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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팔꽃 (외 4수)

□ 리기춘

  • 2015-12-17 15:20:19
비좁은 가슴에

연분홍 정열을 안고

작게 지겨운 동작이

단조롭게 재롱부린다

가녀린 숨결을 따라

뇌리에 스며드는

뜨거운 사유가 괴롭다

아련하게 예쁜 소망이

멋없이 흔들리니

손에 잡히는것은 바람 같아

시작과 끝이 맹랑하다

빨간사랑 지칠무렵

황홀한 곤혹속에

고운 입술 깨물고

살풋이 머리 숙인다

나는 오늘 무엇을 했는가

싸리나무 울바자

죽은 생명이 살아 있는듯

촘촘히 뭉친 산의 숨결로

묵묵히 사명을 다 해왔거만

세월의 시달림에 찐이 싹 빠졌다

쪼글쫄글한 마직막 삶이

이젠 당금 쓸어질것 같은데

노란해살 머금은 고추잠자리

묵은 추억을 애써 장식한다

주눅이 든 호박꽃속에

여윈 꿀벌이 흐느끼고

울퉁불퉁한 구석에

늙은 그림자 낮잠을 자고있는데

정오의 해볕이 너무 안쓰러워서

보얀 포대기 하나 만들어

울바자 상처를 덮어준다

된장찌개

흙의 빛갈로

노랗게 영근 향기

보얗게 더운 안개속에

엄마냄새를 빚어냈다

뜨거운 아픔이

곱게 흩어지면서

깊숙히 익어가는

엄마냄새

구수한 옛말이

새콤한 사랑을 곁들어

보글보글 속삭이면

더욱 그윽히 부푸는

뜨근뜨근한 엄마냄새에

훈훈해진 마음이

건강하게 즐거워진다

풀 꽃

해빛과 구름이 알고

바람과 이슬이 알고

그리고 또 누가 알가

낮은 곳의 낮은 자리에

고요히 익은 향기

파랗게 예쁘게

흙속에 스며드는

작은 순수

느티나무

파란 진실을 지켜가며

속세의 냄새를 세척하고

부연 안개속에 엉킨 죄업이

하나 하나의 정(情)을 찢어

예쁜 아픔을 장식한다

님이 뿌린 돌맹이에 얻어맞고

동네집 갈구리에 살을 찢기고

입 벌린 늑대에 혼을 날리고

멀쩡하게 살아갈수 없는

크고 작은 곤혹이 끈질기게

찬란한 깨달음을 선물한다

안으로 아롱진 예쁨과

바람에 갇힌 외로움을

오염없는 소망속에 묻고

흥분 없는 감탄부호에 기대여

주어진 운명을 흠상하며

그는 오늘도 조용히 숨쉬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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