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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래곡 일화

□ 최균선

  • 2016-07-28 14:47:24
이튿날 이른아침, 일찍 나와서 대소로 통하는 마을앞 큰길을 바장이며 정들었던 시골마을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때에 마침 한 중년사나이가 소를 몰고왔다. 아마도 아침이슬풀을 뜯기려고 나온것같았다. 산골이 쩌렁쩌렁 울리게 영각하는 소가 어찌나 호함졌던지 저도 모르게 눈길이 박혔다. 원래 반평생 소와 씨름하던 농부였고 향에서 일등 소도 사양한 기억이 생생한지라 소라면 그저 스쳐보지 않는 나였다.

그래서 짐짓 “참, 소를 잘 키웠습니다그려.” 하고 감탄에 칭찬을 실었더니 소의 주인은 어리벙벙해서 나를 쳐다보기만 하다가 쓴 외 보듯 하고는 소궁둥이를 철썩 치며 지나쳐버렸다. 내가 무안한김에 게두덜거리는데 마침 담배 피우러 나온 최선생이 다가 와서 벌쭉 웃으며 말했다.

-저 사람이 한족입니다. 조선말을 하니 알아들을수 있겠습니까?

-뭐라구요? 아니, 원래 청일색으로 조선족들만 살던 마을이였는데 언제 한족들이 이사왔단 말이오?

-이사온것이 아니라 최선생님도 잘 아는 ×××네 ‘머슴’이지요. 과수원도 도맡고 논밭도 도맡아 대신 농사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한족이 한둘이 아닙니다.

-그 사람은 머슴 부리며 뭘하고 살게?

-한국서 돈을 꽤 벌었는지 연길서 노래방인지 커피숍인지 경영한다던데 자세한 내막을 잘 모르겠습니다. 집과 밭을 다 저사람에게 맡기고 자주 오지도 않고요.

나는 더 묻지 않았다. 묻지 않아도 시골의 변천이 어느 정도로 심각한가를 짐작 하고도 남았다… 곳곳에 흘러가는 조서족농촌마을. 이 산골이라고 례외일가,

몇년후, 명동중학교에 있었던 동업자들이 오래 간만에 명동에서 기념모임을 가지게 되였다. 뻐스에서 내리자 나의 눈길이 찾은 곳은 버릇처럼 산중턱에 덩실하게 앉았던 학교였다. 그런데 이럴줄이야, 시골의 유일한 문화상징물은 온데간데 없었다. 나는 학교의 빈터로 치달아올랐다. 갓 허물어갔는지 잡초는 별로 무성하지 않았다. 그러나 흘러간 옛노래가 떠오르며 가슴이 알찌근해났다.

황성옛터에 밤이 되니 월색만 고요해/ 페허에 서린 회포를 말하여주노라/ 아, 가엾다 이 내 몸은 그 무엇 찾으려고/ 끝없는 꿈의 거리를 헤매여왔노라/ 성은 허물어져 빈터인데 방초만 푸르러… 옛 가락이 아무리 쓸쓸하고 보는이들의 마음이 아무리 아픈들 시대의 조류에 흘러간 시골중학교의 옛모습을 어찌 찾을수 있으랴,

점심을 먹으며 나는 또 최선생에게 몇년전에 내가 보았던 그 둥글소의 임자에 대한 후일담을 캐물었다. 스토리는 간략하고 결과만 말한다면 그때 그 “머슴”이 마침내는 이 마을에 뿌리박고 식솔들이 꽤 오붓하게 살고있다고 하였다. 원래의 주인은? 내가 붓쟁이의 통병인 궁금증에 의문의 갈구리를 연신 걸었더니 생각있으면 직접 ×××를 만나서 소설감이나 얻으라 하였다.

…저녁을 먹고 나는 슬며시 산촌변혁의 주인공이 될수 있을 ×××를 찾아나섰다. 최선생이 가리켜준 헌집을 찾아가니 삽작문은 열려있는데 주인은 없었다. 누군가 그 사람이 지금 저 서산기슭 소나무아래서 담배를 피우고있더라고 알려주어서 허위허위 찾아올라가니 정말 기억의 쪽문가에 낮익은 내 이야기의 주인공이 눈에 안겨왔다.

