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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나라에도 위챗이 있을가

□ 전홍일

  • 2015-09-17 14:49:38
8월도 막가는 며칠전 일요일날 아침, 전날 저녁에 마신 술로 머리가 어지러워 늦잠에 빠져있던 나는 몇시나 되였을가 궁금해서 머리맡에 놓아둔 핸드폰을 주어들었다. 이미 여덟시가 넘었다. 핸드폰을 도로 제자리에 놓으려다 위챗메세지가 여러개 있는걸 발견하고 습관적으로 버튼을 눌러 들여다 보았다. 맨처음에 훈춘에 있는 막역한 사이 동생의 위챗이 눈에 안겨왔다.

“이 위챗주인이 어제 심장병으로 불시에 사망하였습니다. 래일 아침 일곱시반에 장례식이 있습니다…”

잠이 번쩍 깼다.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설마설마 하면서 훈춘에 있는 친구한테 전화를 걸었더니 바로 그 동생이라는것이 확인되였다. 청천벽력이 아닐수 없었다. 42살, 아, 너무 아까운 나이이다.

대강 세수를 하고 차를 몰고 곧바로 훈춘으로 향했다. 훈춘에 채 도착하기전에 위챗친구그룹에 또 눈익은 이름이 떴다.

“아니, 이 친구는 몇달전에 뇌출혈로 쓰러졌었는데 어떻게위챗에 오르지?”

발신인의 위챗을 확인하는 순간 또 한번 소스라치게 놀랐다.

“저의 언니가 지금 병이 너무 위독합니다…”

인사불성으로 병상에 누워있는 언니의 핸드폰으로 녀동생이 올린 글이였다.

그 뒤로 꼭 세시간뒤, 끝내 또 글이 올라왔다.

“저의 언니는 금방 저세상으로 떠났습니다. 천당에 가서는 고통이 없기를…”

44살 나이, 일에 지쳐 뇌출혈로 몇달전 쓰러진채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끝내 떠난것이다.

훈춘에서 다시 화룡으로 가는 길 내내 깊은 생각에 잠겼다. 하루에 받은 두번의 부고, 그것도 40대초반의 젊은 두 친구의 타계를 가슴 아픈 현실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힘든 일이 아닐수 없었다.

너무 고달프고 힘든 인생살이, 직장에서 날로 쌓여가는 스트레스에 심신이 망가지고 돈이 뭐길래 돈벌이에 집착하다가 건강을 잃어버리는 주변의 사람들, 더구나 저세상과 아직 거리 멀다고 방임하는 40대, 50대 친구들… 느닷없이 날아드는 부고로 깜짝깜짝 놀랄 때가 너무 많다. 태여난 순서없이 예고없이 떠나가는 저세상, 너무나 쉽게 무너지는 건강, 너무나 쉽게 멈춰버리는 심장… 안타깝기만 하다. 태여날 때 빈손으로 왔다가 돌아갈 때 빈손으로 가는 도리를 알면서도 인간은 매일 팽이처럼 바삐 돌아치며 살아가고있다.

불행과 래일이 어느것이 먼저 찾아올지 누구도 예언할수 없다. 언젠가 술상에서 들은 얘기다. 누군가는 매번 비행기를 타고 외출할 때마다 비행기편번호,리륙, 착륙시간 그리고 자기 은행카드 비밀번호, 친구 동료들과의 돈거래 정황을 빼곡히 메모해서 집 랭장고 문에 붙여놓는다는 얘기였다. 그땐 그저 그렇게 꼼꼼한 사람이 다 있는가 하고 웃어넘겼다. 그러나 오늘 다시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저 웃고 지날 일이 아닌것 같다. 어떤때에는 무심코 던진 “안녕히!”라는 말 한마디가 영원한 리별이 될수 있는것이다.

인생을 살다가 간혹 돌이켜보면 많은 일들이 우습게 보여진다. 하찮은 일에도 하늘이 무너지듯 화를 내고 사소한 리익 앞에서도 티각태각 싸우고 뒤에서 남을 헐뜯고 남을 해치는 일도 서슴치 않고 하는이들이 적지 않다. 길지도 않은 직장생활을 하면서 그까짓 일로 원쑤처럼 지내다가 퇴직해보면 그저 그런게 아니였던가?

5년전, 새로운 단위에 전근해 와서 나는 “쾌락사업, 건강생활”이라는 슬로건을 제기하고 그 리념을 직장 동료들에게 심어주기에 힘을 기울여왔다. 기실 심정이 유쾌하게 보내도 하루요, 우울히 보내도 역시 하루 24시간이다. 매일매일 반복적으로 하는 일과를 힘든 임무로 간주한다면 그 하루하루가 얼마나 지겹겠는가?

