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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자흐족가수의 노래를 들으며

강효삼

  • 2015-05-28 14:40:07

올해 초, 북경에서 열린 《민족문학》 년도시상식에 참가했을 때였다. 《민족문학》시상식이 끝난후 “아커싸이(阿克赛)문학상”시상식도 함께 진행되였는데 시상식에서 멀리 서북에서 온 까자흐족 남성가수가 까자흐족 민요를 불렀다. 순전히 까자흐언어로 노래를 했기에 그 가사내용이 어떠한지는 알지 못해도 분명 일망무제한 초원에서 소와 양을 몰면서 부르는 목동의 노래임에는 틀림이 없을듯싶었다. 나는 지금까지 한번도 가보지 못했지만 그림과 영상을 통해 많이 보아온 서북의 대초원을 련상하였다. 거기 넓은 들 푸른 풀들이 아름답게 깔린 초원에서 까자흐족들이 소와 양을 방목하면서 자연스럽게 노래를 부르고있다.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유유히 풀을 뜯는 소와 양떼들에 어울려 저 멀리 초원에서 들려오는듯한 노래가락에는 자유로움과 넉넉함이 묻어있다.

문득 저네들의 여유로운 노래를 들으면서 나는 고달프게 바쁘게 요란스럽고 복잡하게 살고있는 우리 조선족의 삶을 떠올렸다. 중국조선족은 옛날 떠돌이로 남북만리를 헤메며 돌던 때외 비교하면 고정된 생활의 주거지도 가지고있고 물질적 부도 어지간히 쌓았지만 저 들처럼 넓은 흉금으로 생활을 아량있게 포섭하면서 참으로 여유있고 행복하고 그리고 느슨하게 살고있는것인가?

행복의 표준은 결코 물질의 만족에만 있는것은 아니다. 서북고원에 자리잡은 아커싸이(阿克赛)까자흐족자치현의 총인구 9100명중 까쟈흐족은 3천여명밖에 안되며 대부분 유목인으로 인구당 일년 순수입이 2천원도 안되지만 저네들은 남다른 담략과 용기로 수도 북경의 대강당에까지 와서 당당하게 노래를 부르며 자신을 과시하고있는것이다.

단순이 경제수입만을 고려한다면 저들은 노래를 부르는 여유는커녕 남들에게 뒤지고 못사는 괴로움과 아픔때문에 눈물을 흘려도 시원치 않을것이다. 그래도 저들은 렬악한 생활환경을 극복하고 조상들이 태고적부터 자리잡은 고향에서 대를 이어 살면서 삶의 고달픔은 모르는듯이 노래를 부르며 쾌활하게 사는것이다.

허지만 “보따리민족”이라 불리는 우리 민족은 어떤가?(하긴 우리 민족도 노래는 즐긴다.) 민족집거지는 갈수록 무너지고 학교는 문을 닫고 민족존재의 안정성조차 희미해져가고있는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단지 조선족이 적은 산재지구뿐 아니라 자치주라고 하는 연변도 마찬가지라고 하니 이 땅에서 우리 민족의 장래는 어떻게 될것인가? 누구는 이를 순발력 있는 우리 민족의 발빠른 움직임이라 긍정적으로 보고있는데 도리가 없는것은 아니지만 늘 이렇게 바람따라 돛을 달듯 시대의 흐름에 발 빠르게 동조하려니 얼마나 고달프고 힘든것인가.

“우리는 왜 한 곳에 뿌리박고 살지 못하고 늘 바쁘게 요란스럽게 떠돌아야 하는지? 우리는 왜 작은것은 눈에 차 하지 않고 큰것만을 생각하면서 고향에서 이방인으로 살고있는지?” 그것이 단지 물질의 가난때문일가? 하다면 저들은 우리보다 잘살지 못하고 우리처럼 해외의 돈벌이에 나설 기회조차 많지 않겠지만 오히려 부족함을 모르고 마치 물질에 대한 욕망이 없는 무소유의 족속처럼 넉넉하고 평화로운 삶을 살고있다. 아마 저네들은 초원이 있는한 그 어떤 바람이 불어닥친다고 해도 우리처럼 쉽게 또 자주 흔들리지 않을것이다.

인구 만명도 안되는 작은 현에서 그 많은 돈을 쓰면서 이번에 13억의 수도 북경에 일부러 와서 “아커싸이문학상”시상식을 개최하는것으로 까자흐족문학을 과시하는데 상은 대상, 창작상, 번역상, 신예상(新锐奖) 4개의 상으로 대상에 13만원, 신예상도 3만원이나 된다. 고작 만원을 놓고 대상이라면서 그것조차 주기가 힘들어하는 우리 민족 문학에 비기면 참으로 놀랍고 부럽지 않을수가 없다. 예술과 의식의 한 형태인 문학이란 차원을 넘어서 그네들의 굳건한 민족의식 하나를 더 엿볼수 있었으니 그네들은 행사를 치르는 동안 첫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자기 민족언어를 당당하게 사용하였다. 그리고 자기 민족복장을 떨쳐입고… 참 민족복장이란 말이 나오니 까자흐족은 물론 그날 시상식에 참가한 다른 민족들이 옷차림에서도 나에게 주는 계시와 충격은 컸다.

전날 여러 민족 시상식참가자들과 한상에 앉아 식사하였다. 모두들 회의참석자들이라는 공통감때문에 첫 대면에도 허물없이 친해지면서도 그 자리만은 모두가 현대복장을 입고 공통어인 한어를 사용했기에 누가 어떤 민족인가는 서로 물어서야 알게 되였다. 헌데 이튿날, 정작 회의장에 들어갈 때 나는 새삼스레 어제 나와 한상에 앉아있던 분들중에 자기 민족 복장을 당당하게 떨쳐입은 몽골족, 회족, 위글족 등 낯익은 분들을 발견하였다 .그들은 어제 술상과 달리 오늘 모임엔 꼭 자기 민족을 나타내야 할 장소이기에 민족복장으로 갈아입은것이다. 설사 민족복장을 갈아입지 않았어도 회족작가들은 머리에 흰 모자를 써서 자신들이 회족임을 나타내였다. 민족의 특색은 가장 먼저 그가 입거나 쓰는 의류와 모자들에서 여실이 나타난다. 때문에 그의 옷차림을 보아 그가 어떤 민족임을 대번에 알아 볼수 있다. 헌데 우리는 그렇지 못했다. 상을 받는 조선족작가들중 누구도 민족복장을 입지 않았다. 그날 만일 《민족문학》조선문판의 두 녀성편집이 우리 민족복장을 하지 않았더라면 우리 민족은 단 한사람도 자기 민족복장을 입지 않는 민족이 되였을것이다.

다른이들은 말할것 없고 나 역시 특별한 의미를 지닌 장소에 반드시 자기 민족복장을 착복해야 한다는것을 념두에 두지 않았었다. 평시에 늘 “민족, 민족” 하면서 민족자부심이 누구보다 강한척 했지만 그것이 얼마나 허위적이고 빈약한것인가.

우리 조선족 위주의 모임에서도 소수의 한족간부에게 잘 보이려고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한어로 사회하고 발언하면서도 아무런 가책이나 미안함을 모르는 그런 조선족들이 더러 있어 얼마나 개탄스러운가. 경제적으로 우리보다 가난한 저들 까쟈흐족에 비해 민족자각성과 민족의식이 퍼그나 뒤져있으면서도 그 위기감을 모른채 물질의 만족속에 자신을 잃어가고 있는 우리 민족의 장래가 심히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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