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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리부는 로인

□ 구호준

  • 2012-08-10 08:58:27

아침식사가 끝나자 기다렸다는듯 밖으로부터 피리소리가 흘러들어온다. 나는 습관처럼 조용히 창가로 다가선다. 늘 꼭 닫혀있는 창문이지만 피리소리는 방안 가득 흘러넘치고있다. 그리고 내 가슴 사이사이를 뚫고 허전함을 달래주고.

창은 닫혀도 소리와 함께 피리를 부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한폭의 동양화가 되여 내게 다가온다. 지난번 한국행에서 상한 팔과 오장 치료를 위해 북경에 있는 친구 집에 있는 한달 동안 하루도 빼지 않고 들려오는 피리소리다. 아빠트정원에 있는 걸상에 앉아서 로인은 늘 이 시간이면 이런 모습으로 피리를 불고있다. 할아버지의 피리에서 흘러나오는 곡조도 변함없이 같은 곡조이다. 누가 만든 무슨 곡조며 무슨 사연에서 그 곡조 하나만을 한달을 넘는 동안 내내 불고있는지는 알수 없다.

아버지의 옆에서는 아침운동을 나온 사람들이 열심히 건강을 챙기고있다. 아무도 할아버지의 피리소리에 귀를 기울여주지 않을것이고 운동이 끝나면 그대로 훌훌 털고 떠나들 간다. 피리부는 할아버지의 앞에서, 뒤에서 혹은 옆에서 운동을 하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할아버지도 타인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듯하다. 자신이 불던 곡조가 끝나면 그대로 훌훌 털고 어디론가 가는 할아버지는 역시 곁에 대해서는 무심한 표정이다.

할아버지는 정원에서 피를 불고 나는 늘 11층의 꼭 닫힌 창가에서 바라보고있었으니 할아버지의 표정을 일일이 읽을수는 없었지만 피리소리만큼 가까이 다가오는 내 느낌만으로도 이미 속세를 초월하고 자신만의 세상을 살아가는분임을 알수 있다.

인간의 깨달음이란 꼭 도를 터득하고 어떤 경지에 이르러서만은 아닐것이다. 세상이 아닌 자신을 뛰여넘고 어떤 환경이든 조화를 이루어주고 세상을 편히 해주는것이 깨달은자가 아닐가?

로인의 피리소리는 내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같은 곡조를 불러주지만 그 소리를 듣고있으면 마음의 평온이 찾아들고있다. 모든 사람에게는 편함을 줄지 아니면 소음으로 들릴지는 알수 없는 일이지만 내게 편함을 주는 할아버지니 내 눈에는 깨달은 사람으로 다가오고있을뿐이다.

구의 아빠트정원에서 피리를 부는 로인은 어디에서 뭘 하던분인지를 알수 없다. 어디에서 어떻게 보내는지도 알수 없다. 가슴에 어떤 아픔과 즐거움들이 숨겨져있는지도 모른다. 누구를 위해서 무엇때문에 같은 곡조의 노래를 그렇듯 열심히 불어줘야 하는지도 모른다. 로인에 대해서 나는 알고있다면 단 하나뿐이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같은 곡조의 피리를 불다가는 역시 같은 시간이 되면 같은 방향을 향해 떠난다는것이 로인에 대해서 내가 알고있는 전부의 정보이다.

인에 대해서 아는것이 없다고 로인은 나와 멀리 떠나있는것도 아니다. 로인의 피리소리와 그 여유로움은 이미 내 가슴에 평온을 주고 안온을 주고있다. 그래서 로인은 이젠 내 가슴에서 나와 함께 숨쉬게 된것이다.

깨달은자란 타인의 가슴에 평화를 줄수 있다는것을 나는 로인을 통해서 보고있다. 로인은 아마도 스스로도 자신이 깨달은 사람임을 자각하지 못하고있을것이다. 그냥 매일매일 꼭같은 일들을 반복하는것으로도 이미 자신만의 즐거움을 느끼고있고 그래서 그렇게 열심하고있을수도 있는것이다. 작고 사소한 일도 열심히 할수 있다는것, 그것만으로도 인간은 인생에 대해서, 삶에 대해서 깨달은것이 되는것이 아닐가?

한가하게 피리를 불고있는 로인의 모습을 보다가 문득 내 모습을 떠올려본다. 저 로인만한 나이가 된다면 나는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갈가.

아직 얼마마한 시간이 흘러가고 내 인생에 황혼이 깃든다고 해도 나는 여전히 지금의 모습으로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어둠만을 만들어가는 그런 인간으로 남을가?

늘 어둠에서 어둠으로 끝나고 세상을 불평으로만 바라본 내 글들을 읽어야 하는 독자가 있었다면 그들에게 나는 하나의 아픔과 어둠의 존재로 남지나 않을가?

같은 곡조를 불어도 차라리 그 곡조를 들으면서 마음의 평온을 느끼게 하는 로인 같은 존재는 아니더라도 이젠 누군가를 아프게는 하지 않는 그런 존재로 남고싶다.

나는 로인의 모습을 통해 나의 래일을 만들어간다. 나도 누군가를 위해서, 아니면 나 자신을 위해서 이제 피리를 배워 정원에 앉아 한곡조만을 열심히 불지는 못할것이다. 억지로 걷는 깨달음의 길은 결국 깨달음이 아니니깐.

피리를 불지는 못해도 내 로년에는 정자에 한가히 앉아서 책이나 읽어주는 그런 나만의 풍경을 만들어보리라. 그것이 내 마음의 평화가 되고 깨달음이 될것이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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