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라이프

[수필] 깨달음과 인식의 차이

□ 장영란

  • 2014-01-09 15:43:18

옛날, 몸집이 실팍한 말이 금빛안장을 등에 얹고 기운차게 달리고있었다.

그때 나귀 한마리가 수레를 끌고 낑낑거리면서 말에게 길을 비켜주려고 했으나 워낙 수레가 무거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야! 빨리 비키지 못해! 꾸물거리면 걷어차버릴테다!”

나귀는 아니꼬왔지만 순순히 사과하면서 온 힘을 다해서 길을 비켜주었다.

그후 발을 상해 시골 농가에 팔려가 거름수레를 끌게 된 말은 어느날 나귀를 만나게 되자 너무나 부끄러워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싶었다.

“생물의 신세란 언제 어떤 재앙이 닥쳐와서 어떻게 팔자가 뒤바뀌울지 모르는거라오!”

나귀는 조용히 이르고는 표연히 떠나갔다…

문학을 지향하고 분투하던 S씨가 있었다. 그는 자신의 운명을 개변해보고저 낮에 밤을 이어 부지런히 쓰고 쓰고 또 쓰기만 했다. “정성이 지극하면 돌우에도 꽃이 핀다”고 내가 S씨의 글들을 간행물과 월간지, 일간지를 통해 읽게 되였을 때 그의 작품은 이미 애독자들의 사랑속에 휘황을 이루고있을 때였다.

나는 밤잠도 모자라게 시간을 털어가면서 S씨의 작품들을 읽기 시작했다. 나는 S씨의 글에서 초학자로서의 탈바가지를 벗고 인간생활을 참답게 그려가려는 한 인생을 떠올리게 되였고 자신이 먹고 살아갈수 있는 의식주도 해결하지 못하면서도 창작에 모를 박고 울고웃던 수줍은 농촌청년의 비참한 모습도 그려보게 되였으며 손바닥에 박힌 두두룩한 장알을 성냥가치총으로 터치고 그 손에 만년필을 잡고 하얀 원고지를 길다랗게 어지럽히며 밤을 지새우던 초학자의 기나긴 삶도 그려보게 되였으며 원고를 우편으로 송달할 돈이 없어서 넝마주이로 우편료를 해결하고저 연연한 손으로 쓰레기통을 뒤지던 낯선 청년의 혹독한 삶의 륜곽도 그려보게 되였다.

무엇이 S씨로 하여금 이런 모진 삶의 턴넬속에서 신념을 잃지 않게 하였을가?

그러나 S씨는 너무나 이르게 자신의 재주를 분에 넘치게 치장하였고 고달픈 인생살이에서 간신히 삶의 터전을 굳히게 되자 자신을 지나친 욕망의 풍선우에 올려놓고 하늘높이 날기 시작했다.

편집부에서 날려오는 원고청탁과 청구서들이 찌그러져가는 초가삼간의 대문짝을 두드려대자 S씨는 “우물안의 개구리”마냥 하늘이 하나의 엽전만큼이나 되여보였다.

S씨는 흙속에 묻혔던 초로인생을 한탄했고 초가삼간을 저주했으며 자기를 낳아주고 길러준 머리칼이 하얗게 센 시골의 어머니마저 원망했다.그러다 일약 비행기를 타게 된다. 이를테면 어느 한 월간잡지의 문학상을 받게 된 S씨는 이 세상이 너무나 좁아보이였다. 초학자로서의 피타는 노력에 이어온 문학도의 삶이 한순간에 창조된듯 자신을 너무나 휘황차게 내몰았던것이다.

그러나 사람이라면 어디까지 내가 누군가 하는것을 알고 모든 일에 순응하여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들이 알고있는 그릇에 대해 잠시 론해본다. 당신이 만약 대야에 물을 담는다고 하자. 그러나 대야란 말 그대로 크기의 그릇에 불과할뿐이 아닌가? 그런데 당신은 한사코 물독에 넘치는 물을 깡그리 대야에 부으려고 설친다. 결국 물은 대야를 넘쳐나 땅에 흐를뿐이다. 이때 당신이 짧은 순간이지만 생각을 돌려 다시 대야의 물을 물독에 도로 담는다면… 당신은 가슴이 아플것이다. 늦은 후회일지라도! 그러나 당신이 땅에 흐른 물을 다시 대야에 담으려면 그것은 석두보다 더 우둔한 인간이 아니겠는가?!

결국 앞날이 창창하던 S씨의 인생은 또다시 농촌 초가삼간의 전부로 끝장나고말았다. 비록 혜성처럼 솟은 신세대 작가로서의 황홀한 경지를 순간적인 리력서에 새기고 수십편의 작품을 창작하여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문학상이란 홀시할수 없는 영예까지도 산산이 날려버리는 한마당 꿈으로밖에 펼치지 못했다.

그러므로 내가 하려는 말은 즉 자신을 깨달은후에라도 그 깨달음의 경지를 어떻게 펼치는가가 아주 중요하다는것이다. 비록 한순간의 행동이 전생에 펼쳐지는 부귀와 영예를 훼멸시키더라도 나를 알고 그 깨달음을 옳게 받아들이고 자기를 각성시켜야 하지 않겠는가?!

비록 S씨의 그 불운이 이미 내지른 화근으로 옷섶에 불길을 모았다면 대담히 불타기 시작한 옷을 벗어던지고 자기의 몸을 보호하여야 한다. 옷은 다시 지어입으면 되지만 몸은 불에 타면 훼멸뿐이다! 지난 영예와 지나친 환상속에 빠진다면 옷도, 몸도 건질수 있는 기회마저 망칠수 있다.

S씨에게는 문학도로서의 초학자의 끈질긴 노력과 부지런한 탐구심, 영예의 휘장과 함께 떳떳한 인생을 펼칠수 있은 삶, 남들의 부러움을 자아내는 총명과 재질과 인격이 있었다. 나는 지금도 S씨를 원망도 탓도 하지 않는다. 더구나 S씨의 인격과 작품에 대하여서도 소인간적으로 이러쿵저러쿵 거론하지 않는다. 다만 S씨의 너무나 무딘 어두운 사회 안목에 서글픔이 커갈뿐이다.



이 기사를 공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