그날, 하루 두번 참가한 추도식장에서 왜 마음씨 고운 사람들이 먼저 떠나가는가 하는 안타까움이 가슴을 허벼 알알해났다. 짧은 인생에서 본직사업에 충실하고 가정에 충성하고 친구들과의 의리를 중히 여겼던 두 친구였으니 말이다.

장례식장에서 자식을 앞세운 부모들과 현실이라는걸 아직 실감하지 못하고있는 열몇살에 나는 애들을 바라보면서 눈물이 저도 몰래 솟구쳤다. 순간, 한 사람의 생명은 자기 자신의것만 아니라는 생각이 불현듯 머리를 파고들었다. 내 생명은 엄마 아빠가 준것이기에 나 혼자것이 아니고 안해, 남편이 있기에 역시 자기 혼자의것이 아니고 더욱이는 어린 자식들이 있기에 더구나 한사람의것이 아니다. 사회에 대한 책임감, 가정에 대한 사명감이 언제나 우리 두 어깨우에 놓여있다. 이 무거운 짐들이 시시각각 우리가 더 열심히 살도록 깨우치고 격려하고있으며 책임과 사명을 훌륭히 완성해나가도록 채찍질하고있는것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재산을 잃는것은 조금 잃은것이고 명예를 잃는것을 많이 잃은것이며 건강을 잃는것은 전부를 잃은것이라 말했다.

주변의 사람들은 나를 “운동광”이라고 말한다. 물론 프로급이 아닌것이 흠이긴 하지만 축구, 배구, 탁구, 당구, 정구, 바드민톤, 등산, 스키, 스케트 제기차기 등 운동이란 운동은 별로 빼놓는것이 없이 좋아한다.

어떤 친구들은 얼마 오래 살겠다고 맨날 운동하는가 물어본다. 운동을 열심히 하는건 결코 오래 살기 위함이 아니다. 살아있는 동안 더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해서이고 두어깨에 놓인 업무,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더 잘하기 위한 노력일뿐이다.

30년전 고중때, 15명 친구들이 어느날 사진관에 가서 소중한 기념사진을 남겼었다. 그런데 지금 사진속의 친구중 5명이 다른 세상에 있다. 어떤 친구는 꽃다운 20대에, 또 어떤 친구는 30, 40대에 간 친구도 있었다. 대부분 뇌출혈, 심근경색으로 작별인사 한마디 못하고 저세상 사람으로 되여버렸다.

몇해전, 각별히 친한 한 친구가 페암으로 몇해간 치료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이미 암말기 진단을 받고 자기가 얼마 살지 못하고 죽는다는걸 뻔히 알면서도 우리들과 스스럼없이 죽음에 대해 의논하였다. 운명을 달리하기전에 친구는 자기가 저세상에 가더라도 전화번호를 없애지 말라고 부탁한적이 있다. 이젠 다른 세상 사람이 된지 몇해 되지만 나는 그 친구 핸드폰번호를 그대로 두고있다. 그 사이 핸드폰을 여러개 바꾸면서도 그 친구 전화번호를 그대로 입력해두고있다. 그와의 마지막 통화시간도 그대로 고스란히 남아있다. 위챗도 물론 그대로 그 자리에 고정되여있다.

핸드폰에 저장되여있는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훑어보면서 자주 놀라군 한다. 이미 저세상에 간 친구들의 전화번호가 이름석자와 같이 그대로 있다. 금방 또 둘이 늘어났다. 그 친구들의 위챗모멘트를 하나하나 들여다보면서 그들과 함께했던 시간들을 되새겨본다. 참 좋은 친구들이였는데…

장례식날 저녁, 금방 자리에 누워서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면서 잠을 청하고있는데 낮에 금방 하늘나라에 간 두 친구의 위챗에 거의 동시에 문자가 떴다.

“오늘 장례식에 참석해 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저의 동생을 대신하여 감사를 드립니다…”

“언니가 저 세상에서 고통없이 지내기를 간절히 빕니다…”

그 위챗문자를 번갈아 보면서 나는 또 한번 두 친구를 머리속에 떠올렸다. 마음씨 착한 친구들이니 꼭 천당에 갔을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면서 불현듯 저 하늘나라에도 위챗이 있을가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그래, 저 세상에도 기필코 위챗이 있을것이다. 그 친구들이 위챗을 통해 우리 열심히 사는 삶을 지켜보고있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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