내가 옛고장의 산천구경을 나왔다가 우연히 만난듯 알은체하고 담배를 권하며 빙빙 에돌아 이왕지사로 이끌어갔더니 그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사람들은 원래 그리 친근하지 않는 사이에는 자기의 치부를 드러내기 꺼려하는 법이다. 하지만 구정이 신정이라 드디어 곡절많은 사연에 자기의 속심까지 조금씩 털어놓았다…

…마을사람들 앞에서는 잠시적인 귀향이라고 어물어물해 넘기지만 돌아앉아서는 눈물을 삼키며 한탄할수 밖에 없는 자신의 여생이 지겹다고 했다. 그는 후회하고있었다. 나는 시대의 락오자인가? 아니면 비참한 실패자인가? 하고 부르짖을 때마다 그저 주먹이 쥐여진단다. 뜻대로 되여지는 인생이 아닌줄 왜 모르랴만 덕대돈을 버는자도 따로 있는것이다. 아니면 제땅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운명의 낭떠러지는 출국의 길에서 시작되였으니 비참할수 밖에 더 있으랴, 시대는 자유경쟁의 살기를 띄고 저만치 훌쩍훌쩍 뛰여간다. 아픔이 응어리진 가슴속에서 허무, 허무만이 나뒹군다.

당당한 도시민이 되여 떵떵거리며 살줄알았더니 이젠 꿩 구워먹은 자리가 되여 버린 삶의 터전이요, 쪽지 떨어진 조롱박신세가 되였으니 앉으나서나 살아갈 근심만 작두질하고있었다. 요 모양 요 꼴이 될줄 알았더면 차라리 한국돈벌이를 마치고 그 길로 귀향이나 했더면 할버지의 피와 아버지의 땀에 절은 가원을 잃지나 않았을것을 이젠 정말 한지에 방아를 걸게 되였고 후회막급도 궁지에 이른셈이다… 자칫 도로 그 한족의 “머슴군”이 되지 않는다고 장담할수도 없는 그의 처지였다.

그는 날마다 해저무는 산기슭에 앉아서 3대째 내려오며 오붓한 시골살림을 꾸리고 시름걱정없이 살던 덩실한 기와집을 굽어보며 오열을 씹었다. 시골의 서정과 맑은 대기속에서 성스럽기까지 하였던 감각도 일장춘몽이였던가? 밝은 광환속에서 흥청거리며 물질문명을 내세우는 인간들의 내속을 다시금 돌이켜보니 자기 인생이 더없이 슬퍼지고 혼자만이 이 시대에 배반당한듯 싶어져서 가슴이 막 부글거린다.

마치 빛이 잘 새여들지 않은 깊고깊은 해저에서 침몰선의 용골을 붙안고 웅심이 발발하던 출국의 초행길을 돌아보며 한숨만 비틀어야 하는 자신이 얼마나 용렬하고 경멸스러운지 모른다. 생각할수록 분통이 터지고 쓰디쓴 웃음이 실실 새여나오는것을 주체할 길 없었다…….

그가 겪은 이왕지사를 다는 듣지 못했지만 그의 심정만으로도 가히 짐작할수 있었다. 현재의 처지와 스스로 자초한 허무함에 시달리는 그는 물레방아 돌아가듯 바뀌는 계절에 더구나 심신이 비틀어져있었다. 세상 돌아가는 꼴에 환멸을 느끼고 멀직하니 물러나와 인간의 본연대로 시골에 묻혀사는 여유로운 삶이 아니라 완전히 실락자가 되여버린 자신이 바보스러웠다고 허탈감에 후회를 덧쌓고있었다.

여름의 푸른 산골짜기와 시원한 저녁바람이 그의 재가 앉은 가슴을 식혀준다. 인 간의 락원은 결코 번거로운 도시에만 있는것이 아닌줄 그는 뒤늦게야 깨달았다. 인간의 마음이 진실을 따라 움직이는 원시적인 상태에 이른바 사는 즐거움이 자라는것이다. 욕망과 경쟁, 유혹과 허영이 꿈틀대지 않는 곳은 아직까지는 심심산골 이 한적한 마래곡에 있다는것을 확신하게 되였을 때 희망의 렬차는 이미 몇굽이를 돌아간 뒤이다.

