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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드는 소감 (외2편)

□ 구용기

  • 2015-07-09 16:36:56

저녁을 먹고 심심할 때면 딸에게 전화를 한다. 전화를 자주 하다보니 할 말도 별로 없다. 그래서 늘 뭘 하고있냐고 묻군 했다. 그러면 딸은 보통 숙소에서 시간을 보내고있다고 한다. 혼자 심심하지 않냐고 물으면 그렇지 않다고 했다. 친구를 만나 영화도 보고 그러라고 하면 혼자 이렇게 있는게 좋다고 했다. 혼자 그렇게 있는 날도 시간이 너무 빨리 가서 아쉽다고 한다.

딸의 말을 들으면서 옛날에는 나도 그랬지 않았냐는 생각을 떠올렸다. 젊었을 때는 집 사람들이 다 어디로 가고 혼자 있을 때가 너무 좋았던 기억이 난다. 아무 할 일이 없어도 시간이 설렁설렁 잘도 갔다. 한잠 자도 좋았고 좋아하는 책을 몇페지 읽어도 좋았다. 실은 무엇을 해서 유쾌한것이 아니라 젊음에서 넘쳐나는 호기심, 문뜩문뜩 솟아나서 나를 꾀는 여러 유혹 그리고 남에게 말할수 없는 나만의 비밀 등등. 그런 것들에 휩싸여 시간이 살같이 흘러버린다. 내 몸에서 샘 솟는 생기와 정열이 무료와 적막을 쫓아버리는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50을 넘고 보니 외로움이라는 그림자가 틈만 있으면 마음을 흐려놓는다. 출근해서 일하는 틈틈에, 퇴근해서 휴식하는 틈틈에 피할수 없는 적막함이 서려든다. 저녁은 어떻게 하고, 저녁 먹고는 어떻게 하고 자기 전에는 어떻게 하고 시간을 다 짜놓고 행동하지만 어느 사이에 서려드는 외로움을 이길수가 없다. 꼭 다른 심장 하나가 곁에서 뛰며 동반해줘야 할것만 같은 그런 그리움, 서글픔에 가슴이 텅 비는것 같앴다. 찌지리 못 생겼어도, 매일 했던 말을 또 하는 사람이더라도 내 곁에서 숨쉬고있었으면 좋을듯했다. 내 하는 일에 관심이 없거나 내가 쓴 글을 읽어주지 않아도 좋은 어떤 생명체가 간절히 그립다.

때로는 어떤 하루가 일년처럼 지루하기도 하다. 나이 들수록 생명의 귀중함을 알고 시간이 빨리 흐르는것이 안타까워야 할텐데 나는 왜 이러는것일가. 그런데 이상하기도 했다. 한 시간은 지루한데 하루는 휘딱 지나가버리는것 같기도 했다. 하루는 지루한데 한주일은 훌떡 던져버린것처럼 없어진다. 한달도 훌떡, 한해도 훌떡 지나간다.

이것이 나이 드는 느낌이다. 몸과 마음이 쇠퇴로 가는 과정이다. 그러다가 늙고 죽을것이다. 늙어 죽을 때까지 사람은 얼마나 많은 외로움을 느껴야 하는것일가. 늙어가도 외로움을 타지 않는 그런 비결은 없을가.


