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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을에

□ 류서연

  • 2015-10-15 15:00:56
어느새 날씨가 썰렁하여졌다. 하늘도 전보다 훨씬 더 높아졌고 훨씬 더 푸르러졌다. 가로수의 나무잎들도 따가운 가을해살에 노오랗게 물들어가기 시작하였다. 금방 봄을 맞이한것 같았는데 여름도 훌쩍 지나가버리고 벌써 가을이라니. 그러고보니 아침에 출근할 때마다 느껴지는 가을 하늘은 맑고 선명하고 청청하였다. 높고 푸른 하늘과 온 몸을 부드럽게 감싸주는 해살, 선들거리는 가을바람, 형형색색의 옷으로 갈아입기 시작한 나무와 꽃들의 어지러운 향기속에서 10월에 성큼 들어선 가을은 점점 깊어간다.

여직껏 살아오면서 춘화추동 자연스레 바뀌는 계절의 변화를 자연의 생리로 례사롭게 받아들이고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살아왔던 내가 언제부터 계절의 변화에 이렇게 민감해지기 시작하였을가, 이것도 아마 나이를 먹어가는 징조일가? 머리 들어 높고 푸른 가을 하늘을 바라본다. 오늘의 하늘은 유난히 높고 푸른것 같았다. 눈이 시리도록 푸른 하늘을 하염없이 보고있노라니 까닭없이 눈물이 난다.

나무잎들은 벌써 가을임을 자랑하둣 울긋불긋하다. 가담가담 피여있는 국화꽃이 가을의 정취를 한결 짙게 해준다. 이따금 불어오는 바람에 한잎두잎 나무잎들이 뱅그르르 돌면서 떨어져내려 내 발밑에 납죽 엎드린다. 쓸쓸한 조락의 슬픔을 안고 떨어지는 락엽들이 어쩐지 애처롭다. 하지만 락엽이 져서 잎이 떨어짐은 엄연한 자연의 생리다. 짧은 생을 살아온 락엽이지만 자신을 온전히 버려 다시 대지에 귀속시켜 묵묵히 비바람의 세례를 받으며 래년에 무성하게 자랄 새잎을 위하여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위하여 비옥한 밑거름이 되여주는 그 락엽속에서 래년 봄에 왕성하게 뾰족뾰족 새움을 틔울 새싹을 다시 보는것 같아 그나마 위안이 되였다. 시간은 왜 이렇게 살같이 흘러갈가?

문득 발밑에서 바삭하고 락엽이 밟히는 소리가 들려온다. 허리 굽혀 락엽 한잎을 손에 주어들고 넋을 잃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노오랗게 색이 오른 락엽이 너무 예뻤다. 나는 아예 주저앉아 땅에 떨어진 락엽을 하나하나 유심히 살펴보기 시작하였다. 땅에 떨어진 잎들마다 다 색갈이 제 각각이였다. 노오랗고 빠알갛고 또 어떤것은 갈색에 가까운 색갈이다. 봄, 여름, 가을, 세 계절을 거친 락엽들은 저마다 살아온 인생이 다르듯 어떤 락엽은 잎을 오므리고 있는 모습이 무언가 자신의 삶에 불만이 가득찬것으로 보였고 어떤 락엽은 잎을 쭉 편채 자신의 삶이 만족스러운둣 누워있는 모습이 넉넉하고 여유작작해 보이는가 하면 또 어떤 락엽은 그냥 아무런 감정도 없이 무덤덤해보이기도 하였다. 그렇게 떨어져있는 락엽들의 모습은 나에게 자신들의 걸어온 삶의 이야기를 들려주기라도 하는듯 나를 빠금히 올려다보고있었다. 비록 세 계절을 거쳐 온 저들의 짧은 삶이지만 누구에겐가 꼭 들려주고싶은 하많은 이야기라도 있을가? 순간 애틋한 생각에 마음이 저려온다.

봄에 움이 터서 여름에 무성하게 자라 대지에 생기와 활기를 부여해주고 가을이면 울굿불굿한 색으로 자신의 몸을 한껏 불태워 마지막 아름다움을 발하는 락엽, 그리고 버릴것은 버릴줄 알고 버려야 할 때는 대담히 버릴줄 아는 락엽의 마음이 참 부럽기만 하다. 일개 하찮은 식물도 자신의 귀속이 흙으로 돌아가는것을 알건만 나는 무엇때문에 아직도 내가 움켜쥐고있는것을 버리지 못할가? 지금 가진것에 만족을 모르고 아직도 남들보다 더 잘살고싶은 끝없는 욕망, 한번쯤은 문학상이라도 타보고싶은 굴뚝같은 욕심, 직장에서는 당연히 내가 제일 잘해야 하고 영예도 당연히 내차지여야 한다는 과분한 생각을 어찌하여 버리지 못하는것일가. 락엽이 돌아가는 곳도 흙이요, 사람이 돌아가는 곳도 결국 흙이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것이 인생이거늘 이제부터는 락엽의 고매한 마음을 닮아버리는 련습도 해야 하지 않을가? 그래서 이 시각 락엽으로 지는 자연의 섭리앞에서 내 마음이 한없이 숙연해지는것일가?

이때 하늘하늘, 팽그르르, 사뿐사뿐 땅에 떨어지는 락엽을 밟으며 내딛는 발걸음속에 내 삶의 시계소리가 들려오는것 같았다. 내가 발걸음을 빨리 하거나 늦춰보아도 시계소리는 일정한 간격으로 재깍거린다. 그 시계소리는 모든 욕망과 욕심을 버리고 가뿐하게 마음을 비우라고 나를 재촉하는것 같았다. 그래 이제부터는 마음을 느긋이 가지고 비우고 버리는 련습을 해야겠다. 인생이란 원래부터 채우고 비우면서 사는것이 아니더냐? 젊어서는 랭장고에 음식물을 채워가듯 지식을 채우고 꿈을 채우고 지갑을 채우고 그렇게 하나하나 채워가고 중년에는 하나하나 비우고 버리면서 사는것이다. 버릴것이 많다는 자체는 인생을 열심히 살아온 표징이다. 버릴것이 많다는것은 사람을 슬프게 하는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행복하게 한다. 하기에 살면서 때가 되면 대담하게 버리는 락엽의 고매한 자세처럼 아름답게 물러서는 겸허하고 의젓한 삶의 자세를 가지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가? 그래서 이 시각 떨어지는 락엽을 보면서 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것 같았고 정화되여가는것 같았다. 새삼스레 오늘 깊어가는 가을과 함께 한잎두잎 떨어지는 락엽을 보면서 모든 욕심과 욕망을 버리고 기꺼이 지갑을 비워가며 여유있게 즐거운 마음으로 살아가라는 또 하나의 평범한 삶의 리치를 깨달았다.

다시 한번 사락사락 흥겨운 마음으로 락엽을 밟아본다. 그러노라니 이 가을 내 사색도 가을 따라 깊어가면서 나 자신도 어느덧 아름다운 락엽에 묻혀 가을의 일부가 되여버린것 같은 착각에 무한한 공간속으로 흘러드는것 같았다.

나에게 또 하나의 삶의 리치를 깨우쳐준 이 가을 깊어가는 가을과 함께 내 사색도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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