나는 어떤 련민이 섞인 마음으로 그를 슬며시 지켜보았다. 해가 서산에 지고 어스름이 슬밋슬밋 기여드는 저녁때면 여기에 나와서 아무생각도 앉아있는다는 그는 욕망과 현실 사이에 얼마나 현격한 락차가 존재하고 있는것인가를 새삼스러 곱씹지 않을수 없을것이다. 석양의 잔광이 언녕 사라진 하늘아래 침묵으로 푸름을 떨치는 앞남산과 뒤산을 쳐다보며 인간의 끓는 욕망과 정열이 마지막 잔광처럼 덧없다는것을 심심히 느끼였을가? 나는 딱히 그도 아닌 누구와 엉뚱한 무언의 대화를 하고있다.

(그래, 저 말없는 한왕산의 웅좌는 당신의 상처에 참고 견뎌내라는 “자성”이라는 약을 발라주고있을지도 모른다. 하긴 당신이 욕망의 진의를 깨달았다면 인생은 철저히 끝나지 않았다는 의미이겠지? 나는 당신이 매일 자책하고 가슴을 칠 때마다 잃어버린 욕망의 반기를 보고싶다. 그것은 찢어진 희망의 기폭이겠지만 자성한 인생의 기발, 한국의 공사장에서, 그리고 연길의 거리에 흘려버린 가슴아픈 사연들이 얼룩진 그런 감성적인 기발이래도 좋을듯 싶다.

그의 이야기와 한탄을 다 들을수는 없고 그 내심세계의 구석구석을 다 들여다 볼수는 없었다. 그는 쓰디쓴 맛에서 단맛을 찾는게 인생이라는 가장 간단한 도리에 말문이 막혀있을것이다. 또한 욕심껏 단맛만을 보려고 끙끙거렸다. 랭수 먹고 된똥을 누려하듯이… 인생의 짜고 단맛을 다 맛보기전에 부평 같은 신세가 되였으니 전화위복이 될것인가? 그러나 그것은 의지를 전제로 하고있다. 인생의 미각의 망각지대가 그의 채출발점이 되였으면 좀 좋으랴, 그는 지금 쓴맛을 기껏 맛보고있다고 호소하고싶을것이다. 그것이 락엽귀근처럼 원초의 마음의 터밭에 밑거름이 될것인가?

저만치 흰색으로 어둠을 내쫓고있는 백바위굽에 눈길을 박고있었다. 백바위너머로는 그저 우중충한 구름과 검푸른 하늘 그리고 들리느니 부엉이울음뿐인 소외된 고장으로 변화되여버렸음에 한숨을 톱고있을것이다. 우리가 만화를 보며 저도 모르게 킥 웃음이 나오는것은 다리에 대가리가 붙었거나 눈이 이마에 나붙은 등 그런 괴이한 화면에서라기보다 그 숨은 내용에 우습고 그 기발한 착상에 웃는것이 아닌지…

만화속 같은 세상, 만화속 인물 같은 우리들이 아니던가? 지금 농민들은 저마끔 자기 인생의 만화를 열심히 그리고있다. 얼마나 많은 농민들이 멍든 가슴, 주눅이 든 마음을 희망이라는 다리미로 다리고있을가? 고향에서는 추접은 막벌이가 출국하면 좋은 돈벌이라고 혹하는 가치취향은 눈물 겨웁지 않은가? 오늘 우리 농민들의 인생이 희비극으로 엮어질수 밖에 없는것은 일확천금사상이 너무 극대화된탓이 아닐가 싶다. 물론 먹고사는데 만족할 걸인이 없고 만족을 아는 부자는 태여난적이 없다. 비교하지 않으면 실망하지 않을것이요, 비교를 모르면 늘 자족하리라.

