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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장례식

□ 신연희

  • 2016-10-24 08:44:08

“우리 사회에서 자기 어머니의 장례식에 울지 않는 모든 사람은 사형선고를 받을 위험이 있다.”

카뮈의 이 말 한마디때문에 무작정 집어들었던 책이다.

《이방인》, 알베르 카뮈 자신의 유년 시절 기억과 가난 그리고 그가 태여난 알제리 서민가의 일상이 녹아있는 《이방인》은 1942년 발표한 작가의 처녀작으로 전쟁과 부조리로 가득해 의미없는 세상에서 “죽음만이 인생의 목적”이며 그렇기때문에 더욱 삶이 의미있음을 역설한다.

무덤덤, 시큰둥 그리고 거짓없는 책속의 주인공 뫼르소가 그의 솔직한 감정표현때문에 결국 사형선고를 받는다. 있는것 이상, 느끼는것 이상을 말하는 거짓말이 삶을 쉽게 만드는 사회, 그 사회에서 벌거벗은 이방인의 인생이 송두리째 사라졌다. 솔직함이 규범에 맞지 않아서이다.

“엄마”의 죽음을 알리면서 시작해 “나”의 살인을 거쳐 “나”의 사형집행을 예고하며 끝나는 죽음에 관한 소설, 카뮈가 스물아홉의 나이에 발표한 작품이다. 소설의 1부는 엄마의 장례식, 마리와의 련애, 살라마노 령감의 비극, 레몽과 정부의 다툼 그리고 그것에 련루됨으로써 촉발된 “나”의 아랍인 살해에 이르기까지 제법 강렬한 사건으로 채워진다. 반면 2부는 그것에 대한 반성 내지는 해석의 장이다. 18일 동안 빈틈없이 련속적으로 전개된 그 자체로 어딘가 석연치 않은 날것의 삶, “나”의 욕망과 즉흥적인 행동이 법과 종료의 언어로 재구성되는것이다.

실상 엄마의 존재는 책 곳곳에 속속들이 스며있다. 가령 안해가 죽은후로 쭉 키워온, 미운정 고운정 다 든 늙은 개를 잃어버린 살라마노 령감이 침대가 삐걱거릴만큼 격렬한 울음을 울 때 뫼르소는 왠지 죽은 엄마를 생각한다. 살인을 저지르기 직전의 상황도 비슷하다. 그가 무슨 원한이 있을래야 있을수도 없는 아랍인을 무참히 살해한것은 엄마의 죽음을 둘러싼 한 단어로 정의할수 없는 감정의 덩어리때문이였을가? 어떻게 이 모든것이 언젠가 사형집행 장면을 구경하러 간 뫼르소 아버지 구토와 닮은데가 있다. 새삼스레 상기하자면 문학은 이렇게 론리와 조리와 상식이 놓쳐버린, 인과관계와 필연성의 원칙으로는 영원히 메워지지 않는 저 우연한 틈새를 보여주기 위해 존재하는것이다.

1957년 카뮈는 노벨문학상을 받으며 자신의 문학적 포부를 크게 세가지로 얘기한다. 부정, 긍정, 사랑이 그것이다. 마흔네살의 젊은 나이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지만 3년후인 1960년 미셸 갈리마르와 함께 빠리로 떠나다가 자동차 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이 책이 바로 그가 말하는 부정의 소설이다. 부정은 항상 강렬하고 자극적이며 이때문에 매혹적이다. 하지만 그 자체로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부정이 진정으로 빛을 발하는것은 오직 그것을 통해 감방벽의 돌틈새에 아로새겨진 고통이, 카뮈의 표현대로 “우리의 분수에 맞을수 있는 단 하나의 그리스도”의 얼굴이 드러날 때이다.

책의 마지막 문장, 악과 랭소와 슬픔과 분노로 가득 찬 동물적인 절규를 보라.

“… 그토록 죽음이 가까운 시간, 엄마는 거기에 해방감을 느꼈고 모든것을 다시 살아볼 마음이 내켰을것임에 틀림없다. 아무도, 아무도 엄마의 죽음을 슬퍼할 권리는 없는것이다. 그리고 나도 또한 모든것을 다시 살아볼수 있을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모든것이 완성되도록, 내가 덜 외롭게 느껴지도록, 나에게 남은 소원은 다만, 내가 사형집행을 받는 날 많은 구경군들이 와서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맞아주었으면 하는것뿐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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