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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노란색 의자

장영란

  • 2013-01-10 15:48:12

얼마전에 한 문필회에 참가한적이 있다. 처음 참가한 필회인지라 생면부지의 얼굴들과 여태껏 시장매대를 돌던 내 생활반경과는 완연히 다른 장소에서 나는 나의 자리를 찾지 못해 서성댔다. 함께 참가한 선배작가님이 자기 곁에 있는 빈 의자에 앉으라고 하기에 앉기는 하였으나 인차 나의 마음은 불편하기 그지없었다. 둘러보니 초학자들은 모두 뒤켠 의자에 앉은것 같았다. 앞줄 의자에는 회의 사회자와 강의를 하실 교수님과 작가분들이였다. 하다보니 초학자인 내가 앞줄 의자에 앉은것이 주제넘다는 생각에 자꾸만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었다. 그렇다고 이미 시작한 회의 분위기를 깨며 뒷줄 좌석으로 갈수도 없었다. 커다란 의자들을 간격없이 맞물려 놓다나니 빠져 나가자면 여간만 시끄러운게 아니였다.

회의가 시작됐다. 뒷줄 의자에 앉은 사람들은 편안히 앉아 듣고 쓰고 하는데 커다란 테이블 앞에 손팔걸이도 있고 푹신한 앞줄의자에 앉은 나만은 송곳방석 같았다. 참 그날 일을 생각하면 어처구니 없기도 했다. 그 푹신한 의자가 그렇게 불편할줄이야. 그때 나는 처음으로 20여년 세월 나와 함께 시장바닥에서 줄곧 한자리를 지켜준 나의 노란색 의자를 떠올렸다.

시장 화장품가게를 임대받던 날 가게주인은 나의 두손을 꼭 잡고 “영란이, 모든것은 다 버려도 장사하는 동안 얘만은 버리지마오” 하면서 색바랜 낡은 노란 의자를 넘겨주었다.그저 하나의 평범한, 그것도 낡은 의자 하나를 넘겨주며 사람 이르듯 얘라고까지 부르는 말에 나는 허구픈 웃음이 절로 나왔다. “하도 손때가 묻은 물건이여서 그렇겠지……” 그때로 부터 파란만장한 나의 장사는 이 노란색 의자와 함께 시작됐다.

하루종일 서서 손님을 맞고 물건을 흥정하고 팔고 하다보면 몸과 마음이 지칠 때가 다반사였다.물건을 팔면 그나마 괜찮은데 실컷 싱갱이질하여 흥정한 뒤 물건을 매대에 한 가득 진렬하게 하고 찍어 발라보고 문질러보고나선 안 산다고 그냥 갈 때면 실망과 부글부글 괴여 오르는 마음은 참으로 다잡기 어려웠다. 속시원히 욕이라도 퍼붓고 당장 매대를 때려치우고도 싶지만 "손님이 왕님"인데 어쩌는수 없었다. 그저 내 장사수단이 모자람을 탓할수밖에………… 그렇게 해종일 아픈 다리와 지친 몸뚱이를 말없이 받아 주는건 그 말없는 노란 의자였다. 푸근하고 오래 앉아있어도 싫증나지 않고 화나고 성날 때면 내 투정까지 받아주는 노란 의자, 언제나 제 자리를 흔들림없이 지키는 노란 의자를 보면서 나는 장사하는 끈기를 익혀냈고 또 다시 새로운 나를 정비하군 했다. 때로는 없는 손님을 느긋하게 기다리며 가게의 좁은 공간에서나마 나의 지친 몸과 마음을 감싸주는 노란의자가 고맙게 느껴졌다.

시장확장과 더불어 2층 가게에서 1층 가게로 의사하면서 나는 그만 그 노란색 의자를 잃어버렸다. 인젠 다 낡아빠진 그 의자를 이참에 좀 더 고급스러운 의자로 바꾸어 버리라는 친구들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나에게 어울리고 그 누구라도 받아주며 편히 쉬여가게 할수 있는 그 의자를 잃고보니 마음 한구석이 허전해지며 가게에서 앉을 자리 설 자리를 정할수 없었다. 나는 일주일 넘게 틈틈이 시간을 내 시장과 주변의 천여개 가게를 참빗질하듯 낱낱이 훓어서 마침내 나의 노란 의자를 찾아냈다. 의자는 변함없이 이 시장바닥에서 몸과 마음이 지친 그 누군가를 편하게 받아주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희열과 흥분에 들떠 환호성까지 질렀다.|

“얘, 너 여기 있었구나! ”

세상을 살다보면 때론 욕심이 넘쳐나 자기에게 어울리지 않는 의자에 앉았다가 곤두박질쳐 세상 사람들의 질타속에서 일생을 그르치는 수도 있다. 이 세상의 수많은 의자중에서 자기에게 어울리는 의자를 찾아낸다는것은 삶의 지혜이기도 하다. 만들어진 의자의 모양과 그 쓰임새는 천차만별이지만 욕심을 부리지 않고 자기에게 알맞는 의자에 앉았을 때만이 자신도 편하고 주변에서 보는 이들도 편할것이다.

항상 자기 자리를 지키는 나의 노란색 의자, 세상사는 욕심을 부리워놓으면 자기에게 알맞는 의자를 만들어내는 지혜는 누구나 찾을수 있다는 도리를 깨우쳐준다.겸손한 자세로 세상을 대하고 언제 어디서나 자기에게 어울리는 자리를 찾아 앉을줄 안다면 인생은 고달프지만은 않을것이다.

나와 함께 한 20여년 세월, 인젠 버려도 누가 주어가지 않을만큼 낡은 의자지만 오늘도 나는 나에게 어울리는 노란색 낡은의자에 푸근히 앉아 찾아오는 손님들과 어울리여 따뜻한 마음과 살아가는 이야기도 무람없이 나눈다. 눈꽃 날리는 이 엄동의 계절에 친구들과 따뜻한 차 한잔 나누며 일상에 지친 마음들이 쉬여가는 그런 의자를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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