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라이프

벚꽃을 울리는 봄날,나는 걷기로 했다

□ 정희경

  • 2015-01-15 13:59:00

“강아지들이 참 귀여워요.”

농촌에 계시는 친구 할머니네집에 놀러갔다가 태여난지 얼마 안되는 강아지들을 보고 내가 말했다.

“그치,귀엽지? 한마리 데려가서 키울래?”

버들강아지 같은 강아지들이 서로에게 따뜻함을 전하면서 어미품에 기댄것을 보고 나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미개보다 더 잘 키울 자신이 없었기때문이다.그러자 할머니가 리해한다는듯 말했다

“하긴, 공부하느라 힘들텐데…”

사실 공부보다도 나를 더 힘들게 하는게 하나 있었다. 차마 내 입으로 말할수 없을만큼 멀어진 그것때문에 항상 필을 들었다가도 다시 놓아버리곤 했다.

“그런데 강아지들은 참 좋겠어요.”

“이 늙은이도 가끔 그렇게 생각한다네. 요것들을 보면 한 가지에 주렁주렁 달린 포도 같은 애들을 키울 때가 생각나거든. 코흘리개들을 모아놓고 이야기 들려주던 때가 아직도 눈앞에 삼삼한데…”

“어느새 다 커버려서 떠나보내도 좋았던 자식이였죠? 할머니, 그런데 저는 아직 많이 어린데도 엄마는 저를 두고 떠나가셨어요. 그래서 부러워요. 저 강아지들이.”

나는 속으로 괴여오는 울음을 삼키려고 목언저리를 꿈틀거렸다. 보이지도 않는 목언저리가 아래로 눌리웠다가 다시 제자리로 놀아오는 순간 울음으로 가득 찼던마음이 다시 외롭게 눈안으로 고이고 말았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나는 망설이였다. 내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어떤 식으로 시작해야 할지 몰라 엉거주춤하게 제자리에 쭈크리고 앉아 멍만 때리고있었다. 점점 식어가는 이 마음은 삭막함을 품고있는 차가운 모래바다와도 같았다. 이 곳에 발을 들여놓으려면 반드시 따뜻한 마음을 가진, 따뜻한 발걸음을 가진 따뜻한 사람이여야 했다.

차가운 모래바다인 그곳은 처음부터 그렇게 차거웠던것은 아니다. 찬바람이 그곳을 스치면서 잠시 그곳을 길들여 놓았을뿐이다. 사랑이 아니였음을 너무 쉽게 단정지어버린 편견들은 안다. 내마음은 아직 그리 깊은 겨울은 아니라는걸.

사람들과 함께 걷다보면 나는 늘 외로움을 느낀다. 또 그런대로 외로움과 함께 하다보면 익숙해져서 점점 사람이 어려워진다. 가랑잎이 바람 타고 멀리 떠난것처럼 엄마가 나를 두고 저 멀리로 떠나는 그 순간부터 외로움만이 나의 동반자였다.나는 여태껏 원망하지 않았다. 왜 나를 두고 그것도 그렇게 오래동안 혼자 버려두고 떠나셨는지를. 다만 내가 아파하고있는것은 엄마에 대한 정이 점점 삭막해진다는것이다. 무정하게 사람을 씻어버리는 시간의 흐름을 느끼면서 이젠 하다못해 쉬운 인사말을건네는것도 용기가 필요했다. 차가운 모래알갱이, 나는 그것을 바다로 만들었다.

빠르기만한 사람들의 발걸음이지만 그들의 뒤모습만은 느렸다. 그래서 요즘 내가 하는 일의 일부가 낯선이들의 뒤모습을 바라보면서 그들의 앞모습을 그리는 일이다. 뒤통수모양, 어깨 넓이, 걸음걸이, 손의 로출 등으로 그 사람의 눈섭이 연한지 진한지, 눈이 쌍겹인지, 외겹인지, 코가 높은지 낮은지, 입꼬리가 올라갔는지 내려갔는지 등을 스케치한다. 어떻게 보면 싱겁게 보일수 있는 습관이기도 하지만 나에겐 리유가 있었다.

어린 내 눈에 비춰온 엄마의 마지막 실루엣이 뒷모습이였다는걸 나는 잊지 못했기때문이였다. 나는 빛바래지고 흐려져 간 엄마의 얼굴을 찾고있었던것이다. 나는 줄곧 그래왔던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사랑 그자체인 이름이, 누군가에게는 정답기만 한 부름이 나에겐 너무나도 어렵게 다가왔다. 쉽게 뵐수 없었던 얼굴때문이였을가. 쉽게 듣지 못했던 목소리때문이였을가. 쉽게 안겨보지 못했던 품때문였을가. 아니다. 찌든 가난때문이였다. 가난함이 낳은 거리, 가난함이 낳은 낯설음, 엄마는 어쩔수 없었던것이다.

