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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래곡의 일화

□최균선

  • 2016-07-14 16:51:12

마래곡은 차길에서 백칠십리, 더구나 아흔아홉굽이 늘찬 오랑캐령을 넘는 두만강 변의 산간벽지다. 옛그날, 쪽박 차고 강을 건넌 흰옷 입은 서러운 그림자들이 지쳐서 쓰러지던 한많은 고개의 길로 지금은 뻐스며 자동차들이 드문히 넘나들며 문명사회의 냄새가 점점 짙게 실려들지만 아무튼 시골도 심심산골이다.

마래곡은 향이라지만 40여호의 합전촌, 공사소재지인 늪득촌, 60여호 되는 하마래촌, 산비탈에 자리 잡은 50여호의 조동촌 네개 자연촌으로 이루어진 연변서도 제일 작은 명동(후에는 부유향)공사이며 백호의 늪득촌이 공사소재지이다. 그러나 참새는 작아도 오장륙부가 구전하다고 조그마한 공사에 문화소, 농기관리잠, 계획생 육위원회, 과학기술보급소, 량식관리소 등 없는 기구가 없다. 그리고 시내나들이를 자주 못하는 시골의 젊은 녀인들이 있는껏 차려입고 모여드는 곳인즉 공소사여서 소재지로서의 냄새를 그럴듯하게 풍기고있다.

굶어 죽어도 자식공부는 시킨다는 배달민족의 전통은 이 골령에도 뿌리내려 소학교만이 아니라 중학교까지 산중턱을 까고 절간처럼 지어놓아 조그마한 공사소재지에 이채를 돋군다. 만약 강변쪽에 자리잡은 소학교운동장에 오구작작 조무래기들이 뛰노는 모습이 없고 서른네층으로 된 중학교의 돌층계를 덕지 큰 아이들이 오르내리지 않는다면 이 마래곡은 한적하고 스산하기가 말이 아닐것 같다.

도시에서는 얼굴을 갖고 산다지만 시골에서는 인심으로 산다. 골사람들은 누구나 다 조그마한 소망을 안고 산다. 도시에는 극적인 맛이 있고 시골에는 그런게 없지만 서정만은 짙게 물들어있다. 도시처럼 시끌벅적한 유혹이 없다보니 시골에서는 누구나 다 착해지고 후덕을 먹고 살게 된다. 더구나 청일색으로 조선족들이 모여사는 이 조그마한 시골향은 인심도 자별나게 풋풋하였다.

내가 이 마래곡에 온것은 20세기 80년대의 첫 해, 문화혁명의 흑풍이 갓 지나가고 십년나마 들볶이던 사람들이 조금 안정을 찾아 천륜지락을 펴기 시작한 개혁개방의 전야였다. 팔월의 해가 벼이삭을 어루더듬고있는 어느날, 두만강기슭을 따라 헐씨근거리며 달리던 뻐스가 마래곡(부유향)에 도작하자 나는 구식 트렁크를 들고 굴러떨어지듯 차문에서 튕겨나갔다. 하루 한번 다니는 뻐스건만 마침 송이버섯 철이여선지 차객이 달랑 나 하나뿐이였다.

산 설고 물 설은 고장이지만 산기슭 둔덕우에 질서있게 지은 기와집들이 오붓해 보였다. 나는 벽촌의 풍경에 취해버려서 곧추 마을로 올라갈 생각도 잊고 떼목이 떠내리 는 두만강가에 퍼더버리고 앉아 담배를 피워물었다. 그 몹쓸 “상표”때문에 긴긴 십칠년을 모아산아래에서 밭고랑 타고 세계를 내다보다가 마침내 밝은 정책이 시달되여서 민영교원으로 숙망의 교단에 올랐고 일년만에 정식교원으로 되였다. 교단에서 한생을 빛내보려던 나의 늦은 꿈이 자칫 중도에서 깨질번하다가 여기 시골학교에서 연장되지만 서운한 생각이 별로 없이 굴기의 래일을 믿는 마음으로 달려온터이다.

