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병이 깊이 든 말이
봄 강변을 누비고있었다
자갈이나 방울 같은
굴레에 붙었던 사치품들을 내려놓고
어려서는 내놓은 말이라 타보기도 했었다
지금이라면 아무것도 아닌 페염 같은 병
그때는 그랬다 달리다가도 서면
그런데 그 여윈 말이 어느 날
물소리 시린 물가에서 새끼를 낳고
그 새끼가 겨우 풀을 엿볼가 할 때
지나는 하루 밤 잔잔한 단비에 막을 내린다
무더운 여름 먼발치에 서면
며칠 사이 털이 거친 가죽밑으로
허옇게 솟는 갈비뼈
저걸 거려다 팔면 돈이 되지 싶은데
그것마저 어느 사이 사라지고
노을 밭에 발목이 흰 새끼말이
무리를 따라가다가도 돌아와
하늘 보다가 한번 울고
풀 뜯다가 한번 울고.
겨울 곰
기러기 푸닥거리는 소리에
돌아누우니
울안에 내린
송이 큰 눈
손금우에 수북하다
발의 슬픔을
발로 넘길수 없을 때
써억썩 핥고나면
털이 돋는 발바닥
부른다고
한밤
앞가슴 들썩이며
달려올 가시내도 아니지만
머리결 잠간
바람에 스치우면
여린
오월의 몸에 여름 같은
장마비 뒤 고운 하늘.
새집들이
산이 거울 모서리에
얼굴을 들이민다
수풀과 하늘이 엉킨 그곳에
기러기 행렬
손등에서 손바닥으로 끼룩끼룩
넘는줄 알았더니
내리막을 올라오는 여윈 소잔등에
잎이 두터운 푸른 꼴단
흰 벽이 주는 슬금한 충동은
그때나 지금이나
노을 보다 짙다
환경만 갈아도 풍류가 된다더니
뒤태가 오늘따라 유난이 고운
여보
달이 이 낮에 중천에 걸린다
휘여있는 대나무 외나무다리 저쪽
아직 밤은 장대같이 머언데
안으로 슬며시 열리는 창
두번 없던 느낌이다.
말 똥
시월 말쯤 하면 길에 널리기 사작한것들이
이듬해 청명이 지나서야
녹았다 얼었다를 반복한다
어린 나이에도 말똥에 서리가 하얗게 낄 때
겨울은 이렇게 물러서나 싶었다
어른들은 (개똥은 약 않돼) 하던 말투로
(말똥이 뭐 걸금 되나) 하며 밭에다 차였고
아이들은 발을 신 뒤축에 쿡쿡 박고는
소리가 씽 나게 찼다
그렇게 말똥은 이리 저리 길에서 사라지고
논을 가는 호리 밥에 뭇이지 않은것들은 또
이듬해 들어온 논물에 둥둥 떠서
도랑으로 나간다
그렇게 와서 반백을 넘기고나니
손금에도 운이란것이 별랗게 있었구나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