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은 엄마를 목욕시키는 날이다. 엄마는 금년에 88세 고령이시다. 엄마는 오금이 불편하여 목욕은 의레 내가 시켜주지 않으면 안된다. 나의 일정에서 일요일은 큰 대사를 치르는 날이나 다름없다. 나는 일요일만 되면 엄마의 속옷을 챙겨놓고 엄마를 홀딱 벗긴다음 욕실로 안고 들어가 비누를 좔좔 묻혀 엄마의 질겨 처진 몸을 빡빡 문댄다. 엄마의 젖가슴은 바람 빠진 고무풍선과 같이 가죽만 거풀거린다. 엄마는 이제 체념한듯 아무런 주저심도 없이 나에게 모든것을 맡긴다. 나는 엄마의 등이며 허리며 모조리 밀며 내려간다. 나의 손은 내려가다가 딱 한곳에서 멈춰선다. 녀자의 가장 부끄러운 곳이라 하겠다. 엄마는 그곳만는 나의 손이 절대 닿지 못하게 하며 꼭 당신의 거쿨진 손으로 씻는다. 늙어도 녀자는 녀자인 모양이다.
우리 집은 나의 우로 녀자 다섯이나 세상에 나와서는 줄줄이 죽어나갔다고 한다. 그후로 형님과 나의 아래로 남자 다섯이 생겨났다. 엄마는 내가 소학교 3.4학년 때부터 죽는다 산다 했다. 어릴 때적 나의 기억에는 엄마는 늘 수건을 머리에 동이고 자리에 누워있는 아픈 엄마였다. 우리 집은 늘 신음소리가 밥가마 끓는 소리보다 더 높은 가난한 집이였다.
내가 열네살때였다. 엄마는 의식을 잃고있었다. 아버지는 엄마를 공사(향)병원에 싣고갔다. 엄마는 이틀이 지나도 의식을 차리지 못하였다. 나는 엄마가 당장 죽는것만 같아 가슴이 쾅쾅 거렸다. 엄마는 병원에 가서도 의식을 못차리였다. 의사는 엄마의 소변을 화험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의식이 없는 엄마의 소변을 받는다는게 참 곤혹스런 일이였다. 그것도 손가락만한 유리관에 받으라는것이였다. 의사는 엄마의 소변을 18살 먹은 형이 받으라고 했다. 하지만 이성에 한참 부끄러운 형은 그 일을 가만히 나에게 시키는것이였다. 나는 형이 시키는 일이니 못하겠다고 오리발을 내밀수는 없었다. 소변이 언제 나올지 모르니항상 눈을 엄마의 그곳에서 떨어져서는 안되였다. 엄마의 그곳을 본다는게 죽기보다 더 싫은 일이였다. 이미 세상에 나와서 죽어나간 누나들이 사무치게 그리워나는 시각이였다. 나는 형님 몰래 은근히 눈길을 다른데로 돌리고 딴청을 부렸다. 그러다 끝내 큰 사고를 치고야 말았다. 내가 모르는 어느 사이 엄마의 소변이 나왔던것이다. 의사들은 형과 나를 바보라며 마구 욕을 해댔다. 그후에도 내가 엄마의 소변을 받지 못하게 되자 그 일은 나중에 끝내 형이 해냈다. 엄마의 병은 신염이였다. 엄마는 열닷새동안만에 겨우 의식을 차리였다. 엄마는 그후에도 그냥 시름시름 앓으면서도 가정을 살리겠다고 젖은 일 마른 일을 가리지 않으셨다.
내가 왕청현문공단에 간 이듬해였다. 엄마는 동생이 손 얼구며 잡은 물고기를 가지고 왕청에 팔러 오셨다. 한참 기다려서 차를 타고 60리 길을 오다보니 큰시장에는 근본 농촌아낙네가 들어앉을 자리가 없었다. 엄마는 물고기 대야를 이고 신민가 시장에 와서 자리를 잡으셨다. 그런데 그 자리가 다른 물고기를 파는 한족 되거리 장사군 자리옆이였다. 되거리 장사군은 눈을 부라리며 엄마를 험상궂게 훈계하였다. 실은 엄마의 물고기가 자기것보다 더 싱싱하니깐 주위에서 물러가라는것이였다. 한어말은 “니디 워디”밖에 모르는 엄마이다보니 도무지 소통이 될리가 만무하였다. 그런대로 엄마가 손더듬이질을 하면서 겨우 한쪽 옆에 앉아 물고기를 팔려 하는데 갑자기 되거리장사군이 다짜고짜로 엄마의 물고기 대야를 걷어차 버리는것이였다. 땅바닥에 좌르르 깔린 물고기들은 행인들의 발에 밟혀 터지고 말았다. 너무나 억울하고 분통한 엄마는 손으로 물고기를 끌어 담으며 눈물을 흘리시였다. 결국 엄마는 물고기를 한근도 못 팔고 되거리 장사군에게 밀리워 났다. 문공단의 다른 동료에게서 그 일을 전해들은 나는 화가 꼭두미까지 치밀었지만 엄마의 간절한 부탁으로 그 되거리 장사군에게 욕 한마디도 하지 못하였다. 엄마는 무법천지인 그 되거리 장사군들에게 내가 괜히 피해를 당할가봐 겁났던것이다.
세월이 많이 흘러간 지금도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바보스러웠던 내 자신에 스스로 화가 나며 자식으로서의 불효에 부끄럼이 더해진다. 만약 그때 엄마가 진단을 제대로 못받고 돌아가시기라도 했다면 나는 한평생 내 자신을 미워하며 살았을것이다. 엄마의 생명이 경각에 달렸는데 부끄럼따위가 다 뭐기에? 엄마의 애간장이 다 타번저지는데 내 안위 따위가 다 뭐기에?
부끄러운것은 부끄럽지 않은것에 부끄러워 한것이였다. 다행히 엄마가 지금까지도 오래오래 살아주셔서 그저 더없이 고맙기만 하다. 이런 저런 이왕지사들을 돌이켜보느라니 이제 얼마 안되는 엄마의 인생에 자식으로서 더 이상 부끄럼 없이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찾아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