어쩌면 이 심심산촌이 리상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름의 청산과 맑은 골바람에 먼지 끼였던 페부를 닦아내고 종을 쳐서 공부철을 놓쳐버린 시골아이들을 불러들여 글을 가르치고 밤이면 유난히 많고 빛나는 별들을 바라보며 산새들이 우는 사연에 귀기울여보는 랑만이 있어 좋을듯 싶고 인간의 마음이 진실로 얽히는 보다 원시적인것이 또 하나의 사는 멋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을 다잡았다

겨울이면 중대가리에 원두알 구을듯 떨어지는 산골의 해여서 그런가 한여름 끝자락의 해가 진 산골에 황혼이 빨리도 기여든다. 석양의 잔광이 물들이는 강건너 나라의 한산한 변강마을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나는 인간의 끓는 정열과 욕망이란 너무도 사소한 생명의 빛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다. 야색이 완연해지면 하늘가에 별 무리들이 쏟아져내릴듯 흐르고 그런 밤하늘이 더없이 정취를 안겨줄것이다.

도시에는 인간들의 서툰 인생만화에 진저리쳐질수 밖에 없지만 여기엔 대자연의 걸작을 마음놓고 볼수 있을것이다. 그 소란스러웠던 청춘시절을 아심아심 망각속에 처넣으며 호젓하게 저무는 학교마당에 앉아서 상념을 보듬는것도 일종 향수일수도 있으리라. 나는 시골의 첫날밤을 어디서 보낼가 생각하며 재우쳐 마을로 올라갔다.

리건휘라는 교장선생님을 찾으니 교원들과 함께 농경지에 가고 없어서 누구에게 발령장을 바치고 숙소를 안배받을수도 없었다. 할수 없이 향정부를 찾아가니 점잖게 생긴 황서기란분이 중학교에 새로 선생이 온다는것을 알고있었다며 우선은 자기 집 에서 묵으며 리교장이랑 돌아오기를 기다리라고 하였다. 미남형의 얼굴처럼 마음씨도 후더분한것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나는 못이기는체 신세를 지기로 하였다. 황서기의 부인도 인정이 철철 넘치는 녀인이여서 마치 친척집에나 들린듯한 기분이였다.

이틀이 지나니 교장선생 일행이 돌아왔는데 그는 아직 가족을 데려오지 않은 상황이니 나더러 일단은 황서기의 집에서 식사하고 잠은 학교숙직실에서 자라고 하였다. 절에 간 색시 중이 시키는대로 한다고 그렇게 나는 학교밤직을 전담당하게 되였다. 마을이 발아래 굽어보이는 학교는 밤이면 그야말로 등불이 꺼진 절당처럼 으스스한 기분까지 들었다. 더구나 밤중이면 천정에서 쥐가 노는 소리가 아닌 “짝ㅡ쩡ㅡ” 하는 괴상한 소리가 나기도 해서 깜짝깜짝 놀라군 하였다. 여러 선생님들도 은근히 겁을 주자는 뜻으로 원래 공동묘지자리를 밀고 지은것이여서 터가 좀 세다며 나를 골려주기도 하였다.

그런데 괴상한 소리보다 더 잠들수 없게 하는 사건이 생겼다. 하루는 황서기네 집에서 이른 저녁을 먹고 학교로 오는데 공소사앞마당에서 새파랗게 젊고 훤칠한 체격의 웬 녀자가 갑자기 달려들어 내 목에 매달리며 히스테리적으로 쫑알거렸다.

ㅡ아, 오빠구나, 어데 갔다가 인제 와? 응응? 내가 너를 싫어했다구 그래?

저녁소풍을 나온 사람들은 눈길만 모을뿐 그 누구도 달려오지 않았다. 이런 괴변도 있단말인가? 나는 초풍할 지경으로 놀라서 어쩔줄 몰라했지만 사람들은 무엇인가 알고있은듯 보고만 있었다. 내 목을 휘감은 녀자의 팔힘은 놀라웠다.

ㅡ오빠, 나 잘못했어, 리혼하잔 말을 안할게, 오늘 밤 잘해줄거지?

