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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따마, 길들여지다

□ 채복숙

  • 2016-01-07 15:46:28
내몽골에 려행을 다녀온적 있다. 시내에서 차를 타고 초원으로 향하는 내 마음은 초원의 하늘보다 더 푸르고 초원의 구름보다 더 가벼웠다. 야트막한 둔덕으로 양떼가 물 흐르듯 서서히 흘렀다. 그것은 그냥 그림이였다. 드디여 새하얀 몽골포들이 웅긋쭝긋 모여서있는 곳에 도착했다. 처음 보는 몽골포들이 희한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내 시선과 내 마음을 홀딱 빼앗아간건 말이였다. 과거 도농 접합부에서 가끔 보아왔던 로역을 하는 말이 아닌, 초원을 달리는 말이였다.

나는 무리에 조금은 떨어져있는 절따마에게로 살금살금 다가갔다. 그리고 눈을 맞췄다. 검고 큰 눈망울이 순해보였다. 슬그머니 손을 내밀어 보았다. 덥석 물기라도 할가봐 겁이 나 나는 손을 그대로 움츠리고말았지만 말은 그냥 쳐다볼뿐 내 손을 덥석하지는 않았다. 조금 담이 커졌다. 그래서 이번에는 말의 이마를 살짝 다쳐보았다. 절따마는 내 프로포즈를 알아챘는지 애잔한 눈길로 쳐다보는것이였다.

“아, 전생에 나와 인연이라도 있었겠구나.”

용기가 생겼다. 그래서 다시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말의 이마를 살그머니 만져보았다. 고개를 주억거리면서도 별로 거부하지는 않는것이였다. 내가 말과 거리를 좁히려고 노력하는 사이, 똘똘한 친구는 벌써 말의 주인과 흥정을 마쳤다. 싸지 않은 가격이였지만 내몽골에 왔으니 말을 타지 않을수는 없었다. 말의 주인은 몽골족이 아닌 한족이였다. 장사를 하는건 대부분 한족이라 했다. 그는 말에게 조금도 련민을 보이지 않고 채찍을 휘둘렀다. 그러는 그가 어쩐지 밉상스러웠다. 장사군답게 재빨리 내 눈치를 알아채고 그는 말은 되게 굴어야 길들일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타는 사람을 깔본다고 했다.

그래서일가? 내가 탄 절따마는 나를 깔보기라도 하듯이 다른 말보다 늑장을 부렸다. 둔덕을 가로 질러, 작은 강을 건너 원래 자리로 되돌아올 때까지 그는 항상 다른 말보다 한걸음 처져서 달렸다. 그리고 그때마다 주인이 채찍을 안겼다. 그래도 늘쩡늘쩡한 걸음새에는 별로 변화가 없었다.

“진한 쪽빛하늘에 구름은 살같이 흐르는데 바람은 귀전에서 흐느끼고 말에는 날개가 돋쳤네.”

이건 내 상상속의 말타기이고 현실속의 말타기는 주인에게 수시로 한대씩 맞으면서도 늑장을 부리는 말과 그우에 앉아 털렁거리며 말타기라고 체험을 해보려는 도시인의 모습뿐이였다. 어쩔수 없었다. 그래도 비싼 가격이라 말타기체험은 한번으로 마치고 초원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 진짜 말타기를 배우고 말을 길들이며 격에 맞게 달려봤으면 하는 생각으로 허전한 마음을 달랬다. 떠나면서 절따마를 되돌아보았다. 나에게 길들여지지 않은 녀석이지만 여전히 그 애잔한 눈길로 나를 바라보고있었다.

그러던 올 가을 나에게도 “절따마”가 생겼다. 도요타매장에서 “한필” 끌어왔던것이다. 운전에 왕초보인지라 곁사람에게 부탁을 해서야 겨우 끌어올수가 있었다. 그가 내 “절따마”를 슬슬 쉽게 부리는것을 보며 부러운 마음에 질투심도 없지 않았다. “내건데, 멋있게 질주를 할거야!” 그런 생각을 하며 마음에는 벌써 아득한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내 모습, 바람따라 살같이 달리는 내 “절따마”가 한장의 그림으로 되여 들어와 앉았다. 그리고 나도 이번만은 제대로 “절따마”를 길들여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녀석이 나를 깔보면 큰일이니까.

하지만 녀석은 처음부터 내 부림을 당하려 들지 않았다. 길들여지려 하지 않았다. 그날도 아침일찍 나왔는데 핸드브레이크가 얼마나 무거운지 도무지 내려앉힐수가 없었다. 이른아침이였지만 체면을 무릅쓰고 고수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더니 더 힘을 주어 내리라고 했다. 다음날 사람들을 만나 핸드브레이크를 내리지 못해 쩔쩔 맸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저마다 말 그대로 앙천대소를 하는것이였다. 핸드브레이크도 내리지 못하면서 차를 모느냐고 했다. 얼굴이 뜨거워났다.

사실, 그때 주인을 잘못 만난 내 “절따마”는 벌써 만신창이가 되여버렸고 나는 내가 만들어낸 각종 사고에 대처해야 하는 피곤한 처지에 빠졌다.

길들이고 길들여지기, 그것은 마음에 길을 내여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이끌어 들여오는 일이 아닐가싶다. 일방 통행이 아닌, 두 마음에 길을 내는 일인것 같다. 피와 살이 없는 기계가 내 마음에 생생하게 들어와 앉아 어떻게 하면 브레크를 더 유연하게 밟을수 있을가, 어떻게 하면 더 유연하게 빠져나갈수 있을가에 골몰하던무렵부터였을가? 아니면 내 “절따마”에게 생채기를 내지 않고 내가 멋을 부리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을무렵부터일가? “절따마”가 조금씩 내게 길들여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 혹은 내가 “절따마”에 조금씩 길들여지고있는것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렇게 “절따마”가 나에게 조금 길들어졌을무렵, 아니, 내가 절따마에게 조금 길들여졌을무렵, 똘똘한 그 친구에게서 련락이 왔다. 다음에 오면은 내 “절따마”를 타고다녀야겠으니 련습을 잘해두라고 한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으니 너무 걱정할것도 없다며 시간이 가면 누구나 잘할거라고 말한다. 그 바람에 괜히 꽤 오래동안 련락을 하지 않았던 그녀가 보고싶어졌다. 그녀가 곁에 있었더라면 내 “말타기”에 훈수도 많이 해줬을테고 나 역시 그런 그녀때문에 피곤함을 많이 호소했을텐데. 항상 어리버리하고 겁 많으며 내성적인 나와는 반대로 그녀는 똘똘하고 대담하고 활달하다. 체격마저 커서 내가 옆에 서면 스스로 키 작은걸 실감하기 쉬울 그런 류형이다. 친구는 지금 래년에 대학입시를 보는 딸애를 위해 잠시 이곳 일에 쉼표를 찍고 고향에 가있다.

어쩌면 우리 사이도 저 “절따마”와 나 사이처럼 서로 길들여지지 않았나 생각된다. 상반되는 타입의 두 사람이 절친이 되기까지 우리는 어떻게 서로에게 길들여졌던가? 아마 서로가 상대를 위하는 마음을 가졌을 때 우리의 마음에도 서로에게로 통하는 길이 생기지 않았을가? 마음의 길이 통한다면, 내가 그녀를 생각하고있는 이 시각 그녀도 내 생각을 하고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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