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에는 저 언덕을 남쪽으로
돌려 눕혀놓고
돌아 오는 해에는 북쪽으로
돌려 눕혀놓고
남과 북이 하나로 돌아 눕는 세월을
꿈 같은 숙명으로 모두어 놓고
노고지리 우짖는 씨앗을 심어 놓으면
언덕이 나의 기쁨처럼 부풀어 오를가
꽃동산이 사랑스럽게 제자리에
돌아 오는데 두해가 걸려 나오는데
봄빛이 쟁기날에 발리여서
무어라고 계몽을 남기는지 눈부시구나
힘겹게 쟁기 끄는 소의 목덜미에
봄 아지랑이 새 기분을 빛내주구나
쇠시랑
질긴 겨울의 겉 껍질을 벗기여버리고
겨울 한기를 쇠시랑 날로 날려 보내고
아지랑이 지평 우로 즐겁게 나래 펼치는
삼라만상이 웃으며 맞는 봄을 캐내자
산과 들에 심은 신토불이 흥겨움을
강물처럼 고향벌에 넘쳐 흐르게 하고
힘들 때 새 노래로 지친 마음을 달래는
쇠시랑 시골 형제 봄빛처럼 찾아 나서자
보슬비 신명 나게 여흥을 낚아 올린
시골 쇠시랑 추억속에 래일이 감미롭고
가나 오나 세발 낙지 같은 농기구 날에
깊이 물든 농부의 꿈 꽃나무처럼 춤을 추네
삽
고향을 기억 속에 꾹 눌러놓고
이역 땅 오솔길을 한삽 파보았다
흙속에 잠든 할아버지 그 시절이
푸르게 새겨 나오시며 껄껄거리시네
녹쓸 기회마저 엿볼 그 틈사이로
여유가 조금도 없었던 타관땅
수십번이나 오매불망으로 이어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얇아지는 성장의 날
하늘을 가로 막아 호수를 만들고
간척지를 메워 복지를 일구던
아버지는 오늘 새벽에도
정든 삽으로 이승을 새롭게 구상하시며
고향 길에 앉아 골초를 깊게 빨고 있다
호 미
자나깨나 태산 같은 수확을 꿈꾼 할머니
바위 돌에 무딘 호미를 갈고 있네
오랫동안 묵은 근심을 풀처럼 매버리고
호미는 그 시절을 못 잊어 목이 휘었네
무더운 삼복 삶의 잡념을 김 맬 때마다
한토막 몹시 그리워했던 세상 이야기
할머니 자서전이 되여푸르렀던 일
오늘은 호미 자루에 경주의 먼 바다가 보인다
언제든가 세월의 등을 빡빡 긁어대면
어 시원하다며 얼굴에 죽 피여진 밭고랑
강아지 풀이 멍멍이처럼 짖다 말고
처마 밑에 높이 걸린 대물림이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