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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향 달

□ 맹영수

  • 2013-06-07 10:24:24

단풍이 완연히 물드는 작년 가을 친구는 일본류학과 취직생활 20여년만에 두번째로 고향을 찾아왔다. 친구가 처음 고향을 찾았을 때는 10년전이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고향은 울긋불긋 굴뚝집들이 가득했고 거리도 매미굴처럼 비좁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그새 고향의 모습은 많이 변했다. 즐비한 고층건물과 물결치는 승용차흐름, 그리고 사방으로 쭉 뻗은 대통로……물론 친구가 사는 세계적인 도시 도꾜에 비하면 많이 촌티가 흐른다고 할수도 있지만 그러나 현급 도시치고 이만한 변화면 그야말로 천지개벽이 아닐가싶었다. 친구도 그것을 감지했는지 우중충한 건물앞에서 수시로 걸음을 멈추었고 때론 찰칵 샤타를 누르면서 무시로 여기저기로 시선을 굴리기도 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더니 그새 친구는 10년전보다 또 다른 사람으로 변해졌다. 친구는 아는 사람을 만나면 깍듯이 90도 경례를 했고 붉은 교통신호등이면 목석처럼 자리를 지켰고 택시에서 내릴 때도 꼭 인사말을 잊지 않았다. 이제는 친구도 세월의 흐름과 환경지배속에서 완연히 서양신사의 품격을 갖춰가고있었다. 그러나 좋은 매너는 그냥 그쯤에서 머물고말았다.

그날 저녁 고향친구 몇이 류학친구와 마주 앉았다. 오랜만에 만난 자리라 술 한병이 제꺽 굽이 나고 두번째 병이 올랐다. 우리 민족은 종래로 술상에서 우정과 인정을 돈독히 하는 관습을 갖고있다. 하물며 쉽지 않은 만남의 장소라 술 두병 갖고는 어림도 없었다. 그래서 어느 친구가 술 한병을 더 청하려고 하자 류학친구가 손을 저었다. 지금도 그 술문화냐고 하면서 일본과 비교하면 참으로 너무 많은 차이가 난다고 했다. 위생이 어지럽고 교통이 혼잡하고 공기가 맑지 못하다면서 ……이래저래 남의 말을 하듯 고향의 허물을 찼고있었다. 눈살을 찌프리면 모든게 작게만 보인다고 친구의 시선에는 고향의 큰 모습보다는 잔모습들이 더 안겨들고있었다. 분명 친구와 우리 사이에는 무형의 그 어떤 장벽이 막혀있는듯싶었다. 결국 술자리는 기대와는 달리 그냥 일상적인 모임처럼 끝나고말았다.

친구와 갈라진 나는 옆에 멈춰서는 택시를 뒤로 하고 무겁게 발걸음을 옮겼다. 웬지 친구가 야속스러웠다. 물론 있는 흠이라 굳이 변명하고싶지는 않지만 욕은 듣는 사람이 먹고 매는 앞 사람이 맞는다고 좋은 장소에서마저 꼭 그런 흠집을 찾는 친구의 소행에 어딘가 유감을 느끼지 않을수가 없었다. 그새 친구는 신사적인 서양문화를 습득한 대신 따뜻한 우리만의 인정과 풍토 그리고 례절을 잃어가고있는듯싶었다. 솔직히 간만에 만난 친구사이에 좀 술이 과한들 어떠랴?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술은 그냥 술이기에 앞서 우정이고 인정이고 애정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리고 고향모습이 조금 초라한들 또 뭐라냐? 초라하기에 끝없이 탈피를 하고 도약을 꿈꾸지 않는가? 누군가 어머니 모습이 아무리 궁한 모습이라도 자식에겐 어머니가 영원히 하나라고 했듯이 누구에게도 고향은 하나가 아닐가? 그만큼 고향이라는 어머니품이 없었다면 어찌 당신들의 오늘이 있을수가 있겠는가? 피는 속이지 못하고 뿌리는 끊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국민당의 리종인선생도, 리사광 지질학자도 미국과 유럽 나라들의 호화스런 대우와 끝없는 만류도 뿌리치고 가난하지만 뜻이 있는 자기의 나라로 돌아오지 않았는가. 고향에서 한줌의 재로 될지언정 이국의 원혼은 되지 않으려는 그들의 애국심은 당시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켰는가.

어느 한 시인은 고향을 어머니의 자궁이라고 읊조리였다. 참으로 지당한 비유가 아닐가싶다. 솔직히 고향이라는 그 자궁이 없다면 우리가 어찌 오늘날 이처럼 풍만하게 발육하고 성장될수가 있었겠는가? 물론 아직은 총체적으로 서방이나 이웃나라인 한국이나 싱가포르에 비하면 국민복리나 국민자질이 어느 정도 낮은건 사실이다. 그러나 모든건 과정이 수요되고 시간이 필요되지 않을가? 자본주의란 과도기가 없이 직접 봉건사회로부터 사회주의로 진입하고 그새 또 10년 대동란을 거친 우리 나라가 아닌가. 단술에 배를 불리려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했다. 세상의 모든 상처는 단번에 치유되는 법이 없다. 알고보면 완벽한 사람이 없듯이 완벽한 국가도 없는것이다. 아무리 발달한 국가라도 어느 한 면이 우월하면 다른 한 면은 꼭 부족한데가 있는것이다. 하기에 어느 정도 자존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우선 국가관부터 정확히 가져야 하지 않을가? 부유하면 정착하고 가난하면 떠난다면 우리는 영원히 쪽박신세와 류랑신세를 면치 못하고 이방인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된다. 예로부터 제 집 허물을 밖으로 돌리지 않는다고 했다. 때론 덮어감춤도 하나의 생존의 방식이고 원견성있는 판단이다.

이제는 시대가 달라졌다. 우리 민족도 이제는 파도처럼 밀려오고 밀려가는 그런 삶보다 그리고 쟁개비 끓듯 단숨에 끓는 그런 삶을 떠나서 한족들을 본받아 나무처럼 한곳에 뿌리박고 좀더 느긋한 여유를 가지는 그런 삶을 선택함이 옳지 않겠는가? 아무리 글로벌 세상이라도 어쩔수 없는것이 귀소본능이라고 누구에게나 조국은 하나고 고향도 하나여서 언젠가 그곳을 찾을지도 모른다. 잘나도 내 부모님이고 못나도 내부모님이고 잘살아도 내 부모님이고 못살아도 내 부모님이란 말이 있다. 우리도 언녕 가난의 때벗이를 하고 부유를 향해 달려가고있다. 그 위대한 현실앞에서 무엇이 더 부럽고 무엇이 창피하고 또 무엇이 두려운가?

늦가을 밤하늘 풍경이 내 시선으로 무작정 뛰여들었다. 뭇별이 척 드러누운 청청 밤하늘에서 속눈섭같은 고운 초생달이 수줍은 색시마냥 발볌발볌 서쪽으로 걸음을 옮기고있다. 이제 저 초생달이 지고나면 고향의 하늘엔 기필코 쟁반같은 보름달이 황홀한 교태를 머금고 떠오를것이다. 분명 나는 벌써 그 달에서 고향의 미래를 보고 엄마의 모습을 보는것만 같아 마음이 부푼다. 이제 고향에 그 달이 떠오르는 날. 나는 멀리 이국에 있는 친구에게 새롭게 변한 고향의 소식을 전하고 더불어 사랑하는 고향을 위해 거듭 안녕과 부강을 기원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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