미친 녀자가 아니면 이럴수 없었다. 나는 칭칭 감겨드는 녀자를 겨우 뿌리치고 마을뒤 산길로 빠져 선불맞은 노루처럼 껑충껑충 들고뛰였다. 녀자가 뒤쫓아왔다. 어찌나 바싹 뒤따라오는지 현관문을 잠그지 못한채 숙직실에 뛰여들었다. 뒤미처 쫓아온 녀자가 “오빠, 오빠” 하며 불러내며 발을 동동 굴렀다. 남자가 녀자를 무서워 할 리유는 없지만 미쳐버린게 분명한 녀자는 소름이 끼치는 법이다. 정말 재수없다고 해야 할지…

내가 문을 열어주지 않자 녀자는 현관바닥에 들어앉아 발버둥이치며 엉엉 울어제꼈다.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녀자의 아버지라는 리선생이 아들인듯한 젊은이와 함께 녀자 를 마구잡이로 끌고갔지만 깨진 고요와 함께 나의 마음도 란삽하기 그지없었다. 사람 들이 미친녀자에게 당하는 봉변이라고 생각할수도 있으나 내 처지가 말이 아니였다.

나는 대낮에 구미여우를 만난듯한 혼줄이 나있었지만 선생님들은 시물시물 웃기만 하였다. 그러던중 입이 빠른 김선생이 내막을 알려주었다.

녀자는 원래 이 학교에서 퇴직한 총무주임의 막내딸로 삼합에 시집을 갔다가 남자가 고자여서 리혼하고 돌아왔는데 나중에 저렇게 미쳐버렸다는것이다. 그러나 그저 울고불고할뿐이지 여태 남자들에게 달려든 일이 없었다고 하였다. 리선생도 그바람에 내부퇴직을 하고 딸을 간수하느라 진땀을 뺀단다. 묶어서 방에 가두면 온하루 기광을 부려서 동네가 부산하고 정신병원에 보내버리자니 마음이 아파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차에 내가 비극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다는것이다.

젊은 영어선생이 씨물거리며 내가 그녀의 남편을 신통히도 닮아서 착각을 일으킨듯 하다면서 한술 더 떳다. 모두들 남자때문에 미쳐난 녀자는 자기 눈에 든 남자에게는 무작정 매달리는데 연극이 하루이틀 끝날 일이 아니라고 시까슬렀다. 나로서 무엇을 어떻게 한 일은 없지만 처음 타고장에 와서 생각하지 않던 추문에 휘감기다보니 속이 찜찜하기 그지없었다. 리주임이 찾아와서 미친애이니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 말라고, 혹시나 욕하거나 때리거나 하는 과격한 행동으로 타격을 주지 말라고 청들었다.

며칠씩 녀자가 나타나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러다가도 어떻게 집을 뛰쳐나온 날이면 대낮에도 마구잡이로 교실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서 나를 밀쳐버리고 흑판에다 오리발 을 그리며 란리를 피우기도 했다. 아이들은 내막을 잘 았고있어서인지 재미있다고 웃 어제끼며 “잘한다! 잘한다!” 하고 부추기기도 하였다. 그러다보니 나때문에 일어난 일이 전반 학교 교학에도 차질을 빚는 공적인 문제로 번져졌다.

겨울을 잡아들면서 광녀의 왕림이 뚝 끊기였다. 내가 요즈음은 그 녀자가 쫓아 다니지 않는게 별일이라고 하였더니 리선생이 동네가 미안하다며 딸을 데리고 대련에 큰딸집으로 갔다고 하였다. 그런데 이듬해 봄이 되여 마을에 리선생이 나타났다. 몇달새 폴싹 로문해져서 돌아왔다.

선생들은 대련에서 치료하여 조금 나아지는듯 싶어 기뻐하던 차에 녀자가 대련앞바다에서 익사하고 말았다고 쉬쉬거렸다. 나는 가슴이 섬찍했다. 그 녀자처럼 남편이 고자여서 리혼하고 사처로 헤매돌다가 곡수ㅡ도문 사이에서 기차에 치여 비명횡사한 나의 고모사촌누이의 운명이 생각나면서 웬지 남 일만 같지가 않아서였다. 대련에 끌려가지만 않았더면 바다에 빠져 죽는 일어 없었을지도…

죽어간 사람은 그렇게 죽어가고 산사람은 산사람의 멋대로 잘들만 살아가는 인간세상인지라, 얼굴이 그렇듯 동탕하고 몸태도 풍만하던 그 녀자가 일없이 바다귀 신이 된것이 내탓일수는 없지만 아무튼 불쌍한 녀자라고 생각하지 않을수 없었고 내 가슴에 깊이 깊이 새겨지는것을 말릴수도 없었다.

(다음기에 이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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