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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 박 일

  • 2016-04-07 15:32:59

간밤 아버지가 하도 슬피 우는 꿈을 꾼탓인지 민우는 아침에 일어난후에도 머리가 천근처럼 무거워나더니 오전 수업시간 내내 흑판에 글을 쓸 때면 손에 쥔 분필이 자꾸만 끊어져나갔다. 그렇게 점심때가 되여 집으로 돌아와 안해가 차려주는 밥상에 마주앉았지만 밥을 둬술 뜨는둥마는둥 하다가 숟가락을 놓았다.

“당신 고민이 많은것 같네요.”

“고민은 무슨, 고민 그런거 없어.”

“자꾸만 오라고 기별이 오는데. 그래도 한번은 가봐야 하는게 도리가 아닐가요.”

“어디로? 하동으로? 나 그런 아버지 없다고 말하지 않던가? 몇번 말해야 당신 알아듣겠어?”

민우는 공연히 안해한테 버럭 성을 낸다.

민우는 모교인 하동현 조선족중학교에서 교편을 잡다가 2년전 안해와 결혼을 하자 안해가 있는 이곳 하서현 조선족중학교로 전근되여왔다.

그런데 며칠전부터 하동에서 여러번 전화가 날아왔다. 간암말기인 아버지가 하동현병원에 입원했다는것이다. 삼촌한테서도 오고 아버지의 고중동창생인 현병원의 최원장한테서도 왔었다. 그래도 민우는 고집스레 도리머리만 저었다.

민우가 중학교에 입학하던 그해 가을, 아버지는 한국으로 떠났다. 아버지는 다달이면 어김없이 돈을 부쳐보냈고 민우는 그런 아버지가 자랑스러웠다. 그런데 1년 반쯤 지나서부터 가끔 저녁이면 어머니가 방에서 흐느껴 우는 소리가 들렸다. 민우 또한 마을아낙네들이 뒤에서 수근거리는 소리도 엿듣게 되였다. 한국에 나간 아버지가 어떤 녀자와 눈이 맞아 진짜 부부처럼 동거를 한다는것이였다.

그러던 어느날 저녁, 어머니가 전화기에 매달린채 한참동안 언성을 높이고있었다.

“전 이미 현법원에다 리혼수속을 제기했어요. 민우 아빤 못 오겠다구요? 안 와도 좋아요. 그렇게 되더라도 6개월후이면 자동리혼으로 처리된대요.”

그날 저녁 어머니는 민우를 앞에 앉혀놓고 말했다.

“민우야, 너의 아빠는 한국에서 다른 녀자하고 산단다. 이젠 이 집엔 우리 둘, 우리 둘밖에 없다. 알겠니?”

설음에 겨워 울먹이는 어머니는 말을 겨우 이어갔다.

“어머니!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어머니곁엔 제가 있지 않아요?”

어머니는 민우를 끌어안으며 엉엉 큰소리로 울었다.

아마 그때부터였다. 아버지는 더이상 돈을 보내오지 않았다. 그렇게 되자 어머니는 홀몸으로 벼농사도 짓고 돼지도 키웠으며 또 봄이면 산에 가서 고사리도 뜯으며 악착같이 일을 하여 민우의 뒤바라지를 해주었다.

민우가 성소재지에 있는 사범대학에 붙은후 얼마 안돼 한마을에 사는 삼촌이 아버지가 보내더라며 돈 만원을 들고 학교로 찾아온적이 있었다. 민우는 물론 그 돈을 받으면 어머니 부담을 덜게 된다는 생각도 했었지만 그 일을 어머니가 아시는 날엔 상심이 얼마나 클가를 생각하니 도저히 받을수가 없었다. 그래서 삼촌한테 “이 돈을 저의 어머니에게 드리세요. 저의 어머니가 받아서 저를 주면 제가 쓰겠어요”라고 말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민우는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그리 크지 않았다. 그러나 어머니가 몸져 누우면서부터는 그 사정이 달라졌다.

