀펀한 사람들도 양로원에 있었는데 알고보니 자식들 모두가 한국으로 나가다보니 오게 된 사람들인데 이를테면 자신과 처지가 비슷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였다. 그래도 그렇게 간절하게 오고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철구가 극구 설복하는것보다는 이제 늙은 몸으로 때식을 끓여먹으면서 혼자 있는다는것이 말처럼 쉽지만은 않고 힘들것 같아 결국 못이기는척하고 양로원으로 입주하는데 동의하게 되였던것이다.

양로원에 입주하면서 철구는 엄마한테 핸드폰과 옷가지들을 사주고는 일년만 이렇게 있다가 꼭 다시 한국으로 가야 한다는 대답을 쥐여짜듯 받고는 눈물을 흘리면서 떠나갔다. 자식들 모두가 한국에 있다보니 돈은 그립지 않게 많이 부쳐왔지만 젊어서부터 남편잃고 세 자식들을 키우면서 고생고생하면서 살아온 철구엄마다보니 돈을 쉽게 쓰게 되지 않았다. 하긴 매일과 같이 걸어오는 전화때마다 자식들은 돈걱정은 절대 말고 쓰면서 조금만 아파도 병원으로 가고 또 전화를 하라고 하였다. 엊저녁도 자식들이 전화를 걸어왔을 때 머리가 아픈 철구엄마의 목소리가 이상했던지 어디 아픈가고 물어왔지만 철구엄마는 공연히 자식들에게 시름을 안겨줄가 싶어 잠에서 금방 깨여서 그런가부다고 에둘러 말하였었다.

양로원에서의 하루하루는 덧없이 흘러가고 철구엄마의 자식들에 대한 그리움은 자신도 이상하리만큼 나날이 깊어만갔다. 비록 해주는 밥을 먹고 빨아주는 옷을 입으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있었지만 고생스럽게 키운 자식들의 모습이 눈에 삼삼히 밟혀왔으며 해시시 웃으며 품에 안기던 손주놈이 보고싶어 가슴이 뻥 뚫릴 때가 한두번이 아니였다. 전화로 손주놈의 목소리를 들을 때면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두볼을 타고 줄줄 흘러내렸으며 통화가 끊나면 자기도 모르게 땅이 꺼지게 한숨이 나오는건 어쩔수가 없었으며 그린듯이 한참을 넋잃고 앉아있기가 일쑤였다. 당장이라도 한국에 있는 자식들에게 달려가고싶었지만 거기는 자신이 가있을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머리를 쳐드는 순간 온몸의 기운이 그대로 스르르 빠져나가군 하였다.

철구엄마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운동을 마친 사람들이 돌아오는지 왁작 떠들어대고있었다.

(이렇게 누워있으면 안되지. 일어나야 한다.)

이런 생각으로 몸을 일으키니 좀전보다는 많이 개운해진듯싶었다. 침대에서 일어나 신을 신고 밖으로 나오니 방금전까지도 청신하던 아침날씨가 갑자기 흐려오면서 당금 비를 한줄금 퍼부을 기세였다. 멀리서 우뢰소리도 은은히 들려오는상 싶었다. 눈을 들어 바라보니 멀리서 최씨와 다른 늙은이들이 갑자기 캄캄해나는 하늘을 무시로 올려다보면서 양로원쪽으로 잰걸음을 놓고있었다.

비가 오기전까지라도 밖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을 일념으로 철구엄마는 대문층계를 내려서려고 발을 떼였는데 갑자기 발이 허공중에 건뜻 들리는 느낌이면서 온몸이 하늘로 붕 뜨는것 같았다.

아침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던 양로원로인들은 철구엄마가 문앞층계에서 맥없이 쓰러지는걸 보고 처음에는 어디 걸려서 넘어졌나했는데 넘어져서 인차 일어나지 못하자 급히 달려왔다. 제일 먼저 달려온 한방에 있는 최씨가 철구엄마를 안아일으키자 철구엄마는 온몸에 무시로 경련을 일으키면서 입에는 흰거품을 가득 물고 눈에는 흰자위를 더해가고있었다.

“철구엄마! 정신차리오! 왜 이러지?”

최씨가 애탄 목소리로 철구엄마를 불렀지만 철구엄마는 그 말을 듣는지마는지 차츰 몸이 꿋꿋해지기 시작하였다. 이때 소식을 들은 양로원원장이 집안으로부터 헐레벌떡 달려나오더니 놀란 눈길로 철구엄마를 일별하고는 핸드폰으로 120에 구호를 신청하는것이였다. 모여선 사람들 모두가 늙은이들이라 그저 발만 동동 구르면서 안타까운 눈길로 모두숨을 톺아가는 철구엄마를 내려다보았다.

“철구엄마! 정신차리오! 이렇게 가지 말고……”

“우르릉 꽝!”

먼데서 은은히 들려오던 우뢰가 지척에서 고막이 터질듯이 울리면서 한방에 있는 최씨의 애절한 부름을 삼켜버리였다. 뒤따라 굵은 비방울이 후둑후둑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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