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전, 종양병원에서 가슴을 졸이며 기다리던 남편의 검진결과를 보고 시한부 생명이라는 의사의 말에 내 삶의 전부가 뿌리채 흔들리였다. 그때 나는 내가 얼마나 약한 생명을 갖고 이 세상을 향해 허세를 부리며 사는가를 뼈 아프게 느꼈다. 남편이 이 세상 내곁에서 사라진다는 슬픔에 나 자신마저 상실해가며 허탈해지군 했다
늦은 봄볕이 화사하게 병원의 정원을 골고루 비추며 계절의 무상함을 알리였으나 무너져내린 내 가슴은 좀처럼 추스릴수 없었다. 병원 침대에서 점적주사를 달고 덤덤히 창밖을 내다보던 남편이 문득 들뜬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여보, 이리 와서 저것 보오. 빨강나비…”
병원 마당의 화단에서 빨간 나비가 날아예고있었다. 빨간 나비를 반색하며 보는 남편을 보고 나는 피뜩 떠오르는 생각에 남편과 말했다
“여름철이 다 돼가는데 오늘 시장에 나가 옷 한벌 삽시다”
몸도 마음도 지쳤을 남편에게 침울한 병원을 벗어나 기분이라도 바꿀수 있게 하고싶었다. 남편과 나는 옷매대를 돌기 시작했다. 그러나 내가 마음에 드는 옷을 골라 쥘 때마다 남편은 다 퇴자를 놓았다. 아예 사지 말라는것이였다 빈손으로 막 돌아서는데 마지막 매대에서 빨간 티셔츠를 바라보며 남편이 서있었다.
“저걸 삽시다. 저 빨간 티셔츠…”
선홍색의 빨간 티셔츠는 까만 칼라에 빨간, 파란선으로 칼라끝 선을 짜서 둘렀고 짧은소매끝도 까만, 빨간, 파란선으로 마무리지었다. 디자인도 좋았지만 나는 웬지 병원 마당의 빨간 나비를 반색하며 바라보던 남편이 이 선홍색티셔츠를 마음에 들어할것만 같았다.
“이 옷이 마음에 들어요? 당신 입을거지요?”
“허, 이 나이에 빨간옷 한번 입어본다?…”
새옷을 사겠다면 질색하던 남편은 웬일인지 비싼 값을 치르는 나를 나무라지 않았다.
남편의 두번째 수술이 시작되던 날 아침, 나는 그 빨간 티셔츠를 내놓았다. 수술하는 날 남편에게 흰 병원옷을 입히기 싫었던것이다. 남편도 말없이 그 빨간 티셔츠로 갈아입고 수술실로 향했다. 수술실 문이 닫기는 순간 남편이 입은 빨간 티셔츠는 생명의 빛갈로 내 가슴을 쳤다.
“하늘 같은 당신, 살아만 계셔주세요!!!”
수술이 끝나고 나온 남편은 그날도, 그 이튿날도 빨간 티셔츠만 입었다. 출원하기 전날 남편은 씻어놓은 빨간 티셔츠가 마르기를 기다려 입고는 나하고 산책을 나가자고 했다. 빨간 저녁노을이 물든 산책길에서 나는 나보다 조금 앞서가는 남편의 듬직한 뒤모습을 바라보며 자꾸만 눈물이 앞섰다.
“이제 한 두어달 시간 밖에 없다니… 이 산책 길을 몇번이나 함께 걸어볼수 있을가?!!!”
함께 따라나서 공원까지 가자 남편은 함께 사진을 찍자고 했다. 남편은 빨간 티셔츠차림으로 나의 어깨를 감싸며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자기 독사진도 찍었다. 아마도 유상으로 남기려는듯 했다.
병이 중해갈수록 남편은 유독 빨간색에 집착했다. 큰 아들과 함께 고른 새 모터찌클도 붉은색을 띄였고 쓰고 다닐 헬멧도 붉은색으로 샀다. 두번째 수술이 끝나 집에 돌아와서 몸이 좀 회복되자 하루는 어디로 간다온다 말 한마디 없이 나가더니 점심때가 다 되여도, 약 드실 시간이 다 되여도 돌아오지 않았다. 모터찌클도 보이지 않았다. 안달아난 나는 옹근 오전 전화통에 붙어있었다. 하지만 핸드폰도 꺼져있었다. 혹시 어디에 가서 방사선 치료를 받은 륵골뼈가 맞히지나 않을가 싶어 나는 속에 시커만 재가 찼다.
12시가 넘어서야 남편은 땀을 철철 흘리며 집에 들어섰다. 안절부절 못하고 서성대던 나는 남편의 발걸음소리에 출입문을 열며 저도 모르게 나무랐다.
“어디로 가시면 간다구 말이나 하구 가시…”
말하다말고 나는 그만 입을 하 벌린채 아무 말도 못했다. 남편은 빨간 하늘나리를 한아름 안고 화난 나를 향해 씩하니 웃으며 서있었다. 얼굴 여기저기에 빨간 꽃가루가 땀에 절어 붙어있었다.
“이 꽃 빛갈 참 곱지? 빛갈이 너무 이뻐서 오래 살라구 뿌리채 파왔소!”