지지리도 박복한 어머니는 민우가 대학을 졸업하고 모교에 돌아와 교편을 잡던 그해 겨울부터 앓아서 드러눕게 되였다. 현병원에 가서 검사하니 뇨독증이라는 무서운 진단이 나왔다. 불길한 예감에 마음이 황황해난 민우는 그 길로 어머니를 모시고 성소재지에 있는 큰 병원으로 갔다. 그곳에서도 진단은 꼭 같았다. 그때부터 어머니는 줄곧 현병원에서 치료를 받게 되였다.

병원에서는 어머니의 생명을 연장하려면 매주 2차씩 투석치료를 해야 한다고 했다. 민우는 마을에 있는 벽돌기와집을 팔고 또 은행에서 대부금을 내며 돈을 구해댔다. 그러나 한국에 계시는 아버지한테만은 돈을 보내달라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러나 속으로는 어머니때문에 고생하는 아들을 봐서라도 돈을 보내겠지 하고 제 좋은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남처럼 멀어지는 아버지는 돈을 보내주기는커녕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는것 같았다. 오히려 아버지의 친구인 현병원의 최원장이 나서서 어머니의 치료비를 절반이나 면제해주었다. 그때 민우는 눈물이 나게 고마운 최원장을 아버지라고 부르고싶을 지경이였다. 그럴 때까지도 민우가 절망을 하여 아버지에 대한 불만이 적개심으로 번지지는 않았다.

그런 분노는 어머니가 세상을 뜰 그 림박에 폭발했다. 어머니는 2년간 꼬박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았지만 병은 점점 악화되여 나중에는 생명이 경각에 이르렀다. 그 순간 어머니는 마른 나무가지처럼 앙상하게 여윈 손으로 민우의 손을 꼭 잡고 마지막으로 아버지가 보고싶다고 말하는것이였다. 사실은 지난날 리혼을 한다고 떠들었지만 법원을 찾아가 리혼신청 같은건 아예 한적도 없다는 말씀도 하셨다. 그렇게 헤여져 살아온 세월동안 어머니는 겉으로는 아닌척했지만 마음속으로는 그냥 아버지를 그리며 살아왔던것이다.

민우는 어머니의 마지막소원을 풀어드리려고 벼르고 벼르다가 아버지에게 전화를 했다.

오래간만에 “아버지”라고 부르니 가슴도 떨리고 목소리도 떨렸다. 민우는 어깨를 들먹이며 어머니는 여직껏 리혼수속을 밟지 않았다는 사실이며 마지막으로 한번만 아버지의 얼굴을 보고싶어한다는 말씀까지 그대로 전했다. 그런데 먼곳에서 전파를 타고 들려오는 아버지의 목소리는 차겁기 그지없었다.

“미안하다 민우야, 나는 갈것 같지 못하구나!”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민우는 귀가에 대고있던 핸드폰을 어떻게 바닥에 메쳤는지 모른다. 바로 그날 민우는 하늘에 대고 맹세를 했다. 이제부터 아버지란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아예 존재한적도 없었다고… 그런 민우였기에 두해전엔 결혼식을 올리면서도 한국에 있는 아버지에겐 아예 알리지도 않았다.

그랬던 아버지가 간암말기진단을 받고 반년 남짓 서울의 어느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단다. 병세가 악화되자 아버지는 나서 자란 고향에 가 눈을 감고싶다 하여 얼마전에 삼촌이 한국 가 아버지를 업어왔고 지금은 어머니가 누워있던 하동현병원에서 림종을 기다리고있다는것이였다.

점심상을 물린 민우는 깊은 수심에 잠겨 창밖만 하염없이 내다보고있었다. 그때 뜨락에 새까만 승용차 한대가 와 멈춰서더니 하동현병원의 최원장이 차에서 내렸다.

“자네 부친은 어제 떠나갔네. 나는 지금 화장터에서 자네를 찾아 바로 하서로 오는 길이네.”

최원장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민우는 무슨 말로 답해야 할지 몰랐다.

“자네가 부친을 너무 오해하고있는것 같아 내 오늘 해명해주려고 왔네.”

최원장은 거실에 있는 쏘파에 앉으며 입을 열었다.

