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라이프

푸르게 난 너에게로

□ 정희경

  • 2014-06-05 14:05:29

이제 겨우 싹튼 나무아래에서 나는 그늘을 꿈꾼다. 맞춤한 온도속을 거닐면서 그늘을 찾아보았지만 크고 웅대한 건물들이 내여준 그늘만 해빛을 등지고 있을뿐 나무가 드리운 그늘은 없었다.나무가 빚은 그늘로 들어서기 위해 나에겐 기다림이 필요했다.

어디서 어떻게 서야 연두색 잎새들이 무르익은 그늘안으로 들어설수 있을지 나는 생각했다.어느새 시내물의 봄을 알리는 노래소리가 들렸고재 잘거리는 새들의 짝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으며 서서히 어둠을 박차고 세상구경을 나온 새싹들의 존재를 드러내는 소리가 들렸다. 모든게 적막함속에서 태여나 적막을 뚫고 세상 어느 소리없는 곳을 향하는듯 하였다. 내가 바라는 그늘은 소리없는 그곳이였다. 일정치 않는 빛발속에서도 항상 조용함을 지켜가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나무에게만 그런 그늘이 있는줄 알았다.

오뉴월의 훈풍이 내 볼을 간지럽힌 그날, 멍으로 아름답게 얼룩진 자국을 바람이 쓸어줄가 해서 찾은 그늘밑으로 네가 다가왔다 .그늘만큼이나 시원하고 조용한 네가 나에게로 다가왔다. 나를 위해 드리워진 그늘속으로 네가 들어오는 순간, 해빛에 깎이여 더이상 그늘이라 부를수 없을 만큼 환해졌다.약간 화가 치밀어 오르려는데 나를 덮은 또다른 그늘이 빛을 가려 안정한 쉼터로 되여주었다.그것은 네가 나를 위해 준비한 만남의 선물이였다. 예상한바와 전혀 다른 상황이라 나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얼마나 지났을가. 내가 그늘없는 나무밑에 앉아 지그시 나무처럼 서있는 너를 바라보았던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가, 노을이 진 사이로 어둠인지 그늘인지 분간하기 힘든 시간이 찾아와서야 너는 조용히 뒷모습을 보였다. 네가 준 작은 그늘만으로도 나의 시퍼렇게 멍든 가슴이 살색을 되찾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자주 부르는 사랑이 낳은 기적이라 나는 믿었다. 그날이후 너는 더이상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나는 네가 올가 해서 다리를 도사린채 그곳에 꼼짝않고 앉아있었다. 그사이, 가슴은 또다른 멍들을 불렀고 센티멘털한 환상마저 비누방울로 되여 흩날렸다.

바람이 포근하고별들이 눈물을 반짝이는 나날속에서 나는 이 봄을 위해 무언가를 해주고 싶어 화분하나를 준비했다. 봄을 위해 준비한 화분이였지만 그속엔 여름에 대한 그리움, 그늘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너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이나 심어져 있었다. 뾰쪽한 열망들이 태여나는 순간, 내 가슴속 불꽃은 기다렸다는듯이 튕겨오르기 시작했다. 그랬다. 나는 나에게 다가와 그늘이 되여준 너를 사랑했다. 기다림은 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사랑중 하나였지만 제자리에서 기다리는건 어리석었던 짓이였다. 깨달음은 말해준다. 그리움은 알로 되여 사랑으로 깨여났다고. 그리고는 조용히 다짐했다. 네가 나를 위해 준비한 선물처럼 나도 너에게 값진 그늘을 선물해 주겠다고…이렇게 나는 너에게 다가가고 싶었다.

푸를수밖에 없는 여름의 기척이 들리는 그 순간부터, 나는 멍을 낳는 모든 아름다운 슬픔속에서 그림자를 내뺄것이다. 내가 바라는건 더이상 내 상처를 식혀주고내 하소연을 들어주는 그늘이 아니라나를 필요로 하는 나를 그늘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바람에도 쉽게 날려가지 않는 엷은 미소였다. 너에게로 가기위해 나는 그늘지는 연습을 시작했다.인간으로서 넘어져 아플수밖에 없는 사실, 상처란 락인이 깊숙히 찍힌 사람들의 가슴에 해빛을 물어주는 대신 기꺼이 그늘로 되여주리라. 또 함께한 시간이 많다 보면 나도 너처럼 시원해질것 같아, 나는 너에게로 다가갔다. 푸르게 푸르게 그늘속에 잠겨 울어도 좋을 그늘이 되고싶어 나는 너에게로 다가갔다.

모든것을 너와 함께 하고 싶었다. 이 세상 온갖 하소연을 들어주는 일,바람에 방황하는 씨앗에게 길을 가르쳐주는 일, 그리고 힘든 누군가가 편히 얼굴 파묻고 울도록 작은 어둠을 내여주는 일. 이 모든것을 함께 하고 싶어 네가 그리웠고 네가 생각났다. 그리움을 채우는 화분속은 너로 가득찼다. 그리움을 깨서 사랑을 안고 나는 너에게로 다가가고 있다.

하늘과 유난히 어울리는 흰구름이 머리위로 흘러갔지만 그늘을 드리우지 못했다. 이 봄이 지나 푸르게 익은 여름이 되면 그때 나는 너에게로, 기다림의 소중함을 안고 한발자국 푸르게,그늘 빚은 나무처럼 푸르게 나는 너에게로…

이 기사를 공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