남보다 신경 몇 결이 더 있는 사람
언제나 남들보다 생각이 넓은 그런 사람이 있다. 친구 집에 축의금을 낼 때도 나는 나 혼자만의것을 줘버리고 마는데 그 사람은 아니다. 봉투를 준비하고 볼펜을 준비해서 남들의것까지 걷어서 낸다. 식당에 가서 료리를 시킬 때도 나는 내가 좋아하는것만 주문하지만 그는 먼저 남이 좋아하는 료리부터 시킨다. 언젠가 친구 열명이 들놀이를 갔었다. 그때는 사진을 지금처럼 맘대로 찍을수 있을 때가 아니였다. 놀다가 서로 흩어졌다. 그때 나는 사진기를 가진 사람에게 우리 몇의 사진을 한장 찍자고 제안하였다. 그러자 그 친구가 그랬다. ‘우리끼리 찍으면 좋을가?’ 생각해보니 그의 말이 옳았다. 우리 몇이만 찍은 사진을 볼 때 빠진 사람들의 마음이 어떨가. 우리 빼고 너네끼리 노는거냐 하지 않을가. 친구 집에 대사가 생겨서 갈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체면을 차리는 례의로 끝내고 빠져나올 궁리를 하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지만 그는 그렇지 않았다. 아예 자신을 주인집에 줘버린다. 그 당시는 주인이 되여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한다.
이처럼 그는 언제나 남보다 신경 한 결이 더 있는 사람 같았다. 그래서 그는 권리가 없어도 권위가 있으며 팀장이 아니여도 사람들의 중심이 되곤 했다. 어려서부터 우리 민족의 좋은 교양을 받으며 자랐는지는 몰라도 그는 정말 우리 조선족들이 말하는 “되여먹은 사람”이였다. 그렇게 산다는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가. 그런 친화력을 바탕으로 주위에 사람을 모으는 야심으로 오해받을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아니였다. 그가 그렇게 남을, 주위 사람을 잘 챙기는것은 그것이 그를 즐겁게 하기 때문이였다. 남을 챙길 때의 그 인자하고 자연스러운 표정이 그것을 증명해준다. 그런 성품은 타고난것이라고 해야 할것이다. 아니면 태교때부터 길들여져서 몸에 푹 배인것임에 틀림이 없을것이다. 그에게서 늘 감동을 먹는 나는 나도 그를 좀 배워야겠다고 거듭 다짐하였었다. 하지만 그것이 잘 되지 않았다. 일에 닥치면 먼저 나 자신부터 생각하는 나의 근성은 고칠수가 없었다.
후에 나는 아예 그를 배울 엄두를 내지 않고 그를 그냥 흔상하기만 하였다. 나보다 큰 사람, 나 우에서 사는 사람, 바라보면 기분이 좋아지게 하는 사람… 사실 그를 훨씬 더 좋은 언사로 찬양하고싶다.


내 기분은 내가 지켜야

용돈도 그립고 시간도 나져서 어떤 번역부탁을 접수하였다. 기실 나는 번역 같은 일은 싫어하는 편이었다. 정확하게 하려고 해도 잘 안 되여 애가 쓰이는것이 번역이었기때문이였다. 받은 책을 다 번역하려면 석달내지 반년 동안 안경을 걸고 컴퓨터앞에서 어깨가 찌그러지도록 애를 써야 했다. 그래도 책까지 받았고 답복을 한 일이어서 어쨌든 해보려고 책을 펼쳤다. 그런데 한동안 책을 읽어보노라니 머리가 절로 흔들렸다. 어떤 력사를 기록한다고 한 책이었는데, 모종 정치적 편견을 가지고 조잡하게 쓴 책이었다. 번역도 일종 창작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책을 번역하는데는 창작적인 령감이 떠오를수가 없을것이였고 짜증이나 고뇌만 동반될것 같았다. 이걸 번역하노라면 내가 력사를 가지고 장난을 하는 죄인이 될것 같았다. 결국 렴치불문하고 책을 돌려주었다.
나는 내 자신에게 부담을 만들지 않기로 하였다. 이젠 나이도 있고 한데 하기 싫은 일은 아예 찾지 않기로 하였다. 내 기분을 절대 존중하기로 하였다. 가능한한 내 기분을 잡치는 일은 거부하고싶었다.
요즘 나는 짧은 글을 쓰는것이 무척 재미가 있었다. 내가 유쾌한 기분으로 쓸수 있는 글이였다. 그리고 내 자신이 흥미를 느끼지 않는 글은 다시는 쓰지 않으리라고 다짐하였다. 내 자신이 흥미 없는 글을 남더러 읽으라는것은 우매한 짓이다. 모종 설명을 위해서, 모종 과도를 위해서, 모종 과정을 알리기 위해서 쓰게 되는 부분은 사정없이 버리고 흥미있는 내용들로 충만된 글을 쓰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독자가 이 글을 읽으면 어떤 느낌일가 수시로 상상해 보겠다. 내가 흥미를 가진다고 남들도 다 그러하다고 인정할수 없는것이 아닌가.
여기서 내가 하려고 하는 말의 핵심은 내가 내 기분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내 기분이 좋아지게 선택할 수 있는 결정적 1인자는 바로 내 자신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기분이 너무 좋다. 이 밤을 지새며 줄줄이 떠오르는 생각들을 적고 싶어진다. 이런 글들은 내가 내 자신을 즐겁게 해주는 비상한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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