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이 돌아오면 나는 며칠에 한번씩 산으로 간다. 목적은 하나 진달래꽃이 피였는가 보러 간다.
특이한 연분은 없지만 어쩐지 4월이 오면 진달래가 어느만큼 피였는가 하는 궁금증이 나를 산으로 가게 한다. 어릴 때 로인들이 진달래꽃살이 많으면 풍년이 든다고 하였다. 그 말을 듣고 산으로 진달래보러 다닌것이 이제는 버릇처럼 되였다. 꽃살이 열개면 흉년이 들고 꽃살이 열한개면 평년이고 꽃살이 열두개면 대풍이 든다던 그 말씀이 아직도 귀에 못박혀있다. 농군의 아들인 나는 그해그해 작황이 궁금해서 그냥 산으로 다녔던것이다.
우리 마을 뒤산 양지쪽에는 살구꽃이 구름처럼 피여나고 앞산 음지쪽에는 진달래꽃이 온산에 불길로 타오른다. 그 연분홍 꽃잎을 따서 이마에다 붙이고 코등에도 붙이고 볼에도 붙이면서 짱들끼리 호호하하 웃음을 터뜨린던 일은 지금 생각해도 얼마나 신이 났던지 모른다. 그러다가 진달래꽃을 꺾어 모닥불을 만들어 산에서 와야 내려와 시내가에다 꽂아놓고 봄불을 지핀다고 야단치였다. 너는 내 색시하고 향녀의 손을 잡고 빙글빙글 꽃무지 불무지를 돌아가던 소꿉시절은 지금 생각해도 가슴에 달콤한 달이 뜬다.
진달래는 한두송이만 피여나는 외로운 꽃이 아니다. 진달래꽃은 핀다 하면 무리로 피여나 온산에 빠알간 불길이 훨훨 타오르게 한다. 그래서 그 불길에 굽히는 겨울의 고소한 냄새와 그 불길에 굽히는 봄의 향기로운 냄새에 목이 멘다. 그런 향기에 취하여 화살처럼 하늘에 오르고 돌덩이처럼 밭에 떨어지는 노고지리의 우지짖는 아름다운 노래에 취한다는것은 얼마나 행복했던지 모른다. 아마 그 행복을 근으로 뜰수 있다면 적어도 열톤은 되였으리라.
진달래는 우리 배를 불려주는 밥이고 반찬이였다. 배를 곯으면서 학교에 다니던 그 시절, 점심시간이 되면 산으로 올라가 우리는 진달래꽃을 뜯어먹으며 주린 창자를 달래기도 하였다. 그것을 뜯어다 떡도 해먹고 찌개도 끓여먹고 헤식도 담그어먹었다.
진달래뿌리는 자연의 조각품으로써 가꾸기만 하면 벼라별 형상이 다 나온다. 새가 앉아서 고개를 갸웃거리는가 하면 곰이 앉아서 꾸물거리고 노루가 뛰여가는가 하면 매미들의 울음소리도 들리고, 깍깍거리기는 까치도 보이고 까욱거리는 까마귀도 보이고, 꾀리리 꼬르르 울면서 날아다니는 꾀꼬리도 보이고, 나풀거리는 나비의 날개짓소리도 들린다. 사람이 가꾼덕도 있겠지만 실은 신과 통한 진달래의 신통력이 아니랴. 신과 통했기에 혜안이 있는 조각가들은 이 세상의 모든 사물을 뿌리로 만들고 그 녀석들과 대화를 하는것이리라.
진달래는 무더기로 피여나 여러가지 도안을 그린다. 어떤 도안은 애급의 금자탑을 닮았고 어떤 도안은 중국의 만리장성을 닮았고 어떤 도안은 타이의 불상을 닮았고 어떤 도안은 프랑스의 개선문을 닮았고 어떤 도안은 ……
도안구경을 하던 나는 갑자기 두눈이 휘둥그래 진다. 꼬옥 연변땅을 닮은 진달꽃래무지를 만나지 않았겠는가. 돈화의 사찰로부터 연변의 여기저기에 있는 사찰들이 보이고 연변의 변경을 흐르는 두만강이 보이는가 하면 해란강, 가야하도 보인다. 이건 하늘아래 첫동네라는 숭선의 대동이고 이건 화룡시의 평강벌이고 이건 로씨야와 조선을 한눈에 바라볼수 있는 방천의 망원초…… 연변에서 첫 항일유격대가 탄생했다는 개산툰 학성이 보이고 돈화, 왕청, 연길, 훈춘, 도문, 룡정, 화룡 연변의 어느 시가지나 모두 이 진달래의 도안속에 각인되여있다. 와하! 인제 알것 같네 연변이 왜 진달래꽃으로 불리는가를.
하늘의 사랑과 대지의 사랑을 함뿍 안고 송이송이 피여난 진달래꽃! 하늘의 사랑과 대지의 사랑을 아름아름 전해주는 진달래꽃! 너는 연변의 딸이고 연변의 아들이면서 또 연변의 상징이다. 어제도, 오늘도, 래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