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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미년 양해와 양띠

□ 윤동길

  • 2015-02-26 13:50:55

양은 인류가 수천년을 내려 오면서 부단한 순양과 개량을 거쳐 인류를 위해 크나큰 공헌을 한 “가축중의 왕”이다. 소, 말, 돼지등은 사료를 먹여야 하고 상대적으로 정력이 많이 들지만 양은 사양이 아주 수월하다. 또 닭, 개, 토끼등 소형가축들은 양에 비하면 육질도 못하다. 양털과 양가죽은 옜날이나 지금이나 널리사용하는 보온의류제조의 주요원료이기도 하다.

상고시기로부터 우리나라 중원지구등 지구상의 대부분 지구는 기후가 습윤하고 초목이 풍성하였으며 양의 주요먹이를 제공하는 초원이 많았다. 때문에 수천년간 인류는 기르기 수월하고 육질이 좋으며 양털등 많은 재부를 창조해주는 양을 “가축의 왕”으로 선택하였으나 인구의 급증, 초원의 사막화와 대폭적인 감소, 재해성 기상현상의 급증등으로 하여 양양업에 커다란 영향을 주고 있는 현실이다.

양(羊)은 성씨로도 쓰인다. “중국성씨기편(中国姓氏纪编)”에는 5730개의 성씨를 수록하였는데 8800자를 수록한 “신화자전”의 매 글자들은 그 대부분이 한글자 성씨로 쓰인다고 한다. 그러니 우리가 많이 쓰는 상용한자들은 거의 모두가 성씨로 쓰인다는 말이 되는셈이다.

“양좌지교(羊左之交)”라는 이야기가 있다. 춘추전국시기 연(燕)나라의 좌백도(左伯桃)는 나이 40이 되도록 뜻을 못 이루고 있다가 초(楚)나라의 왕이 천하의 유능지사를 받아 들인다는 말을 듣고 초나라로 가던중 양각애(羊角哀)의 집에 들게 되였다. 그들은 초면이였지만 모두가 학식이 깊고 웅대한 포부가 있는 치국지사(治国之士) 들인지라 온밤 학문이며 천하대사등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튿날 그들은 결의형제를 맺고 함께 초나라로 떠났다. 그들은 열 며칠을 걸어 엄한과 찬비를 맞으며 고생하던 중 폭설까지 만나 한 산굴에서 쉬게 되였다. 양각애가 산굴밖에 나가 마른나무가지를 한 아름 안고 산굴에 돌아와 보니 좌백도는 자기의 옷을 벗어 옆에 차곡차곡 개여 놓고 알몸으로 쓰러져 양각애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입은 옷도 엽고 식량도 판부족이니 이대로 간다면 둘 다 길에서 죽어 버리고 만다. 나는 나이가 많고 중병도 있으나 동생은 한창 나이이고 임금을 부추켜 나라를 잘 다스릴수 있는 수재이니 내옷까지 입고 나머지 식량으로 꼭 초나라에까지 가야 한다”라는 말을 남기고 좌백도는 세상을 떳다.

양각애는 대성통곡하였다. 정신을 차리고 길을 떠난 양각애는 끝끝내 초나라에 도착하여 임금에게 나라를 다스릴 열가지 대책을 올리였고 임금은 이를 기꺼이 받아 들이였으며 양각애에게는 관직에 봉하여 나라정사를 맡기였다. 후일 양각애는 다시 좌백도의 시체를 찾아 묘지를 쓰고 후한 장례를 치렀으며 임금도 사당을 세우게 하고 “충의사(忠义寺)”라는 편액을 걸도록 하였다.

목숨까지 바쳐 친구를 돕고 우정에 충성하고 나라와 백성에 충성하는 우리나라 전통적인 “양문화”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깊은 사색을 남긴다.

양은 인류의 가장 우수한 동물반려이고 식물래원이며 특히 그의 온순하고 선량하며 례모있고 의리를 지키는등등의 여러가지 좋은 품성들은 인류가 인정해 주고 있으며 착할 “선(善)” 의 화신으로서 인류의 전통적인 도덕관념의 준칙으로 되였다.

양띠인 사람들은 거개가 마음이 어지고 선량하며 친우지간의 의리를 지키고 명리를 따지지 않으며 말수가 적고 무슨일이나 열심히 착실히 해 나가며 뭇사람들의 인정을 받는다. 자신이 좀만 더 노력하고 활동만 한다면 물질상 수입도 괜찮을것이고 승진할 기회도 많다. 반면에 마음이 약하여 말밥에 오르기 쉽고 종 종 곁사람들의 질투와 우롱을 받게 되며 지어 남의 죄과를 대신 뒤집어 쓰고 억울하게 “희생양(替罪羊)이 되기도 한다.

신앙이란 워낙 믿으면 믿을수록 확신하게 되는것이여서 손금을 보거나 점괘를 보고 오리무중에 빠져 실패를 본 실례가 많다. 사교(邪教)신도들이 자신들의 이른바 “사업”에 충성하면서 돌아서지 못하는 원인도 바로 가당치 않은 설교에 깊숙히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기실 누가 어떻게 말하든지 사람들이 믿거나 말거나 세상은 의연히 객관법칙에 따라 무난히 돌아가는것이 자연의 순리이며 이른바 자신의 전도와 길은 내가 어떻게 개척하고 걷는가에 달렸다. 커피의 본질은 아주 쓴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과학적으로 가공하고 설탕, 우유, 각종 조미료등을 넣음으로 하여 최상의 음료로 되였다.

소위 “띠”풀이는 모두 좋은데로 풀이하게 되여 있으며 한 두가지 부족점을 제기하거나 주의를 주면서 인심을 “롱락”하는데 불과하다. 아인슈타인의 “상대론”의 각도에서 보아도 이 세상에는 영원한것, 완벽한것, 절대적인것은 없으며 이른바 “크다 작다”, “좋다, 나쁘다”등등도 모두 세상만사와 세상만물에 대한 상대적인 결론일뿐이다. 물론 “띠풀이”가 좋게 나오면 기분이 좋고 나쁘게 나오면 기분이 언짢아지는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믿는것은 아둔한짓이다. 그러나 적어도 참고로 할수는 있다고 본다. “양띠”인 사람은 이러이러하다고 할때 가히 자신을 이것과 더불어 검토해 보면서 그 듣기 좋은 말들로 항상 자신을 고무격려하고 언짢은것들로 항상 자신을 경계한다면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한 사람의 미래는 아무도 예측할수 없으며 그 자신의 처신여하에 따라 그 결과가 다른법이다. 하여튼 을미년양해에 사람마다 착실히 살아나가는 문명하고 조화로운 세상을 만들어 나가자는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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