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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향 (외 3수)

□ 윤청남

  • 2015-12-24 14:57:25

몸에 병이 깊이 든 말이

봄 강변을 누비고있었다

자갈이나 방울 같은

굴레에 붙었던 사치품들을 내려놓고

어려서는 내놓은 말이라 타보기도 했었다

지금이라면 아무것도 아닌 페염 같은 병

그때는 그랬다 달리다가도 서면

그런데 그 여윈 말이 어느 날

물소리 시린 물가에서 새끼를 낳고

그 새끼가 겨우 풀을 엿볼가 할 때

지나는 하루 밤 잔잔한 단비에 막을 내린다

무더운 여름 먼발치에 서면

며칠 사이 털이 거친 가죽밑으로

허옇게 솟는 갈비뼈

저걸 거려다 팔면 돈이 되지 싶은데

그것마저 어느 사이 사라지고

노을 밭에 발목이 흰 새끼말이

무리를 따라가다가도 돌아와

하늘 보다가 한번 울고

풀 뜯다가 한번 울고.

겨울 곰

기러기 푸닥거리는 소리에

돌아누우니

울안에 내린

송이 큰 눈

손금우에 수북하다

발의 슬픔을

발로 넘길수 없을 때

써억썩 핥고나면

털이 돋는 발바닥

부른다고

한밤

앞가슴 들썩이며

달려올 가시내도 아니지만

머리결 잠간

바람에 스치우면

여린

오월의 몸에 여름 같은

장마비 뒤 고운 하늘.

새집들이

산이 거울 모서리에

얼굴을 들이민다

수풀과 하늘이 엉킨 그곳에

기러기 행렬

손등에서 손바닥으로 끼룩끼룩

넘는줄 알았더니

내리막을 올라오는 여윈 소잔등에

잎이 두터운 푸른 꼴단

흰 벽이 주는 슬금한 충동은

그때나 지금이나

노을 보다 짙다

환경만 갈아도 풍류가 된다더니

뒤태가 오늘따라 유난이 고운

여보

달이 이 낮에 중천에 걸린다

휘여있는 대나무 외나무다리 저쪽

아직 밤은 장대같이 머언데

안으로 슬며시 열리는 창

두번 없던 느낌이다.

말 똥

시월 말쯤 하면 길에 널리기 사작한것들이

이듬해 청명이 지나서야

녹았다 얼었다를 반복한다

어린 나이에도 말똥에 서리가 하얗게 낄 때

겨울은 이렇게 물러서나 싶었다

어른들은 (개똥은 약 않돼) 하던 말투로

(말똥이 뭐 걸금 되나) 하며 밭에다 차였고

아이들은 발을 신 뒤축에 쿡쿡 박고는

소리가 씽 나게 찼다

그렇게 말똥은 이리 저리 길에서 사라지고

논을 가는 호리 밥에 뭇이지 않은것들은 또

이듬해 들어온 논물에 둥둥 떠서

도랑으로 나간다

그렇게 와서 반백을 넘기고나니

손금에도 운이란것이 별랗게 있었구나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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