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배 꽃이 만발한 동산에
숫한 모자들이 폴짝폴짝 뛴다.
빨간 록색 회색 까만 모자들
수시로 봄바람이 산자락을 스칠 때면
모자들은 폴짝폴짝 경쟁하며
바람을 따라 다닌다.
빨간 록색모자들은 특별히
바람의 서열을 따진다.
봄바람은 그래도 록색모자를
제일 좋아한다.
또 하나의 봄바람이 록색모자를
휘감아 산너머로 사라진다.
나도 봄바람이 되여 따라오는 모자들중
회색모자를 휘감아 언덕 넘어
풀밭으로 달아난다.
말발굽산
무쇠구렁이가 육중한 소리를 내며
산자락을 숨가쁘게 기여간다
산 남쪽으로 소도시가 펼쳐지고
다층집들은 산의 살과 뼈를
깔고 앉아 으스댄다
명산은 이름마저 잃고 피를 뿝는다
하늘에서 내려온 룡마의 말발굽산은
늙은이의 이즈러진 송곳이
송곳이의 아픈 메아리 속에는
새와 바람과 구름이야기가 있다
겨울 일몰
회색의 차거운 파도가
사태처럼 일다가 굳어버렸다.
추운파도를 피해 바위에
엎드린 이구아나 잔등에
노란 쟁반이 오렌지빛을 뿌린다.
송송한 가시가 더욱 뚜렷하다.
추위에 움츠린 까치 몇마리
래일의 아침을 기약하며
노을속으로 사라진다.
회색파도에 휩싸인 부두에는
고기배들이 닻을 내리고
비석처럼 창백한 다층집들은
황혼에 젖어있다.
하루 살이
내 세상은 꿈틀거리는 생명들의 궁전
장미꽃 잎은 비단필 언덕
나는 발톱을 날려 세균들을 잡아먹고
몸을 키우고 날개를 굳힌다.
털보숭이 공룡이 나를 먹이감으로 노린다.
내생은 하루란 시간속에서
늙어죽는다 나는 날고 또 난다.
그 시간속에 꽃과 새들이 울고
그 시간속에 억새와 제비꽃이 핀다.
내 생은 짧지만 또한 길다
나는 영생하는 우주의 먼지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