그래도 나는 가난한 아이였다. 엄마의 사랑을 모르고 자란 그리 춥지 않은 겨울을 입은 나부끼는 찬바람에 흐름을 바꾸는 삭막한 사막의 아이였다. 내 안에는 숱 꽃이 폈다가 지기도 했었지만 진정한 봄을 부르지는 못했다. 얼마나 더 멀어져야 차가움의 극치에 달을수 있을가. 얼마나 더 멀어져야 봄이 시작될수 있을가. 내게서 더 멀어지기전에 엄마는 꺼져가고 있었다. 땅처럼, 불꽃처럼… 봄이 오기도 전에…

요즘따라 자주 걸려오는 할머니의 전화가 심상치 않았다. 머하냐, 밥은 먹었냐, 공부는 잘 되냐, 딱히 할 말도 없는데 할머니는 자주 안부전화를 걸어오셨다. 아무렇지 않는 대화에 전화를 끊으려는 찰나, 그날은 무언가가 생각났듯 내가 물었다.

“요즘 엄마 머하세요? 두달동안 전화도 오지 않고, 카톡도 회답 안하시고 어디 아픈건 아니예요?”

이에 할머니는 긴긴 한숨을 몰아쉬시고는 뜸을 들이셨다. 그 순간 나는 두려웠다.할머니께서 내쉰 한숨소리의 무개가 나를 짓눌렀다. 그 10초가 내겐 고된 시련 같았다.

“음… 네가 걱정돼서 엄마가 나더러 자주 전화 걸어라 하셨어. 네 엄마 지금 우울증에 시달리고있어 치료받는 중이야, 너한테는 비밀로 해주기로 약속했는데…”

윙윙— 새하얗게 백지장 된 내 머리안에서 우울증이라는 단어가 스치면서 겨울 바람소리처럼 윙윙 울면서 내 귀는 할머니의 말씀을 더이상 들어주려하지 않았다.

윙윙— 우울증. 윙윙— 엄마가.

나는 좀처럼 종잡을수 없었다. 흐릿해진 엄마의 얼굴이 지금 어떠한 우울한 표정과 어울리고있는지. 그 우울함 가득한 표정이 어떠한 마음을 담고 나에게 비밀로 해달라고 할머니와 약속했는지. 그 우울증이라는 병에 내가 어느만큼의 자리를 차지하고있는지. 가슴이 미여지기 시작했고 목이 잠기기 시작했다. 자꾸만 꿈틀거리게 되는 목언저리도 이번만큼은 눈물을 억누르지 못했다. 왈칵 왈칵 쏟아지는 눈물이 소매에 스며들어 소매를 후줄근히 젖게 하였다.

“정희경, 참 못났다.”

엄마에 대한 미안함을 나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표현하였다. 나만 아니였더라면 자신을 지켜줄 남자를 만나 지금쯤 우울증이 아닌 행복을 누리고 계셨을지도 모른다. 나의 태여남이 괜스레 미워지는 이 순간. 하지만 쓸데없는 생각을 벗어던지고 마음으로 깨닫기를 노력해보면 엄마는 나를 많이 사랑하고 계셨다. 너무나도 강렬하게 뿜어져 나온 흰 빛발에 눈이 잠시 부셨을뿐.

돌이 지나기도전에 아버지와 리혼하셔서 홀로 나를 키워오신 엄마, 딸이라도 참 든든했다고 내가 자랑이셨던 우리 엄마, 이런 엄마가 최선을 다한 불꽃처럼 내가 보이지 않는 세상 어느 귀퉁이에서 식어가고 있었다. 이런 엄마에게 나는 항상 바라기만 했었고 다가가려고 노력한적 없이 항상 멀어져간다고만 투덜거렸다. 엄마는 분명 지금까지 한 최선도 최선으로 생각하지 않으셨던 모양이였다. 나는 참 못난 딸이다.

미안함과 근심이 나를 위태롭게 짓눌렀다. 나는 감히 엄두도 못냈던 담배까지 피우기 시작했다. 매운 담배연기가 뿜어져 나올 때마다 아무렇지 않은듯 웃으려 했고 또 그렇게 억지로 웃을 때마다 나는 신에게 기도했다. 나를 많이 닮은 한 녀인이 마침 우울증에 시달렸거든 제발 좀 낫게 해달라고, 오래동안 아파하다 낫게 해주셔도 괜찮으니 제발 내곁에서 데려가지 말아달라고. 나는 아직 어리고 엄마는 아직 나를 지켜야한다고… 나는 떼를 쓰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입에 오르지도 않던 말들이 슬프게 입술사이를 오가고있었다.

엄마, 고마워. 엄마, 미안해. 엄마, 사랑해… 엄마, 엄마, 엄마…

나에게 어렵기만 했던 한 이름을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쉬운 표현으로 지켜주고 싶었다. 나는 엄마의 하나뿐인 딸이기에. 너무 멀어진 감정들 그리고 마음의 거리를 좁힐수 있는 유일한 길―엄마, 딸이라는 쉬운 단어가 그 길인듯. 엄마가 식지 않게 내가 불로 되여 다가가는중이라고 벚꽃들에게 나는 알리고 싶다. 내안에 엄마를 위해 덥힌 봄이 나를 울리고 벚꽃들을 울리겠지만 나는 걷기로 했다고. 뛰여가면 꺼져버릴지도 모르는 불꽃이기에 사랑이 크게 번지기전에, 나는 걷기로 했다고. 벚꽃을 울리는 내안의 봄날에.



이 기사를 공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