어느새 날은 완전히 어두워졌다. 산을 내리는 그의 걸음은 몹시 무거워보였다. 그의 뒤모습을 보는 나의 마음도 무거웠다. 일엽지추(一叶知秋)요, 한알의 모래알에서 대천세계를 읽는다 했거늘 그의 조우와 처경에서 현재의 우리 조선족농민들의 취향과 행각을 류추할수 있었고 흘러가는 민족군체의 흐름을 공연히 걱정하지 않을수 없었다. 이것은 내가 결코 오지랖이 넓어서만이 아니리라.

도시진출과 외국로무로 인한 농민들의 리농현상은 시대발전의 필연이고 새로운 삶의 터전을 개척하는 장거라고 권장하는 사람들도 있는 판에 조선족사회의 위기라고 본다면 근시안적이라고 하리라. 그러나 현실생활이 론리적이 아닌만큼 민족군체의 해체도 공리공담 같은 리론으로 해석할 일이 못된다. 말과 소는 거의 같은 고생을 하는 팔자이지만 저마끔 다른 망돌을 끌고있다. 나는 언젠가 읽었던 글귀가 떠올랐다. 륙로가 통하지 않으면 수로로 가야지, 배가 번져졌더라도 구명대가 있기 마련, 하다못해 널판자라도 붙잡고 헤여서 다른 대안에 올라야지…

속담에 역은 토끼가 굴을 세개 판다는 말이 있다. 앞으로 나갈 때 물러설 자리도 보아두는것이 명지한 처사가 아닐가? 땅을 잃고 가원을 잃게 된다는것은 우리 민족이 설자리가 없게 된다는것을 예시한다. 아닌가? 잠시 성공한 사람들의 현재 상태로는 문제시 될것 없다고 볼수도 있겠지만 자기 후대들에게 물려줄것이 없게 된다고 한번 생각해봄직도 하지 않을가? 소수의 성공한자들을 내놓고 막벌이로 돈을 좀 쥐였 다해서 그것이 영구지책이 될리 없지 않는가?

다시한번 심사숙고해본다. 가령 장차 우리에게 우리의 보습을 대일 땅이 없다면 봄도 영원히 버리는것이 될것이며 흙덩이로 엉켰다가 세기를 넘어 마침내 산지사방에 흩어진 모래알로 된다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할것이 자명하다. 자기의 땅을, 자기의 가원을 버린 농민들에게 미래는 아름다운 새 에덴동산만 안겨줄수 없다. 적자생존의, 엄혹한 현실은 원래는 우리의것이였던 그 땅에서 20세기초 소작농으로 근근득실하던 우리네 선조들의 비극이 재현될지도 모른다. 준엄한 현실이 미래지향적으로 시사하고 있는 상황 그대로이다.

그후 그를 다시 만나지 못하였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가끔 그를 생각하게 되였다. 시골농민치고는 꽤나 지적인 사람이였는데 지금은 어디서 무얼하고 살아가는지… 소설은 생활속에 있는 법, 자초에 그의 조우를 소재로 “산촌거변”이라는 이야기를 엮으려고 작심했던 나는 이 소설을 마무리 짓기 위해서라도 다시 명동에 가서 그 사람의 거취를 알고싶었다. 그러나 기회가 없어 못 가던차 우연히 최선생을 만나서 대략적인 이야기를 들을수는 있었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뺀것인가? 아니면 박힌 돌이 절로 솟아서 굴러온 돌에 자리를 내준 격인가? 그 사람은 마침내 신세가 거꾸로 되여 그 한족집에서 일군으로 있다가 분통이 터진다면서 다시 한국에 나갔단다. 그동안 마음이 변한 안해는 한국사람에게 시집가서 알콩달콩 잘살고있지만 끈 떨어진 뒤웅박신세가 된 그는 그냥 한국에서 돌아오지 못하고있다고 하였다. 하나 있는 아들놈도 시내에서 굴러먹는다고 했다.

-망해도 참 더럽게 망했지요. 안 그렇습니까. 이만하면 소설이 되는겁니까? 사실 그 집만이 아니라 오붓하던 명동은 나날이 황페해지고있어 걱정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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