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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 그 얼큰한 이름

□ 오경희

  • 2015-12-24 15:00:25

내 서른과 마흔의 나날들은 모두 김치에 담겨져있다. 그래서 “김치”라는 이름만 들어도 얼큰한 감동의 파장이 온몸으로 퍼져나감을 어쩔수 없다. 나의 삶으로 되돌아갈순 없을가. 여기저기 주방에 널려있는 김치소래들을 예술처럼 흔상하던 그 시절로.

새벽이면 일어나 먼저 통배추잎을 들추어 소금을 뿌려가며 절궈놓고 마늘, 생강을 다져 양념을 만들어 김치를 버무려가지고 시장으로 나가던 때가 있었다. 김치로 젊음을 버무린 내 랑만과 꿈의 시간들, 남편의 사랑으로 간을 맞추고 정을 버무리면서 아들, 딸이 인재로 커주기를 바라던 지난 18년의 “김치인생”은 내 생에서 가장 값지고 소중한 순간들이였다.

옹근 김치로 삶을 다듬고 씻고 썰고 절이고 치대고 색칠하며 버무렸던 젊음은 빨간 김치물로 잘박스러웠다. 그래서 곰팡이 한점 피지 않은 아삭한 총각김치의 상큼함처럼 향긋하고도 화끈한, 김치보다 더 붉은 열정의 삶을 살았던것 같다. 온갖 양념들이 하나로 버무려져 김치가 되는것처럼 나 또한 온 마음과 힘을 오로지 "김치"에 몰부었다. 제 속의 영양분을 김치에 넣어주던 욕심 없던 양념처럼 나 역시 내 한몸의 영양분을 "김치"에 쏟아붓던 나날들이였다.

김치를 담글 채소들을 온 방에 널어놓고도 무엇이 좋다고 나는 남편이 돌아오는 발자국소리가 나기 바쁘게 달려가 문을 열어주며 함박 웃음으로 반기였는지. 배추김치를 버무리며 휘여져 감기는 김치잎 서정에 또 얼마나 가슴이 뛰였던가!

한번은 총각무우를 씻던 남편이 속잎사귀 두잎을 파랗게 세운 총각무우 하나 쳐들고 보일락말락한 웃음을 머금으며 나보고 "엊저녁엔 왜 잡아당겼지?" 하고 꼬리 대가리 없는 물음을 물었다. 하지만 나는 그 뜻을 알았다. “저녁 먹은후 총각무우를 석단 다듬다가 졸음이 와서 당신곁에 누웠는데 얼마나 지났을가 한밤중에 ‘아가’ 하는 소리에 손을 떼였지요. 내가 꿈에 총각무우 겉잎을 떼여 던진다는게 그만. 미안해요." 하하하, 호호호… 그날은 빨갛게 익어가는 김치처럼 고운 웃음이 오래도록 방안에 머물었다.

빨간 김치의 기운이 사방에 가득찬 그 열정의 집- "공신단칸방"에는 아직도 사랑얘기, 생활얘기 조곤조곤 피여오르고 있을가. 비록 날마다 김치를 만드느라 둘 다 허리 펼새마저도 없었지만 부부가 함께라서 재미있었다. "김치의 간을 잘 맞추는 사람은 삶의 간도 잘 맞춘다"며 짜른 바지 춰올려주는 남편의 롱담에 내가 버무리는 김치의 빨간 빛갈은 어느새 삶의 빛갈로 서서히 물들어갔다. 인생도 김치처럼 꽛꽛한것을 죽이고 나긋해질 때 더욱 맛갈스러워지는건 아닐가? 남들처럼 좋은 직장 한번 출근해보지도 못했고 주말과 같은 휴식이나 명절마저도 없는 "김치장사"를 해왔지만 나는 김치, 그 얼큰한 이름 하나에 너무 행복했다. 사회, 단체, 가정의 모서리에 가끔 부딛칠 때면 김치를 버무릴 때의 평온한 기분을 떠올리며 묵살해버리군 했다.

18년을 양념을 조절해 김치를 만들었듯이 앞으로 생활에서 욕망과 욕심도 조절하여 내 인생의 한포기 김치에도 믿고 리해하고 포용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양념으로 만들어 곱게 넣으리라. 잘 절여진 배추에 양념을 속속들이 집어넣다가도 겉줄거리 배추잎이 우로 치달아오르면서 손등에 덮힐 때면 아아, 무우쪼각도 품어보고싶어하는구나 하면서 나는 제꺽 무우를 썩둑썩둑 잘라서 배추잎에 안겨주고 빨간 양념을 듬뿍 얹어주면 무우와 양념을 차분히 품어안은 배추잎은 안은것들이 흩어질세라 조용하다. 18년 세월 동안, 나의 삶에 김치물 흔적은 짙게 남았지만 그것은 나에게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버무림에는 녹여서, 품어서 하나가 되는 온정이 있다. 김치가 그것을 말해준다. 김치를 버무려 독에 넣어 숙성시킬 때면 그 기다림속에서 나는 늘 한수의 서정시를 건져내군 했다. “따가운 양념”들이 간간한 소금이 되여 내 삶의 “김치”맛을 돋구어주었듯이, 그 얼큰한 이름 덕분에 나는 지금까지 메마르지 않는 감성을 가지고 살아가고있다.

그래서 김치와 함께 했던 그 시간들이 더욱 그립다. 삶이 김치를 닮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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