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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된 주름

□ 방순애

  • 2016-04-14 14:46:30

지금은 왜 그런지 얼굴에 주름이 있으면 늘 남보다 처지는 마음이다. 늙었다는 상징이여서인가 아니면 늙으면 안되는 리유가 있어서인가.

주름은 오솔길이다. 수없는 마음들이 용해되여 흘러오고 간 길, 넘치는 정을 나눴던 길, 배움의 지식이 걸어 들어온 길, 가족의 걱정으로 가슴을 씻어내렸던 길, 꿈을 이끌고 나갔던 길이다. 눈가의 주름은 희열의 길, 볼의 주름은 슬픔과 괴로움의 길, 귀가의 주름은 평범한 이웃들이 오가며 나를 타일렀던 길이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거울을 들여다 보기가 싫어졌다. 그것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얼굴에 주름이 깊숙히 패여가기때문이다. 웃으면 이그러지는 주름때문에 남들의 눈에 내가 늙은 모습으로 비쳐지는것이 싫었다. 젊었을 때는 잘 안됐다고 구석에 처 박아놓았은 사진들을 꺼내봐도 지금보다는 훨씬 아름다와보였다.

어느날 나는 용기를 내여 미용원으로 찾아갔다. 린근에 소문이 자한 미용원의 원장님을 찾아 자문을 했더니 “손님의 얼굴주름은 이미 근육조직이 다 끊어졌기에 생긴것으로 수술을 해야 합니다.”라는 답을 들었다. “어떻게 수술을 합니까?”고 물었더니 이마뒤에 머리부분의 피부를 당겨내 일정하게 자른다는것이다. 비용은 얼마나 드는가고 물으니 1만 5천원을 들여야 한다고 하는데 어이가 없었다. 만약 수술을 안한다면 어떤 방법이 없는가고 물으니 반년에 한번씩 몇천원씩 들여 보톡스를 맞아야 한다고 하였다. 나는 속으로 “나를 팔아도 안되겠네.” 하며 미용원에서 나오고말았다.

왜 내가 주름을 없애야 하지? 주름없는 얼굴은 신분이 올라가나? 아니면 명인이 되냐? 보는이에게 기쁨을 주려고? 이런저런 자아에 대한 질문은 끝이 없었다. 주름에 대한 편견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 아닌가? 내가 나 자신을 받아들일수 없어서 성형을 하는것이지 어느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주름이 없이 반반하면 그 사람의 인생이 달라지는가? 혹시 그럴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을 그렇지 못하다.

우리는 나름대로 바늘구멍을 통해 인생을 바라본다. 물론 얼굴을 보고 그 사람을 평가하는 사람들도 많다. 주름이 많은가에 따라 대단치 않는 인물로 무시할 때도 있다. 어느정도 차이는 있지만 우리 모두가 이러한 한정된 인식때문에 사람들에게 괴로움과 스트레스를 안겨준다. 주름을 왜 그리 미워하는가? 주름은 지나온 인생의 흔적이 아닌가? 내가 주름이 없이 얼굴이 반반하여 50대가 20대 얼굴을 만든다고 할지언정 살속에 파뭍혀있는 뼈의 로화는 어쩔수가 없는 일이다. 그러니 진정 내가 갖고있는 미는 얼굴에 있는것이 아니다라 이른바 내적미가 더 중요하다는 말이 되겠다. 이쁜 얼굴이라 하지만 소질이 낮고 행실이 어지러우면 어느 누구도 그 사람을 좋아하지 않을것이고 사람들은 그한테 다가가지도 않을것이다.

부모가 준 얼굴에 굵은 주름이 가면 어떠냐, 청청 푸른 나무잎도 가을이 되면 단풍잎으로 변하는것이 자연의 섭리인데 곱게 늙는 얼굴은 가을의 단풍과 같으니 그 역시 아름다운 인생의 상징이 아니겠는가, 외면의 아름다움보다 내면의 질적인 아름다움이 더 중요하다는것은 사람마다 입버릇처럼 말하고있는데 말이다. 그러니 주름은 인생과 같이 가는 동반자이다.

전국 중로년모델양성반을 따라 양주로 간적이 있다. 다른 한 성에서 온 60대 초반의 녀모델이 어찌나 성형을 잘했는지 그녀의 얼굴은 30대로 보면 딱 좋을가 싶었다. 체형도 마찬가지로 날씬했다. 나는 그 모델을 보고 어찌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그런데 한호텔방에서 며칠을 같이 있어보니 그녀는 “30대”에 걸맞지 않게 컴퓨터나 위챗 등 아무것도 다룰줄도 몰랐고 사회의식 수준도 아주 차했다. 모든 일처리들도 역시 전형적인 구닥다리 로파에 불과했다. 얼굴은 30대이지만 행동이나 관념은 60대인 그녀를 보면서 나는 크게 실망했다. 외모가 젊게 살려면 그와 같이 시대에 따르려는 노력이 필요로 한다는 리치를 깨달았던것이다.

얼굴이 이뻐서 젊게 보는것이 아니다. 그 얼굴과 같이 사회에 적응하여 살아가는 능력이 필요하다. 주름이 원쑤냐? 주름은 내 삶의 동반자인데 당당하게 같이 가야지 굵은 주름과 같이 내 내적미를 더 튼튼히 굵게 가꿔야 하는것이 바람직한데 말이다.

늘 웃는 사람의 얼굴주름은 마치 고운 꽃처럼 살포시 피여나는것 같다. 늘 긍정적인 마음으로 타인을 대하고 너그럽게 많은 사람들을 보듬어 안아주는 포응력이 있는 사람이 같아 보기만 해도 따르고싶고 조언을 듣고싶으며 그래서 더 믿음이 간다.

평범하게 달려온 사람들의 인생보다 굴곡이 많게 살아온 사람들의 주름은 험하고 거칠고 깊숙히 패여있다. 인생이 평탄하지 않았음을 알수 있다. 그들인들 왜 아늑하고 평탄한 길을 가고싶지 않았겠는가. 그 역경을 이겨내며 살아온 그들에 대하여 오히려 경의의 눈길을 보내야 마땅하다.

이제라도 웃으면 더 밉살스럽게 일그러지는 내 얼굴 주름으로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을것이다. 령혼의 지도를 그린 주름, 내 나름대로의 인생길을 존중하며 아름다움과 아픔이 번갈아 묻어나는 주름에 감사하며 살아갈것이다. 이제껏 나는 주름이 두려운것이 아니라 주름을 두려워하는 내 마음을 두려워하며 살아왔다. 그러니 당당하게 살아야겠다. 아직도 년륜이 묻어나려면 멀었는데 말이다. 비좁고 가늘던 길이 차츰 굵고 넓어질거라고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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