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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작정 믿고 응원하기

□ 전옥선

  • 2016-03-10 15:00:36

“무작정 믿고 응원하기”는 시아버님이 손녀딸에 대한 무한한 신념이였습니다. 딸애가 세살때 시어머님이 돌아가시자 우리는 시골에 계시는 시아버님을 집으로 모셔왔습니다. 그때 50대 중반이신 시아버님과 한집에서 살자니 불편함이 이만저만이 아니였습니다. 하지만 딸애를 끔찍이 사랑하는 아버님때문에 제가 오히려 많이 도움을 받으면서 모셔오기 참 잘했다는 생각까지 한 나는 정말 “간사한” 며느리였습니다.

아버님이 오신지 얼마 안되여 우리 부부는 식당을 개업하였습니다. 눈코뜰새없이 식당일에 바삐 돌아치다보니 어느 순간부터 딸애는 시아버님과 거의 같이 있다싶이 했고 저는 한밤중에야 자는 딸애의 머리를 쓰다듬기가 일쑤였습니다. 손녀에 대한 아버님의 사랑은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다고 할가요. 그러나 애를 너무 이뻐하셔서 버릇을 잘못 들일가봐 전전긍긍한 나는 정말 “나쁜” 며느리였습니다.

그래도 아버님은 이 며느리를 위해 잊지 않고 세탁기를 돌려줄만큼 자상한분이셨습니다. 그러기에 남편은 항상 아버님을 믿으라 합니다. 그렇지만 유치원 가기 싫다는 딸애를 데리고 려행가방에 물이며 과자봉지를 넣어가지고 산으로, 들로 가기 좋아하시는 아버님을 제가 어찌 그냥 다 믿겠습니까? 또래인 옆집 영미는 신문을 막 읽는데 저의 딸애는 모음, 자음도 잘 모릅니다. 한번은 애를 데리고 산으로 버섯 뜯으러까지 가셨는데 너무 속상해 애아빠를 뚱겨서 시아버님과 크게 다투게 하였습니다. 그 일이 있은후 미안한 마음에 더이상 남편을 못살게 굴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밝고 씩씩한 딸애와 한달 건너 병원신세를 지는 옆집 영미를 보면서 시아버님께 감사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딸애가 소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시아버님과의 갈등이 깊어졌습니다. 딸애는 반에서 공부성적이 꼴찌였습니다. 너무 속상해 식당을 팽개치고 아이를 공부시키려 해도 그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7살이 된 애를 학교에 붙일 때만 해도 별로 시답지 않아하시더니 공부를 못한다고 제가 닥달까지 하니 어린것이 그만하면 잘한다며 자꾸만 두둔해 나섭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더욱 가관입니다. 남편은 어릴 때 공부를 너무 못해서 아래 학년에 내리앉기까지 했는데도 대학까지 갔으니 손녀는 아무 근심도 말라는것입니다.

남편 역시 기가 막혀 입을 다셨고 저도 안달부절못했습니다. 애만 보면 속상하고 시아버님과는 대화하기도 싫어졌습니다. 1학년 후학기를 다니던 어느날 딸애는 82점짜리 시험지를 집에 갖고 와서 할아버지께 자랑했는데 아버님이 어찌나 칭찬하는지 한밤중에 퇴근한 우리 부부는 멋도 모르고 덩달아 기뻐서 잠 자는 딸애의 이마에 뽀뽀까지 하면서 경축했습니다. 그런데 이튿날 우리 식당으로 딸애의 반주임선생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딸애의 82점짜리 시험지는 반에서 꼴찌라는것입니다. 너무 식당일만 돌보지 말고 아이한테도 신경 좀 써라고 말씀하시는 선생님앞에서 저는 쩔쩔 매기만 하였습니다.

공부에서는 꼴찌인 딸애지만 학교운동회때만은 기고만장하고 씩씩해 반에서는 따놓은 일등입니다. 그리고 운동회 날이면 아버님까지 덩달아 들떠계십니다. 새벽부터 아이의 학교로 가셔서 풍선달기, 북 나르기, 책걸상 정돈하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그런 아버님과 딸애를 보면서 우리 부부 역시 어처구니가 없어 그저 웃기만 했습니다.

딸애는 피아노나 미술 등 애호가 다양합니다. 모든 일에 열성을 보였고 또 잘 배워내기도 했는데 유독 공부성적만은 늘 뒤자리여서 우리 부부는 그것때문에 애를 많이 태웠습니다. 그러나 아버님은 달랐습니다. 손녀가 무얼 해도 잘한다고 칭만했고 주변 사람들에게는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늘어놓기만 했습니다. 그러던 아버님이 딸애가 소학교를 졸업할쯤 간암말기 진단을 받으시고 한 반년간 투병하다가 저세상으로 가셨습니다. 깊은 산골에서 흙과 씨름하다가 일찍 안해를 잃고 아들집에 와서 이 며느리의 눈치를 보며 손녀를 키우시느라 편안한 만년을 보내시지도 못한 아버님을 저는 목놓아 울면서 바랬습니다.

아버님이 저세상으로 간지 얼마 안되여 어느 하루 딸애는 제앞에 《중학생작문선》 한권을 내놓았습니다. 딸애가 쓴 작문 “오뚜기”가 거기에 발표되여있었습니다. 할아버지를 그리며 쓴 글이였는데 마지막 구절은 지금도 머리속에 생생합니다.

“할아버니는 병환에 계시면서도 나한테 오뚜기를 선물하셨다. 오뚜기처럼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란다. 그리고 무작정 나를 믿는다고 하셨다. 할아버지의 믿음을 저버리지 말아야지. 오늘도 나는 할아버지의 깊은 사랑을 한몸 가득 느끼며 책상우에 오뚜기를 툭 건드린다. 그래! 나는 할수 있어! 할아버지 사랑해!”

딸애의 작문을 읽으며 나는 또 한번 오열하였습니다.

그후부터 딸애는 정말 열심히 공부하여 우수한 성적으로 연변일중에 붙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에 와서는 부쩍 멋을 부리며 련애를 하기도 하여 이 엄마의 속을 은근히 태웁니다. 이제 얼마 안 지나 대학시험인데! 이 엄마가 암만 조급해 해도 쓸데없다는걸 압니다. 그래서 시아버님처럼 딸애를 믿기로 하였습니다. 오늘도 학교 가는 딸애뒤에 응원의 메시지 날립니다. 엄마, 아빠의 딸로 태여나 너무 고마와! 그리고 언제나 너를 믿는다!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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