“나는 서울에 직접 가봐서 잘 아네. 자네 부친은 확실히 어떤 녀성하고 동거생활을 하더군. 그것은 자네 어머니에 대한 배신이고 또 사람들의 비난을 받아 마땅한것만은 확실하네. 하지만 일부 사람들이 떠드는것처럼 살림을 차리고 진짜 부부생활을 하는 그것과는 좀 달랐네. 녀성이 밥을 해주는 대신 생활비를 자네 부친이 좀 더 내는것밖에는 옷도 저마끔 자기 돈으로 사 입고 일체 경제는 벽을 쌓고 서로 비밀에 붙이는 그런 동거였네.”

민우는 최원장이 인제 와 이런 말은 왜 꺼내나싶어 그저 덤덤히 듣고만 있었다.

“자네, 어머니가 보고싶어한다고 한국에 전화를 했었지?”

“…?”

“그때 자네 부친은 건설현장에서 일하다가 오른쪽다리가 골절되여 병원에 입원해있을 때였네.”

“예? 그럼 어째 그렇다고 말씀하시지 않았는가요?”

“말하면 자네가 그 말을 믿겠는가? 어머니를 배신하고 뻔뻔스레 불륜을 저질은 아버지의 말을?”

“그리고 자넨 어머니가 우리 병원에 입원했을 때 치료비용의 절반을 원장인 내가 줄여준걸로 알고있지만 그런게 아니네. 개인병원도 아닌데 내가 어찌 그 많은 돈을 줄여줄수 있겠나. 그 돈은 자네 부친이 세번에 나누어 보내온거네. 도합 12만원이였네.”

“예? 아버지가요?”

민우의 두눈은 단통 커졌다.

“그런 일 왜 원장님께서는 사실대로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민우의 목소리에는 어느 사이 울음이 섞여있다.

“사실대로 말하면 혹시 자네 모자가 그 돈을 받지 않을가봐 그랬네. 그리고 자네 부친도 절대 비밀에 부쳐 달라고 나한테 신신당부하였네.”

민우는 갑자기 뒤통수에 날벼락을 맞은것만 같았다.

“자네 이걸 받게.”

“이… 이건 뭐입니까?”

“부친이 떠나면서 자네한테 남긴 돈이네.”

최원장의 손에서 은행카드를 받는 민우의 두손은 후둘후둘 떨리고있었다.

“그 카드에 인민페 58만원이 들어있다고 하더군. 그리고 우리 병원에도 5만원을 내였는데 그 돈도 적지 않게 남을거네. 이제 병원비용 정산이 끝나면 나머지 돈을 자네한테 보내주겠네.”

민우는 그만 다리맥이 풀리며 풀썩 하고 자리에 물앉고말았다.

“아버지!-”

두 주먹으로 가슴을 쳐보았지만 그 먹먹한 아픔은 좀처럼 가셔지지 않았다.

“원장님은 이런 말씀을 왜서 인제야 저한테 하십니까?”

“이 사람 왜 이래? 이런 말 전해주려고 내가 전화로 빨리 오라고 하지 않던가?”

최원장의 말은 들었는지 말았는지 어깨를 들먹이는 민우는 세차게 도리머리만 저었다. 오만가지 후회가 홍수처럼 밀려들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이미 가신 뒤여서 아무리 후회한들 한쪼각의 도움도 건질수 없다는 현실때문에 더 가슴이 메여왔다.

“여보세요, 너무 이러지 마세요.”

언제부턴가 두손으로 얼굴을 가리우고 곁에서 같이 어깨를 들먹이던 안해가 민우의 등을 다독인다.

“이보게!”

최원장이 갑자기 표정을 바꾸며 민우의 어깨를 다독였다.

“자네 이렇게 땅을 치며 후회할가봐 내가 미리 달려온거네.”

“예?…”

민우와 안해는 최원장이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 어리둥절해졌다.

“자네 두 사람 어서 차에 오르게. 자네 부친은 아직 살아있네. 지금 부지런히 떠나가면 운명하기전의 마지막 모습은 볼수 있을것 같네.”

민우를 태운 승용차는 아버지가 기다리는 하동으로 질주하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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