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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작은” 자리

□ 강효삼

  • 2012-08-17 09:33:13

젠 자랄대로 다 자랐고 지금은 또 교통도 많이 좋아져서 외지에서 한번씩 집으로 오는 일이 그리 큰 어려움이 없지만 나에게는 이상한 습관 하나가 있다. 기차역이든 뻐스역이든 공항이든 마중을 나가 대기하고있는것이다. 자식 셋이 외지에서 공부를 하면서 혹은 직장생활을 하면서 한해에 한번 혹은 두번 집에 오는 일이 몇년간 지속되여 수십차례가 되지만 내 기억에 이런 행사를 한번도 빠뜨린적이 없는것 같다.

얼핏 보기에 아주 례사롭고 사소한 일 같지만 나는 내가 만드는 이 자리를 자식에 대한 부모의 좀 더 자상하고 가까운 관심과 사랑으로 생각한다. 아이들은 이런 자리에서 부모를 보게 됨으로써 자식에 대한 부모의 배려를 더 많이 느낄수 있지 않을가. 보기엔 사소한것 같지만 참으로 자식에게 주는 인상이 매우 깊다는것을 나는 나를 이렇게 대해준 부모님에게서 알았다.

내가 초중을 다 닐때였다. 그때는 차가 없어 모두 걸어다닐 때인데 토요일 오후 청가를 맞고 50리 길을 걸어서 집으로 가면 집에 미처 도착하기전에 해가 져서 땅거미가 어슬어슬 질 때다. 피로하기도 하고 좀은 무섭기도 하여 더욱 빨리가고싶은데다 집의 친지들이 빨리 보고싶을 때 나는 문득 어둠속에서 "인제 오니?" 하며 큰길 멀리까지 마중온 어머니의 귀익은 목소리를 들을 때면 저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면서 감격에 목이 메였고 먼 길의 피로가 대번에 확 풀리것 같았다. 그렇게 집안에서 맞기보다 바깥 멀리까지의 마중은 자식에게 말없는 감동과 힘을 준다는것을 나는 피부로 느꼈다.

부모님은 이렇게 내가 집에 오는 날을 헤아려 가까이 마중을 하실뿐만아니라 집을 떠날 때는 또 손님 보내듯이 나를 멀리까지 배웅하였다. 집을 떠나 학교로 걸어가다가 돌아보면 멀리에 서 계신 부모님의 하얀 옷의 모습은 마치 하나의 탑만 같았다. 부모님께서는 탑처럼 한자리에서 나의 뒤모습이 시야에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서계셨다. 그때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면서 꼭 공부를 잘하여 부모님의 기대에 보답하리라 속다짐을 했고 그것이 원동력으로 되여 학습에 더욱 노력하게 되였다. 이렇듯 보기엔 평범하고 지어는 “하찮은” 일같지만 행동으로 보여준 이런 작은 자리의 마련이 그렇듯 집 떠나있는 자식들에게 커다란 고무와 편달이 된다는것을 알고있었기에 나도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의 감동을 아이들의 마음에 심어주려고 자식들이 집을 떠나 공부하기 시작한 고중때부터 아이들이 집으로 오는 날은 비가 오든 눈이 오든 가리지 않고 꼭꼭 마중했고 가는 날도 어김없이 차가 떠나 내 시야에서 자식들의 모습이 더는 보이지 않을 때에야 돌아서군 했다.그것이 얼마나 자식들의 학습과 생활에 도움을 주었는지는 딱히 몰라도 나는 필연코 나의 이런 행위에서 적어도 자식들이 부모의 남다른 사랑과 기대를 체감했으리라 믿는다.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그날은 몹시 추운 한겨울 날이였는데 차가 통하지 않아 아들은 부득불 차가 있는 곳까지 20여리를 걸어가게 되였다. 그날따라 서풍까지 몰아치면서 아들의 가는 길을 방해했다. 그러나 개학날은 어길수 없으므로 아들은 기어이 떠나야 했다. 내가 아들을 동무하여 역까지 가려 하니 아들이 만류해서 함께 가지는 못하고 아들의 뒤모습이 내 시야에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큰길에 서있었다. 아들이 가다 돌아서서 이젠 들어가라고 자꾸 손을 저었다. 과연 그렇게 추위속에서 오래 서있어준 그 작은 배려와 사랑이 아들에게 큰 힘을 실어주었던가? 그해에 아들은 끝내 이태나 시험쳐 가지 못한 대학에 입학하였다.

때는 가까이 앞에 서서 맞아주고 떠날 때는 오래도록 뒤에 서서 밀어주는 사랑의 이 “작은 자리”, 이 자리는 희망을 위해 리별은 불가피하나 자식들과 오래 좀 더 오래 있어주고싶은 부모가 사랑으로 만드는 고임돌이다. 나는 이 작은 자리에서 하나의 탑으로 자식들의 가슴속에 부모사랑의 감동을 심어 더 좋은 래일을 도약시켜주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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