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라이프

강물과의 대화

□ 박송천

  • 2015-12-10 13:36:59
퇴근이 앞당겨지는 날이면 나는 부르하통하강변의 풍경을 읽으며 집으로 향한다. 흐르는 물소리를 향수하며 옮기는 걸음걸음마다 많은 이야기들이 머리를 쳐든다. 가끔 푸른 물우에 띄워보내고싶은 부질없는 미련들이 꿈틀거릴 때면 나는 강물의 흐름을 배운다.

물은 뒤돌아보지 않는다. 주어진 길을 따라 쉼없이 흐르는 물의 섭리는 결코 무정한것이 아니다. 기억에 얽매여 흘러버린 시간을 돌아보면 아쉬움끝에 달랑 맺혀있는 아름다움은 그저 추억이고 미련일뿐이다. 부질없는 지난 날을 붙들고 추억의 골짜기를 헤매는 시간 대신 흐름을 멈추지 말고 더 먼 앞길의 풍경을 기대하는것만큼 설레이는 감동이 또 어디 있겠는가?

물처럼 흐르는것이 법이니 때론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다보면 고민도 풀릴것이다. 그러니 지나버린것을 다시 소유하려는 어리석음보다 현재 소유하는것에 감사하면 스쳐지나는 모든 인연은 자연히 자신의것이 되는 법이다.

대학교문을 금방 나서면서 얼기설기 뭉쳐진 고민덩어리를 붙들고 엉켜진 실타래를 풀듯이 매듭지고 모순되는 방황의 날들을 새김질하는 시간이 힘들고 괴로웠다. 그리고 그때 선택에 가끔 후회하며 더 무거운 고민을 빚고있었다. 하지만 결국 돌이켜보면 갈 길을 허덕이며 몸부림에만 지쳤을뿐 스스로 할수있는것은 주어진 길을 감사함으로 걸어가는것뿐이였다. 물 흐르듯이 자신의 길을 운명으로 간직하고 감사하게 걸어갈 때 내 발길이 닿는 곳마다 고운 흔적들로 래일을 장식할수 있는것이다. 오늘의 결과는 과거의 내가 스스로 결정한것이기에 돌아갈수 없는 자신의 지난날을 돌아본들 결과는 바뀌지 않는다. 그저 현재에 충실하다보면 래일의 자신이 바뀔수 있는것이다. 하기에 미련에 얽매이기보다 주어진 길을 물처럼 열심히 흘러가는것이 어쩌면 삶의 가장 눈부신 지혜인것이다.

매번 부르하통하강변을 지날 때면 유유히 흐르는 물소리와 아름다운 대화를 나눠본다. 하지만 어제 내 마음을 들은 물과 오늘 내 고백을 담은 물은 같은 물이 아니다. 어제 내 마음의 소리를 들은 물은 이미 멀리로 떠났고 그 뒤를 이어 또 다른 물이 내 고백을 들어준다.

강물과 말을 건내면 강물은 늘 똑 같은 표정으로 침묵을 지킨다. 침묵으로 대답하는 물의 언어는 흐름이다. 나는 아직도 자신의 지난 날들을 흘러보내지 못하고 그대로 세월의 보자기에 꽁꽁 싸서 가슴에 안고있는 어리석은 놈이다. 때문에 작은것 하나에도 가슴 시려하고 보잘것없는 사연에도 울컥한다. 잠재의식의 반란이라고 할가! 잊었다고 생각한 일이지만 그와 비슷한 일을 겪으면 오랜 시간전의 이야기들이 막 줄을 서서 흘러나와 한데 엉켜서 매듭진 고민덩어리가 되여 가슴앓이를 한다. 흘러간 날들의 흘려보내지 못한 이야기들은 아직도 꿈틀거리지만 이제는 물의 지혜를 배워야겠다. 강물과 마주 앉아 흐름의 법칙을 익히다보면 가슴속 꾸러미들이 하나둘씩 버려지겠지…

가끔 강물과 대화하는 여유가 필요한 요즘의 삶이다. 빨라진 삶의 절주속에 적응하다보면 메마른 감정에 심한 갈증을 느끼고 사막의 오아시스를 찾듯 허덕이는 일상의 반복속에서 제대로 유유히 흘러보내지 못하는 일들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지치고 힘들 때 가끔 흐르는 강물과 대화를 하다보면 출렁이는 흐름소리가 깨우쳐주는 삶의 철학이 빠끔히 머리를 쳐든다. 자연은 스스로 아름다운 리유가 바로 흐름의 지혜를 알기때문이다. 락엽이 휘날리는 가을이 더는 시린 계절이 아니다. 소유했던 지난 계절의 모든것을 아낌없이 흘러보낼 때 비로소 홀가분한 동면의 깊은 꿈속에 잠겨 이듬해 봄날의 소유를 소망하는것이다. 그 흐름의 법을 따라 자신을 비우는 선택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벌써 가을도 다 지나고 겨울이 한창이다. 흰눈이 내리고 강물이 얼었다. 꽁꽁 얼었어도 흐름을 포기하지 않고 얼음밑으로 쉼없이 흘러가는 물은 이 순간도 삶의 지혜를 부드러운 여울소리에 담아 세상을 울린다.

오늘도 여느때보다 앞당겨진 퇴근이다. 가슴으로 읽는 부르하통하의 겨울풍경이 시리지 않다. 심장을 노크하는 강물의 흐름소리도 더는 차갑지 않다. 마냥 따뜻하고 친절한 흐름의 법칙을 연주하는 정겨운 가락으로 먼 래일을 울린다.

가던 걸음 멈추고 느긋이 흐르는 강물에 말은 던져본다.

“래일도 안녕하시겠지요?”

이 기사를 공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