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라이프

차소리와 잔소리

□ 한춘옥

  • 2015-09-24 08:54:17
현대문명의 혜택으로 요즘 우리는 너무도 편하게 살고있다. 집에는 단추 하나만 꾹 누르면 빨래를 다 해주는 세탁기가 있고 소파에 앉아 세계를 유람할수 있는 텔레비죤이 있다. 밥가마가 말하는 시대이니 옛날 지주, 자본가보다 더 풍요롭게 살고있다.

집문을 나서면 “11선”을 이용할 필요없이 자가용을 신나게 운전한다. 도로에는 매미같은 차들이 바글거린다. 출퇴근시간이면 차가 막혀 “11선”보다 더 늦을때도 있지만 그래도 자가용이 좋기만 하다. 허장성세하는 량반들이 쩍 하면 빵-빵 소음 소리를 낸다. 품위가 있어 보이는 량반들의 잔소리에 길손들의 심장이 벌렁벌렁 세차게 요동친다.

우리는 언제면 일본과 같은 차 문화가 보급될런지? 한숨을 길게 쉬면서 저 차속에 량반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페를 끼치는 미안함이 있을가 혼자서 중얼중얼 말해본다.

운전하는 사람의 짜증을 걸러서 기계의 힘으로 방출하는 그 소음소리는 죄없는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흐려놓는다.

누가 귀 먹었다는듯이 련발 경적소리를 날려도 인젠 마비상태가 된 사람들은 배속에 애 떨어져도 무방하다는 표정이다. 아츠런 경적소리를 좋아할 사람은 없지만 때론 그 소음소리로 교통사고를 얼마간이라도 줄일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도 해본다.

빵-빵 소리가 사랑을 담으면 어떨가? 사랑은 사람과 하늘이 나눠 가진 성품이니까.

잔소리도 경적소리와 마찬가지로 사람을 짜증나게 할 때가 있다. 잔소리는 듣기 싫게 필요 이상으로 참견하거나 꾸중하며 말하는것이다. 우리는 누구라 할것없이 잔소리를 들으며 커왔고 잔소리속에서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어릴때 부모님의 잔소리에는 바로 보모님의 가장 큰 애정과이 녹아있었다. 가정에서 잔소리 수위를 잘 조절하여 자녀가 잘못할 때 그 잘못한 점을 분명히 리해시키고 스스로 깨달아서 고쳐나갈수 있게 지도해주면 유익하다.

잔소리에는 시기가 있다. 어린아이들에게 수위 조절이 잘된 잔소리는 비타민이다. 아이들에게 눈을 맞추며 하는 잔소리는 마치 농가 비료처럼 곡식의 알이 꽉 차게 한다.

이 세상에서 노력하지 않고 저절로 얻어지는것은 없다. 자식농사에서 잔소리를 통하여 부족한 점을 채울수 있고 점점 더 좋은 쪽으로 자라면 그것은 유익하다.

소리는 워낙 예술이다. 노래소리, 악기소리, 새소리는 귀맛이 좋아서 향수를 누릴수 있다.

하지만 차소음과 잔소리는 수위 조절이 필요하다. 차와 사람의 잔소리는 귀맛을 흐리고 자유를 박탈하는 명령이기때문이다.

사람과 같이 쓰는 도로우에서 차소음은 평화를 망가뜨린다. 록색외출에 저탄소 배출의 삶을 실천하는 사람들에게 페기가스를 방출하면서 호통치는 소리가 사라질 때가 오겠지!

어느 한번 일보러 갔다가 은행에서 나오는데 택시기사가 차를 타라고 하였다. 나는 차가 있으니 필요 없다며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그 기사는 크게 놀라는 기색이다. 두바퀴 자전거가 어떻게 차라고 할수 있냐는 표정이다. 내가 두바퀴면 록색차, 네바퀴면 소음에 페기가스차가 아닌가고 되물어서 웃던 일이 지금도 눈에 아물거린다.

페기가스를 방출하는 차들이 록색을 실천하는 사람들에게 빵-빵소리를 질러대는 것은 억수로 미안한 일이다.

하지만 신호등을 마구 무시하고 다니는 사람들에게 차 잔소리는 가끔 효력을 볼 때도 있다. 차소리와 잔소리는 수위조절을 잘한다면 약이 되고 삶의 향연이 되지 않을가?

차안에서 도도한 음악을 틀어놓고 삶의 따뜻한 감수성을 즐기면서 창문 내리고 미소로 인도하는 운전기사의 배려가 얼마나 가슴 따뜻한가?

사랑 담긴 부모의 잔소리도 자식에게 눈빛을 맞추고 듣기 좋게 한다면 좋은 습관을 키우는데 얼마나 필요할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물처럼 흘러가는 도심의 차들이 고요함속에 피여오르는 따뜻한 감수성을 느낄 때가 좋다.

잔소리도 예술을 접목시키면 음악소리로 승화될수 있다. 사람은 사랑을 가졌기때문이다.

이 기사를 공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