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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장고청소를 부탁해

□ 김서연

  • 2016-05-12 15:59:51

간만에 찾아온 휴식일에 한껏 늦잠을 즐기고싶었으나 엉뎅이를 내리비추는 해볕때문에 어쩔수 없이 강제기상을 해야 했다. 잠을 덜 깬채 푸수수한 모습으로 멍하니 앉아있는데 엄마가 다가와 한마디 했다.

“너 오늘 쉬는 날인데 랭장고 청소나 좀 해놔. 언제부터 한다더니 벌써 한달째야. 버려야 할것들도 좀 버리고 류통기한 지난 아이스크림이며 우유며 죄다 썩고있어. 오늘 랭장고 청소 부탁해!”

“아… 네 알았어요.”

한달전부터 한 약속을 더이상 미뤄두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나는 고양이세수만을 한채 랭장고 청소를 하러 주방으로 갔다. 고무장갑을 끼고 랭장고에 있는것들을 모조리 꺼내서 분류를 시작하였다.

랭장실에는 류통기한이 한참 지나 치즈가 되여버린 우유며 시들시들해진 각종 야채며 껍질이 말라버린 과일까지 가관이 따로 없었다. 나는 먼저 랭장고에 다시 넣어야 할것들만 골라 넣은 다음 나머지들을 2차 분류하여 최종적으로 버려야 할것들을 선정하였다.

어떤것들은 모양만 봤을 때는 괜찮은것 같았으나 포장을 뜯어보니 내용물은 “사망”한지가 한참이 지나 냄새까지 나기 시작하였다. 몇달전 사다놓은 아이스크림은 “미라”가 되여있었고 반값에 싸게 사온 통새우는 령혼까지 꽁꽁 언채 랭장고에서 동사하였다. 랭장실에 넣어두었던 밤은 곰팡이로 오염이 되여있었고 몇주전에 만들어놓은 스파게티 소스에도 하얀 곰팡이가 이사를 들어왔다.

박스에 가득 담긴 랭장고속 쓰레기들을 쓰레기장으로 가지고 나가면서 나는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각종 재료들을 욕심스레 랭장고에 쌓아두고는 정작 그것이 썩어가는것조차 몰랐던 나 자신이 너무도 한심해보였다. 마치 내 마음속 깊게 자리잡은 “욕심”이 또 다른 “욕심”에 짓눌려 마음속 랭장고에서 점점 썩어가고있음을 인지하지 못하고있는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친구가 산 신발이 내 마음에 쏙 들었던 나는 비슷한 신발이 몇컬레나 있었음에도 또다시 백화점에서 친구의 신발과 똑같은 신발을 사서 며칠은 기분 좋게 신고 다녔던적이 있다.

결국에는 금방 그 신발에 질려했고 류행이 지나버린 지금에 와서는 신발장속에 골동품마냥 고이 간직되여있다. 철이 들지 않아서 그랬다고, 어려서 세상물정을 몰랐다고 나 자신을 변명해보지만 지금 생각하면 너무도 부끄러운 일이다. 나 자신에게 당장 필요하지 않은 물건일지라도 내가 사지 않으면 왠지 손해보는 느낌이 들고 누군가에게 빼앗길것 같다는 비뚤어진 욕심에 또다시 뭔가를 사면서 나는 내 마음속의 “랭장고”를 끊임없이 채우고있었다.

그러다보니 질 좋은 신선한 재료가 있어야 할 자리에 류통기한조차 알수 없는 재료들이 자리를 잡고있었고 그 재료들로 인하여 결국 좋은 재료들은 갈 곳을 잃은채 집안 여기저기서 방황을 하고있었다.

온종일 깔끔하게 정리한 랭장고를 보니 내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랭장고 청소를 하면서 음식을 절반 넘게 버렸어도 그것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더이상 음식이 아닌 썩어버린 쓰레기였으니까.

우리도 가끔은 자신의 마음속 랭장고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분명 몸에 좋은 음식이라고 해서 사두었는데 그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썩어 도리여 몸에 해로운 쓰레기가 되여 계속 랭장고에 보관되여있을지도 모른다. 불필요한 욕심과 썩어버리기 시작한 량심, 말라 비틀어진 리기심 그리고 꽁꽁 얼어버린 독기, 수많은 신선도를 잃어버린 재료들을 버리고 랭장고를 비워내야만 다른 좋은 재료들을 사다가 랭장고를 채울 충분한 공간이 생기는것이다.

랭장고는 가끔씩 청소가 필요하다. 오늘 스스로에게 마음속 랭장고 청소를 부탁해보는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해보는것은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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