남편은 시들기전에 나더러 빨리 화분에 심으라고 독촉했다
“참, 잘하셨어요. 그럴게요. 빛갈이 참 이뻐요…”
빨간 티셔츠 차림으로 빨간 하늘나리를 한아름 안고 서있는 남편은 분명 생명의 불꽃으로 타오르는 모닥불처럼 내 눈에 안겨왔다. 애들처럼 환히 웃으며 한아름 안겨주는 빨간 하늘나리를 받으며 나는 가슴이 저려왔다. 이맘때 산에 가면 노란 나리, 점박이 장나리, 연분홍 붓꽃, 오렌지색망치꽃, 잉크빛란초 이름모를 야생꽃들이 그토록 많은데 하필이면 이 빨간꽃이 남편의 마음에 꼭 들었을가?! 시한부 생명의 선고를 받은 남편에게 이 꽃 빛갈은 무슨 의미일가?! 삶에 대한 욕망일가?! 아니면 세상을 향해 부르짖는 이루지 못한 남편의 소망일가?! 하늘을 향해 한점 부끄러움 없이 피여난다고 이름 지어진 하늘나리, 삶의 정열로 모닥불처럼 피는 꽃, 꽃이 곱다는 말보다 “빛갈이 곱다”는 말에 나는 남편이야말로 평생을 빛갈 곱게 살았다고 느꼈다…
남편은 시한부 생명의 선고를 받고서도 늘 시장에서 남새를 사다가는 애들에게 맛있는 반찬을 손수 만들어주며 인생을 가리켜준 아버지였다. 출국했던 작은 아들애가 아버지 보러 왔다. 아픈 아버지 곁에서 보살피겠다고 고집부리는 아들애를 남편은 아빠를 위한다면 맡은 일을 잘하라며 단호히 재촉하여 떠나보냈다. 떠나는 날 아침 아들애가 좋아하는 풋고추반찬을 손수 만들어주고 택시를 불러왔다. 택시에 오르는 아들을 남편은 꼭 안아주며 세상을 한번 멋지게 살아보라고 웃으며 말했다.
종양병원에 입원하고있을 때 병문안을 온 나의 문학 선배님들과 편집들, 문학 친구들에게 남편은 “내가 떠난 다음에도 선배님들과 편집선생님들, 친구분들께서 우리 영자 문학창작에 많은 도움을 주십시요.” 하고 웃으며 부탁하여 주변 사람들을 가슴 아프게 했다.
남편의 주치의사 의무실에는 늘 시든 모습으로 생기없는 화분 하나가 있었다. 의사한테 불리워 다음 단계의 치료에 대한 의사 건의를 들으러 나와 함께 의무실에 갔던 남편은 주치의사의 치료방안은 듣는둥 마는둥 하고는 그 시들어빠진 화분을 기르겠으니 달라고 하였다. 나는 어처구니 없었다. 생존시간이 한두달도 안 남았다는데 그깟 화분이 뭐길래. 주치의사도 어이없이 바라보다가 어서 가져다 키우라고 하였다. 남편은 그 화분을 가져다 흙을 갈아주고 잎사귀 하나하나 살펴가며 벌레를 잡아주고 하더니 얼마 안가서 화분은 푸른 잎을 새로 펴내며 싱싱하게 살아났다. 살려낸 그 화분을 보며 남편은 애들처럼 좋아했다.
“살아났어, 살려냈다니깐…”
힘든 투병생활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세상을 따뜻하게 보듬으며 모든걸 이겨내는 아버지를 애들은 “대통령”은 뭔가 달라도 한참은 다르다고 했고 모닥불 같은 정열로 삶을 열렬히 사랑한 아버지를 영웅이라며 그래서 아버지의 아들인게 자랑스럽고 행복하다고 했다. 모닥불은 소진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자신의 빛갈을 잃지 않는다.
죽음 앞에서 어쩌면 저렇게 의연하실수 있을가?! 나는 늘 생명의 빛갈은 어떤것일가고 생각하군 한다. 마지막 순간까지 가족을 배려하고 주변 사람들을 배려하며 떠난 남편, 남겨진 낡은 기와집 한채가 전부 유산이지만 우리 가족은 행복했었다. 함께 했던 그 행복에 우리는 지금도 감사해하고 고마와하며 살고있다.
6년전, 남편을 하늘나라로 보내고 나는 모든걸 포기하고싶을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빨간 티셔츠를 입은 남편이 림종시 내 손을 잡고 다독이던 말이 가슴을 울먹이게 한다.
“내가 떠난 다음 굳세게 살다가 와야 하오. 사는 동안 세상 일에 허황한 욕심을 부리지 말고 빛갈 곱게 살다가 오오…”
시장에는 벌써 올해에 류행될 디자인이 멋스럽고 색갈 고운 티셔츠가 많이 선보이고있다. 하지만 나는 늘 빨간색 티셔츠를 찾군 한다. 찾았다고 이제 다시 살것도 아니지만 그 빨간색을 보면 생명의 빛갈로 확인되여 삶과 죽음의 문턱을 정열의 모닥불로 불태웠던 남편의 변함없는 고운 생명의 빛갈속에 늘 내가 흡수되여 살아가고있는 마음에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