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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풍경

□ 김채옥

  • 2015-12-17 15:18:38
겨울이 깊어가며 하얀 눈이 내리려 한다.

올해 들어 벌써 다섯손가락들을 꼽고도 모자랄만큼의 눈이 내렸다. 그래도 하늘은 또다시 뿌연 얼굴을 잔뜩 찡그린채 하얀 깃털 같은 눈들을 쏟을 태세를 취하고있다. 해마다 겨울이면 몇차례씩 내렸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눈, 그래도 문득문득 찾아오는 이 불청객이 있기에 우리가 살고있는 공간이 한결 깨끗하고 맑아진 기분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하얗게 내리는 눈과 눈 내린 뒤의 겨울풍경을 더없이 좋아한다.

오늘도 눈이 내리려고 한다. 하얀 눈이 무겁게 무겁게…

눈이 내리기전 깊게 드리운 하늘은 침묵 그 자체이다. 고요함속에 모든 빛들을 차단한채 회색의 품으로 감싸안고 산통을 감내하며 점점 조여오는 아픔과 고독을 삼키다가 드디여 순백의 령혼들을 쏟아낸다. 무겁게 내리드리운 회색의 침묵이 뼈에 사무치는 고통을 찢고 나올 때쯤 한껏 잉태되였던 하얀 넋들이 보송보송한 모습으로 사락사락 가벼운 소리를 내며 대지에 살며시 내려앉아 땅의 소리를 듣는다. 자연과의 교감속에 그처럼 순수하고 그처럼 아름다운 평화가 대지에 깃든다. 모든 아픔과 괴로움을 잊고도 남을만큼의 축복이 대지를 하얗게 감싼다.

하얀 눈이 내린다. 산과 들을 하얗게 덮으며…

하얀 눈이 내릴 때의 대지는 축제의 분위기이다. 무겁게 드리웠던 방금전의 모습과는 달리 너도 나도 눈을 맞으며 걷고 또 걷는다. 하얀 축복을 몸으로 받기라도 하듯이. 하얀 눈은 한해동안 지쳐있던 대지에 살포시 내려서 수고를 달래주고 욕망을 내려놓고 헐겁게 서있는 나무가지에 부드럽게 내려앉아 추위를 막아준다. 그리고 찌든 일상속에서 지친 령혼들을 부드러운 녀인의 품으로 포근히 감싸안고 달래주며 또다시 힘을 내도록 용기를 준다. 회색빛으로 일괄했던 대지는 밤의 장막속에서 하얀 빛에 힘입어 어둠을 조금씩 내몰고 마음을 열고 여유롭게 즐거움을 만끽한다. 가장 원초적인 본능으로 교류를 시작한다. 하얀 눈은 티없이 맑은 눈으로 꽁꽁 얼었던 마음들을 녹여내고 인간이 걸쳤던 거치장스런 가면을 벗기고 자신을 적라라하게 드러내도록 한다. 그러면 자연이 선물한 시리도록 맑은 은백색의 풍경속에 인간은 죄많은 령혼을 다시 돌아보며 자신을 반성한다. 쉼없이 내리는 하얀 눈속에서 세상의 온갖 오물들은 서서히 자신의 모습을 잃어가며 슬며시 더러운 형체를 감추고 저 멀리로 사라지려 한다.

오늘도 하얀 눈이 내린다. 가볍게 가볍게…

하얀 눈은 그 어떤 꾸밈새도없이 걸어온 길을 그대로 보여준다. 삐뚤삐뚤 걸어온 길이든 곧게 걸어온 길이든 하얀 눈밭에 자신이 그은 인생그라프를 려과없이 보여주어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이런 날이면 나도 뽀드득거리는 발자국소리와 함께 하얀 눈을 맞으며 걷기를 즐긴다. 걷다보면 내 발자국이 시작된 저 하얀눈밭 어딘가에 고스란히 남아있을 부모님의 발자취도 느껴지고 내가 걷는 이 길우에 아들애의 자국도 이어지리라는것을 깊이 자각하며 옳바르게 걷는 련습을 한다. 무릎을 치는 눈길에도 넘어지지 않기 위해 마음속으로 몇번이고 다짐해본다. 내가 걷는 길우에 인생련습은 없다는것을 알기에 하얀 눈우에 나름대로의 때묻지 않은 곧은 자국을 찍어가리라 다짐한다. 그러다 보면 선명하던 자국들이 가볍게 내리는 눈의 여유로움속으로 슬며시 자취를 감추고 눈의 세계와 혼연체를 이루며 하얀 세상안으로 사라져간다.

하얀 눈이 내린다. 어제도 오늘도…

하늘과 땅이 맞붙어 하얀 세계를 이루고있는 무색의 세계에서 모든 령혼들이 정화되여 새롭게 태여남을 느끼며 나는 흰눈이 내린다는것에 고마움을 느낀다. 하얀 눈이 있기에 순결이 빛을 잃지 않고 그 혼을 이어갈수 있고 하얀 눈이 있기에 세상의 모든 어지러운것들이 자신을 부끄러워하며 하얀 눈이 있기에 세상의 소외된 아픔들이 치유되고 하얗게 자신을 비워가며 몇번이고 자신을 반성하는것이 아니겠는가?

하얀 눈은 축복으로 다가와 아름다운 소원을 뿌려놓는다. 하얀 마음으로 하얗게 살라는 메세지를 남기고 자연의 순리에 따라 소리없이 땅속으로 스며들어 한점의 여한도 남기지 않는다. 하기에 깃털처럼 가벼운 눈의 존재가 그처럼 의미있게 다가서는것이 아니겠는가? 겨울을 하얀색으로 기억하는것도 하얗게 살고싶은 인간의 소박한 념원은 아닐가?

오늘도 하얀 눈이 내린다.

하얀 눈이 있어서 겨울이 그처럼 삭막하지 않은것처럼 하얀 눈이 있어서 꿈도 있고 희망도 있으며 우리의 미래가 있는것이다. 농부는 하얀 눈을 보며 풍년을 꿈 꿀것이고 아이들은 하얀 눈을 보며 희망을 노래할것이다. 사람들은 하얀 눈을 보며 행복을 꿈 꾸고 저마다 눈처럼 하얗게 마음을 비우고 하얀 눈우에 예쁜 자취를 남기기를 소원하는것이리라. 겨울이 선물한 하얀 눈의 깨끗하고 소박한 모습이 봄을 맞기 위한 자아성찰의 시간이고 고통을 아름다움으로 승화하기 위한 인고의 시간임을 알기에 저마다 하얀 눈을 아름답게 기억하는것이리라. 이제 추운 겨울의 저 끝에 하얀 미소와 함께 약동하는 봄이 도래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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