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라이프

함박눈

해주

  • 2013-01-17 14:59:02

눈이 눈이 내린다 함박눈이 내린다. 누가 하늘을 찢어서, 찢어도 하얗게 찢어서, 찢어도 산산이 찢어서 대지에 휘뿌리는가. 하늘쪼각들이 하얗게 하늘을 메우며 쏟아져내린다. 하늘도 숨을 죽였다. 대지도 숨을 죽였다. 고요, 아늑한 고요가 하늘과 땅사이를 고즈넉이 흐른다.

함박눈은 눈잎마다 하얀 실오리를 뽑으며 내린다. 그래서 하늘에 잉아를 건 은실오리들이 씨실을 늘인다. 가느다란 바람이 은실오리사이를 솔솔 빠지며 날실을 늘인다. 잘칵잘칵 바디질소리가 은은한 속에 얇디얇은 옥색비단이 설피게 펴진다. 한벌두벌, 열벌백벌이 덧펴지면서 두터운 비단실이불을 짓는다. 바디질소리가 자장가를 부르는속에 대지는 비단이불을 덮고 달콤한 꿈나라로 간다.

어느 시인이 말했던가. 함박눈이 오는 날은 하늘에서 옷벗는 소리가 들려온다고. 참 그 시인의 귀는 밝기도 하다. 하늘이 옷벗는 소리까지 다 듣고.

아니 시인은 소리를 들었을뿐만 아니라 보기도 하였으리라. 인자하신 어머니가 아이옷을 벗기는 소리와 캐드득거리는 아이의 웃는 모습을. 아니, 청춘들이 옷벗는 소리와 모습은 아니였을가! 중년이나 늙은이들의 옷벗는 소리나 모습을 보고 들은것은 아니였을거야. 선녀가 옷벗는 소리나 모습이 아니였으면 천사의 옷벗는 소리나 모습이였으리.

눈은 구름의 아들이고 비는 구름의 딸이다. 구름은 여름이면 딸을 낳고 겨울이면 아들을 낳는다. 구름이 아들을 낳든 딸을 낳든 그건 다 우주의 질서에 속한다. 우주의 질서에 의하여 대지에서 구름이 생기니 구름은 대지의 자식이고 눈은 대지의 손자이고 비는 대지의 딸이 되리라. 아들은 겨울에 딸은 여름에 할배할매네 집으로 놀러온다. 손녀는 여름에 놀러와서 나무며, 풀이며, 열매며, 땅이며를 살찌운다. 삐리리 우는 새들의 목청을 틔워주기도 하고 천만봉오리 꽃봉오리들이 속살을 열어보이게도 하고 골짜기를 누비는 노오라기 같은 가냘픈 시내물에 전례없던 생기를 불어넣어 재잘거리게 한다. 손자는 겨울에 놀러와서 할배할매품에 꼬옥 안겨 꿈을 빚다가 간다. 손자들이 빚는 꿈은 무슨 빛일가? 당연히 채색이다. 하얀 꿈도 빚고 파란 꿈도 빚고 빨간 꿈도 빚고 노란 꿈도 빚는다. 락하산을 띄우는 꿈도 꾸고 반들거리는 조약돌의 꿈도 꿈도 꾸고 엉성한 억새의 꿈도 꾸고 두귀 빨죽한 짐승들의 꿈도 꾸고 시골아낙네의 꿈도 꾸고 도회지 대학생들의 꿈도 꾸고…… 수천수만가지의 꿈을 꾸거늘 어이 한입으로 그 꿈들의 이야기를 다하랴.

한잎한잎의 눈은 홍모처럼 가볍다. 하지만 그것들의 모이고 뭉치면 대단한 힘이 된다.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날 산에 가면 이따금 허벅지같은 소나무허리 부러지는 소리가 산을 쩌렁하게 울린다. 바람에 하얗게 눈보라를 날리는것은 할배할매품에서 강동거리며 노는 눈들의 재롱이요, 땅에 하얗게 쌓여있는것은 눈들의 몸이 서로서로 엉키여 한덩어리가 되여 꿈을 가꾸는 중이요. 그래서 적설은 오색이 령롱하다. 따스한 해살들이 살금살짝 밟고 지나가면 적설들은 오색을 고아서 , 자기의 살과 뼈를 야금야금 녹여서 한방울 두방울 젖을 빚는다. 온몸을 다 녹여서 빚는 젖! 만물은 그 젖을 먹고 다시 소생하기도 하고 다시 생기를 찾아 새라새로운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젖향기는 만리에 향기로와 먼곳의 철새들이 그 달콤한 향내를 찾아 북으로 북으로 새 살림을 꾸리러 날아온다.

함박눈의 몸짓은 우아하기 이를데 없고 함박눈의 꿈은 우주의 신비이다. 그래서 이 세상에 눈을 반겨하지 않는 사람이 없고 눈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없으리라. 함박눈은 대지에 하얀 종이장을 펼쳐놓았다. 사람마다 하얀 종이우에 자기의 꿈을 그려놓으라고 . 애기는 애기의 꿈을, 소녀는 소녀의 꿈을. 청년은 청년의 꿈을. 장년은 장년의 꿈을. 로인은 로인의 꿈을, 70은 고래희란데 머리에 서리 앉은 나에게 무슨 꿈이 더 있을가만은 그래도 살아있는한 꿈을 꾸는것이 인간이 아니던가. 빠드득빠드득 발밑에서 울리는 발과 눈의 연주를 들으며 나는 내가 그릴 꿈을 구상하고있다.

이 기사를 공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